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밴드의 멤버
.. 주말 시간은 자신이 결성한 밴드의 멤버들을 만나 합주 연습을 하면서 몽땅 쓴다 .. 《김종휘-너,행복하니?》(샨티,2004) 30쪽
‘결성(結成)한’은 ‘만든’이나 ‘연’이나 ‘꾸린’으로 다듬습니다. 그러나 “밴드를 결성하다”란 말은 아예 관용구처럼 굳은 말이지 싶습니다. 노래를 즐기는 젊은이들이나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거든요. “합주(合奏) 연습을 하면서”는 “함께 연습을 하면서”나 “함께 노래를 하면서”로 손질합니다.
┌ 멤버(member) : 단체를 구성하는 일원(一員).
│ ‘구성원’, ‘선수’, ‘회원’으로 순화
│ - 후반전에 들어와서 멤버 교체가 있었다
│
├ 밴드의 멤버
└ 노래패 사람
노래하는 사람들 말씀씀이를 살피면, ‘밴드(band)’를 꾸려서 ‘콘서트(concert)’를 엽니다. 이 콘서트에서는 ‘멤버(member)’를 소개하고, ‘앙코르(encore)’를 받습니다. 부르는 노래에, 또 노래말에, 또 노래를 뜯는 악기에는 하나같이 알파벳으로 된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노래꾼’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음악인(音樂人)’조차 아닌 ‘뮤지션(musician)’으로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신문이든 잡지든 방송이든, 노래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붙이는 이름에 ‘노래’라는 낱말이 들어간 일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하나같이 ‘뮤직’ 또는 ‘music’만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 흔한 취미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도 “노래 좋아해요”나 “노래를 즐겨 들어요”처럼 말하는 일이란 없이, “음악 감상을 해요”처럼 말합니다. “노래 들으러” 가는 우리들이 아니라 “음악 연주회”에 가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이러한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나이든 사람은 또 나이든 사람대로, ‘노래’를 멀리멀리 내팽개칩니다. 오로지 ‘音樂’과 ‘music’만 맴돌고 있습니다.
ㄴ. 멤버는 상당한 지식인
.. 멤버는 상당한 지식인들인 것 같은데, 꼬리가 영 안 잡힌단 말씀이야 .. 《우라사와 나오키/윤영의 옮김-플루토 (3)》(서울문화사,2007) 65쪽
‘상당(相當)한’은 ‘꽤나’나 ‘적잖이’나 ‘저으기(적이)’로 다듬어 줍니다. “지식인들인 것 같은데”는 “지식인들 같은데”나 “지식인들로 보이는데”로 손봅니다.
┌ 멤버는 상당한 지식인들
│
│→ 회원은 꽤나 지식인들
│→ 그곳 사람들은 적잖이 지식인들
│→ 모인 사람들은 내로라하는 지식인들
│→ 모두들 대단한 지식인들
└ …
우리가 예부터 써 온 말은 한자말 ‘회원’입니다. ‘회원’이라고 쓰는 한편, 때에 따라서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라고도 했습니다. 굳이 ‘모인 사람’이라고 하지 않아도 넉넉히 알아들었고, 주고받을 때에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요사이는 ‘멤버’뿐 아니라 ‘멤버쉽’이라는 말까지 두루 쓰일 만큼 미국말이 우리 삶 깊숙하게 파고듭니다. 벌레잡이를 해 주는 세스코라는 회사는, 자기들이 지켜 주는 곳에 ‘세스코멤버스zone’이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있기도 합니다. “모임 회원이에요” 하고 말하기보다 “까페 멤버예요” 하고 말하는 일이 한결 흔합니다. 아니, 아주 자연스럽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영어가 으뜸인 새로운 세상이고, 영어를 잘해야 하는 우리네 흐름이니, 이렇게 말투가 달라지는 일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니랴 싶습니다. 지난날에는 이 나라 지식권력 움켜쥔 이들이 한문으로 여느 사람들을 내리눌렀으니, 마땅히 ‘會員’이라고만 썼을 테고, 오늘날에는 지식권력 움켜쥔 이들이 영어로 우리 모두를 억누르고 있으니, 거침없이 ‘member’라고만 하지 않느냐 싶어요.
조금만 생각한다면 우리 나름대로 알맞는 토박이말을 빚어낼 수 있었겠지만, 조금씩 생각을 키웠다면 우리 깜냥껏 아름다이 토박이말 하나 엮어낼 수 있었겠지만, 우리들은 우리 손으로 우리 말을 가꾸거나 키우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손으로, 아니 우리 온몸으로 우리 말을 하찮게 다루고 보잘것없이 내버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흐름은 이어지거나 더 깊어지리라 생각합니다.
ㄷ. 《삼천리》 멤버들에게는
.. 이 말은 《삼천리》 멤버들에게는 분에 넘치는 격려의 말이자 편집위원에 대한 분명한 주문이었다 .. 《이진희/이규수 옮김-해협, 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삼인,2003) 238쪽
“분(分)에 넘치는”은 “너무 많은”이나 “대단한”으로 다듬고, “격려(激勵)의 말이자”는 “북돋우는 말이자”로 다듬습니다. “편집위원에 대(對)한 분명(分明)한 주문(注文)이었다”는 “편집위원한테 외치는 말이었다”나 “편집위원한테 바라는 말이었다”로 손봅니다.
┌ 《삼천리》 멤버들
└ 편집위원
워낙 흔히 쓰는 낱말 ‘멤버’라서 이와 같은 영어 낱말은 그대로 두자고 할 때가 한결 속시원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이와 같은 낱말을 털어내지 못한다면, 이 낱말뿐 아니라 다른 낱말을 보아주는 눈길이 없을 뿐더러 다른 말투를 손질하는 마음길이 없는 셈입니다. ‘멤버’를 쓰니 ‘서클’을 쓰고, 서클을 쓰면서 ‘페스티벌’로 이어지고, 페스티벌을 쓰면서 ‘퍼레이드’로 가지를 치고, 퍼레이드를 쓰다가는 ‘미팅’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보기글을 보면 앞에서는 ‘멤버’였지만 뒤에서는 ‘편집위원’입니다. 그러니까 둘은 같은 뜻으로 쓴 말이고, 멤버란 다름아닌 ‘잡지 삼천리를 엮는 사람들’이에요.
┌ 《삼천리》를 만드는 사람들
├ 《삼천리》를 엮는 우리들
├ 《삼천리》를 펴내는 이들
└ …
쓰고프면 영어도 쓰고 한자도 쓰고 일본말도 쓸 일입니다. 어릴 적부터 영어 가르치기에 매여 있는 우리 나라이니, 이제는 어릴 적부터 익숙한 말 ‘멤버’요 서클이요 페스티벌이요 퍼레이드요 미팅입니다.
어린아이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어머니가, “자, 이건 애플이야.” 하고 말을 합니다. 처음부터 ‘능금’이라고 가르치는 일도 없이 ‘사과(沙果)’조차도 아닌 ‘애플’입니다.
어떤 지식인은 ‘책’이라고 적으면 책맛이 안 나서 ‘冊’으로 적어야 한다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머잖아, 아니 오늘날 바로 이 자리에서도 ‘북’으로 적기만 해도 맛이 안 나서 ‘book’이라고 적어야 한다는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두렵습니다. 아니, 무섭습니다. ‘책’을 ‘冊’이라고 적는 지식인이나, ‘북’조차 아닌 ‘book’을 써대는 신문기자들이 무섭습니다. 소름이 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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