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 사진 : 부모님이 도시를 떠나 산골자락에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부모님이 용인 아파트숲에 깃들어 지내실 때, 명절 때나 제사 때에 으레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곤 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지낼 때에는 그냥 전철을 타고 갔지만, 충주 산골자락에서 살 때에는 용인까지 자전거로 내처 달리곤 했습니다. 충주에서 버스 타고 서울을 거쳐 다시 전철을 타고 용인으로 가자니 너무나 먼 길일 뿐더러 고단하기에, 차라리 충주부터 용인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자며 신나게 달리곤 했습니다.
부모님 집에서 설을 보낸 뒤 제 보금자리로 돌아가던 길을 곱씹어 봅니다. 예나 이제나 그때나 이때나,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때면 으레 디지털사진기를 목에 대롱대롱 걸고 달립니다. 찍을 일이 있건 없건 모가지에 사진기를 걸어 놓습니다. 동네 구멍가게에 술 한 병 사러 갈 때에도 어깨에 사진기를 메듯이.
아파트숲으로 가득한 용인을 한 시간 즈음 달리면 길섶이 하나도 없는 국도가 나오고, 이 국도를 따라 두 시간쯤 달리면 비로소 시골길이 나옵니다. 아파트숲과 길섶 없거나 좁은 국도에서는 딱히 사진 찍을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니, 사진으로 담을 만한 모습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아파트숲도 아파트숲 나름대로 사진감이 될 수 있고, 120이고 140이고 씽씽 달리며 자전거한테 찬바람을 선사하는 국도에서도 얼마든지 사진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만, 딱히 디지털 파일로조차 사진을 찍고픈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시골길로 접어들게 되면, ‘앞으로 담뱃집이 얼마나 더 남아 있겠어?’ ‘이제 흙으로 벽을 바른 집을 구경조차 못할 테지?’ ‘새마을운동 자국이 짙게 드리운 모습도 나중에 돌아보면 재미난(?) 이야기가 되려나?’ 하면서 틈틈이 자전거질을 멈추고 사진을 찍게 됩니다.
자전거로 시골길을 지나가면서 마을길을 찍었습니다. 시골마을 살림집을 찍었습니다. 산을 깎아 공장으로 바꾼 곳을 찍었습니다. 살던 사람이 모두 떠나고 허물어져 가는 흙벽으로 된 기와집을 찍었습니다. 그러고는 땀 뻘뻘 흘리는 제 모습도 한 장 찍으면, 어느덧 시골집에 닿습니다. 네 시간 남짓 달려 한겨울에도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시골집에 닿습니다.
씻고 땀을 들이고 자전거를 헛간에 넣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하면서 생각합니다. 요새는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시골 모습이요, 어디서나 쓰러져 가는 시골 삶터이며, 하루하루 사람들 살림집도 자취를 감추는 시골구석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골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집에는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조그마한 마당에는 자동차가 서 있습니다. 창문은 겨울바람을 막고자 비닐을 씌운 채 굳게 잠겨 있기도 합니다. 문가에는 목에 줄을 묶은 개가 컹컹 짖습니다.
달라져 가는 모습이라고 해서 ‘허물어지는 모습’만 담는다면, 2007년 어느 날 시골은 ‘시골구석’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달라져 가는 모습이라고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웃음과 눈물을 담는다면, 2008년 어느 날 시골은 ‘사람이 살고 있는 시골 삶터’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헌책방을 담을 때에도 ‘사라져 가는 모습’에 눈길을 맞추면, 2009년 어느 날 헌책방은 오로지 사라지는 느낌만 담기고, ‘사람이 살고 책이 사는 모습’에 눈길을 맞추면, 2010년 헌책방 모습은 지금이든 앞으로든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느낌을 담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을 어떤 마음으로 사진 한 장에 남기고 있을까요.
헌책방을 찍는 수많은 사진기자와 촬영기사들처럼 ‘헌책방은 자취를 감추는 추억 어린 곳’이라는 이야기를 건네고자 하는가요? ‘이런 세상이라 하지만, 꿋꿋하게 책삶을 꾸리는 슬기롭고 멋진 헌책방이 곳곳에서 애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자 하는지요? 어떤 눈으로 자기 사진감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려 하는지, 어떤 머리로 사람들을 생각하며 사진기를 드는지 궁금합니다.
