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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를 예향이라고도 하고 '음식의 고장'이라고도 한다. 나는 서울에 살면서 고향을 이렇게 부르는 데에 대해 자부심과 모멸감을 동시에 느낀다.

 

최근 문근영씨의 자선 헌금에 대해 지만원이라는 자를 필두로 한 우익 매국노들이 "빨치산을, 전라도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한 술수…"라는 등 씨부렁거리는 것을 보면 저들이 평소 기득권 수호를 위해 전라도를 왕따시키고 내부 식민지화하는데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빨치산-전라도-북한' 식의 동류 이미지를 만들어 반통일은 물론 특정 지역을 기득권수호의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음모는 해방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정권을 거쳐 현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특정지역 패권주의자들과 반공기득권자들의 권력향유의 논리로 구사돼 왔다.

 

여기에 노무현 정권을 넣는데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노무현이 자신의 대선 정강정책 뿌리이자 당선 모태인 민주당을 없애고 한나라당에 연정을 제안한 일을 증거로 제시한다.

 

민주당을 지역당으로 규정하면서도 정작 지역당 원조인 한나라당에 대해선 한 마디가 없는 그의 언동은 의식 한가운데에 잠재돼 있는 특정지역 패권주의의 발로라고 본다.

 

그런 지만원도 노무현도 박정희도 이명박도, 그리고 승공통일연합 누구도 전라도를 예향이자 음식의 고장이라고 부르는데 이의가 없거나 앞장설 것이다. 전라도를 "예향, 음식의 고장"이라고 얼러대는 그들의 심보에는 역시 전라도 배척의 음모가 내재돼 있는 것으로 보여 불쾌하다.

 

정치 경제 권력 같은 알짜배기가 아닌 주변적 예술이나 음식 따위로 만족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예향'과 '음식'을 예전의 '접대 문화'와 결부시키는 지배-피지배 의식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

 

전라도는 땅과 바다가 넓고 기후가 온화해서 물산이 풍부했다.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약탈, 사냥, 해적질을 주업으로 했던 외국의 산간 또는 대양지역과는 달리 온유한 농경문화가 발달했다. 물산이 풍부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예술이 따른다.

 

육자배기같은 구성진 소리를 한국의 다른 지방이나 외국의 어떤 나라에서 들어볼 수가 있는가? 또 싱싱한 원료와 양념이 다양하고 거기에 이정스런 아낙네들의 손맛이 더해지니 음식 맛깔이 빼어날 수밖에.

 

그러나 나는 최근 친구들과 함께 내 고향 목포를 여행하면서 '예향'과 '음식의 고장'이라는 말로써 체면이 깎인 일이 있다. 무안 낙지골목에 들러 연포탕을 시켰더니 턱없이 비싼 가격에 '무칼국수탕'이라고 해야 제격인 음식이 나왔다.

 

그 식당은 반찬도 군대 짬밥그릇 같은 쟁반에 모듬으로 내놓았다. 목포 똥섬에 들러 홍어애국을 주문했더니 홍어애보다는 아구껍질을 더 많이 넣은 탕이 나왔다.

 

식당에서 당한 어처구니를 풀기 위해 갓바위 문화공원에 들렀다. 겉이 번지르르한 예술회관의 내부는 커다란 기둥이 건물 한가운데를 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왠일인지 주말에는 전시나 공연을 일찍 끝내거나 하지 않는다. 실망, 아니 분노까지 느낀 것은 자연사박물관이다.

 

대부분 시멘트 인조물로 된 전시물들은 거기에 때 돈을 들여 자연사박물관을 지은 의도를 옅보여 주면서 관람객들을 능멸하기에 충분했다.

 

돈을 퍼붓는다고 '예향'이 되는 게 아니고, 돈에 눈이 어두울수록 '음식의 고장'은 멀어진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민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최성민 기자는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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