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로 '예산안 국회'는 마무리됐지만, 한나라당은 예산안 처리의 기세를 살려 이명박 정부의 '개혁법안'들을 처리하겠다고 예고했고, 민주당은 "더 이상 사기는 당하지 않겠다"며 이 법안들을 강력히 저지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여야 협상은 민주당을 당황하게 하고 한나라당에서도 공식적으로 '몰랐던 일'이라고 밝혔던, '이한구 예결위원장 행방불명 사태'라는 막판 변수에 밀려 결렬됐다.
한나라당은 예산안을 연말로 넘기지 않고 조기 처리했다는 명분과 함께, 포항SOC 관련 '형님 예산'과 '대운하 예산'으로 지목된 하천정비사업 예산 삭감 등 야당의 요구도 물리치고 정부 예산안을 큰 삭감 없이 처리하는 실리도 거뒀다.
결과적으로는 "여당과 협상을 오래 끌면 결과적으로는 야당만 손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챙겼다.
빛나는 한나라당, 흔들흔들 민주당
박희태 대표는 13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통과시킨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번 예산안 처리에 대해 "한나라당의 빛나는 승리"라고 표현하면서 소속 의원들을 향해 "개선장군처럼 보인다"고 치하하기도 했다.
민주당 처지에선 이번 '예산안 협상 투쟁'에서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제1야당의 위상까지 흔들릴 정도다.
차선책을 얻겠다며 수차례 원내대표회담에 참석해 '형님 예산'과 '대운하 예산'을 각각 500억원씩 삭감하는 명분을 챙기는 듯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것도 실패하고 무능한 야당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처음부터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물리적 저지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12일 예산처리'에 합의해준 것부터가 안일한 현실 인식 아니냐는 질책이 따르고 있고, 당 지도부에서도 이에 대한 반성이 나왔다.
송영길 대표최고위원은 14일 오전 민주당 지도부 기자간담회에서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활동 능력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우리 잘못이 있다"고 시인했다. 송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이) 우리가 여당 했을 때 정도의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철저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미FTA, 금산분리, 출총제, 신문법... '한판 싸움' 불가피
예산안은 한나라당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지만 아직 남은 임시국회 기간 동안 법안 처리 과정은 더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예산안 처리를 "졸속·밀실·날치기"로 규정하고 이를 비난하면서, 앞으로 법안 처리에 대한 강경 자세를 천명했다.
원혜영 원내대표는 14일 "예산안의 일방적 사기 처리에 강한 분노를 표명한다"며 "한나라당이 사과하고 야당을 존중해 국회를 운영하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한, 원만한 임시 국회 운영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한나라당에 경고했다.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한나라당이 역점적으로 추진하려는 법 중 33개를 선정한 바 있고 이 중 3개는 상임위 과정에서 이미 폐기됐다"며 "의원총회를 통해 상임위 차원에서 저지할 법안과 전체 당론에서 저지할 법안을 곧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으로선 이번 예산안 처리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한미FTA 비준 동의안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 제한 완화 ▲주공·토공 통합 등 공기업 개혁 ▲신문·방송 겸영 허용 ▲사이버모욕죄 신설 ▲국정원 기능 확대 등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예산안 처리'라는 부담 때문에 미뤄왔던 법안들을 일거에 밀어붙일 태세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3일 의원총회에서 "예산은 평화모드로 가고, 법안은 전쟁모드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예산 때문에 야당과 논쟁을 피하기 위해 상정을 보류한 법안이 많은데 이제는 야당과 당당히 논리 대결하고 법안을 주저하지 말고 상정해달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홍 원내대표는 예산안 처리를 위해 소속 의원들에게 당부했던 '해외 활동 자제'를 다시 한 번 강조했고 각 상임위 위원장과 간사들의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
민주당 "이한구 집중공격, 죽기살기로"... 민노·시민단체 연대 강화할 듯
민주당은 먼저 이한구 예결위원장이 여야 대표 협상에 나타나지 않았던 사태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여야 원내대표간 합의를 무시해 협상을 결렬시키고 '밀실 예산'을 만들어 온 책임이 전적으로 이 위원장에게 있다는 것이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우리 점잖은 원내대표를 이한구 위원장이 악용한 것 아니냐"며 "이 문제는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 것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 집중공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예산안과 법안은 분명히 다르다"며 "예산은 '1년 농사'지만 법안들은 제도로 정착되고 국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만큼 죽기살기로 싸워서 지켜낼 것을 지켜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내년 4월에 있을 재보궐선거를 위해서라도 민주당이 악법을 저지하는 성과들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회의장 점거 등 물리력을 동원해 법안처리를 저지할 가능성보다는 이명박 정부 추진 법안들에 반대하는 400여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민생민주국민회의'나 민주노동당과 적극적으로 연대해 원외투쟁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서 수석은 "한나라당이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결국에는 국민들과 함께 막아 나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지 않느냐"며 이러한 예상을 뒷받침했다.
[최근 주요기사] ☞ 교육청 나온 최혜원 교사 "같은 상황 와도 같은 결정" ☞ 가스통 시위꾼에 돈줄 터주기 나선 정부 ☞ [현장] 사천시민들 "강기갑 지켜 달라" ☞ 서랍 속에서 발견한 어머님 사생활 ☞ [엄지뉴스] 92세 할아버지가 연 크리스마스 파티 ☞ [E노트] 부시, 기자가 던진 신발에 맞을 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