[168] 사진으로 남기는 추억 :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자기 모습이 사진에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사진을 보아도 그 사람이 그때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사진쟁이 눈에 담겨 사진으로 남은 사람들 모습을 보면서, 그때 자기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 돌아볼 수 있다. 사진에 담긴 사람들은 자기가 찍힌 일을 잊곤 하지만, 사진을 찍은 사람은 자기가 찍었던 사람을 잊지 못한다. 사진에 찍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잊히고 싶지 않아서, 앞으로도 추억으로 남고 싶어서 찍히는지 모르지만, 정작 잊히지 않는 추억을 간직하는 사람은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이다.
[169] 열 해 앞서 사진을 찍을 때 : 예전 모습이 담긴, 아니 예전에 내가 어울리던 사람들을 찍었던 사진을 스캐너로 긁는다. 이들 가운데 지금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 한 사람도 없을 듯. 어찌어찌 알음알음하면 연락할 전화번호나마 얻을 수 있겠지. 어쨌거나, 이 사진에 담긴 사람들은 이날 나한테 사진 찍히기를 많이 망설였다. 뭐 하러 찍느냐고. 그냥 술이나 마시자고. 그래도 나는 사진기를 들었다.
“이 녀석들아, 나중에 너희들이 이 학교를 마치고 열 해쯤 지나고 봐라, 너희들이 지금처럼 아직 스물도 안 된 파릇파릇하던 때 모습이 남아 있겠니?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지금 너희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잖니. 나는 너희들 지금 모습 때문에 찍지 않아. 나중에 너희들을 다시 만날 때를 생각해서 찍을 뿐이야. 앞으로 열 해 지난 뒤 다시 보자.”
그렇게 말한 지 이제 열 해. 후배들은 열 해 앞서 어떤 선배 하나가 자기들을 찍어 준 사진을 떠올리고 있을까. 아니, 선배인 나는 그때 사진으로 담았던 후배들을, 또래 동무들을, 선배들을 만날 수 있을까.
[170] 예전에 나는 사진사였지만 : 요즘은 어디를 가도 누구나 사진기 한 대쯤 가지고 있다. 디지털사진기든 손전화사진기든. 그렇지만 몇 해 앞서만 해도 어디를 갈 때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란 없거나 드물었다. 그때 나처럼 어디를 가도 꼭 사진기를 챙기는 사람은 ‘찍새’, 곧 ‘사진사’ 노릇을 했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나 혼자 내가 찍새라고 느낄 뿐, 다른 사람들은 찍새가 있건 말건 마음쓰지 않았다. 사진 찍는 나를 보고도 그저 싱긋 웃거나 여느 때와 똑같을 뿐, 딱히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가 사진을 찍고 모두가 모델이 된다. 지난날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란 찾아보기 어렵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찾으려는 사람도 드물다. 한편으로는 사진이 놀이가 되었구나 싶다. 놀이란 좋다. 즐겁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놀이가 자꾸만 허전하게 느껴진다. 왜일까. 지난날 찍새가 거의 없을 때에도 사진찍기는 놀이였다. 지금도 놀이이기는 마찬가지. 그렇다면 지난날에는 느끼지 못한 허전함이 왜 요새에는 느껴지는가.
글쎄, 내 느낌이지만, 지난날에는 어디 놀러갔을 때 사진을 찍어도 그만 안 찍어도 그만이었다. 애써 찍은 사진이 내 잘못으로 다 날라가 버렸어도 아쉬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괜찮아. 우리들은 거기 갔다 온 추억을 마음에 담고 있잖아’ 하면서 외려 나를 걱정해 주고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요새는 어디를 가든 꼭 사진으로 자취를 남긴다. 찍히는 모습은 넘친다. 그러나 마음에 남는 모습이나 이야기는 거의 없어지지 싶다. 하루만 지나도 새로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지고, 이틀 또는 한 주 지난 이야기는 아예 머리에든 마음에든 남지 않는다. 되레 컴퓨터나 메모리에 용량이 넘쳐서 사진 지우기에 바빠진다고 할까. 찍기 쉽고 지우기 쉬운 만큼 잊혀지기 쉬운 요즘 우리 삶으로 바뀌기 때문에, 요사이 수없이 찍히고 찍는 사진에는 마음이 안 가는지도 모르겠다. 사라지는 사진사와 함께 마음에 담는 추억까지 사라지는지도 모르겠다.
[171] 어릴 적 사진 : 내 어릴 적 사진은 아버지, 어머니, 이웃사람들이 찍어 주었습니다. 그분들 고마운 마음씀이 있어서 오늘까지도 제 어린 나날을 돌아볼 수 있고, 가만히 더듬으며 옛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