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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겨울 훌태를 이용해 일일이 벼나락을 털었습니다.
 한 겨울 훌태를 이용해 일일이 벼나락을 털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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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조심해요!"

논 옆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윗동네 아저씨가 옆 눈질을 하다가 개울 창으로 쑤셔 박힐 뻔했습니다. 한 겨울에 논바닥에서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는 훌태로 나락을 일일이 훌 터 대는 내 꼬라지를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보다가 잠시 중심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동네 사람들 온갖 눈총 다 받아 가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벼 탈곡을 다 마쳤습니다. 밭에 깔아 놓을 볏단까지 우리 집 개, 곰순이네 집 옆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습니다. 언제 적 얘기냐구요? 바로 오늘 12월 16일. 콤바인으로  한 두시간이면 끝날 일을 두 달 가까이 걸렸습니다.

지푸라기를 툴툴 털고 사랑방에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지금 내 등짝은 땀으로 흥건합니다. 논이 얼마나 넓어 이제사 마쳤냐구요? 두 마지기도 채 안 되는 손바닥만한 논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주식이라는 것을 투자하게 되면 내년쯤에는 부자 된다는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을 때 원시적인 농법, 손모내기로 시작하여 '훌태'와 '호롱개'까지 동원해 겨우 벼 수확을 마친 것입니다.

말 나온 김에 잠깐 샛길로 빠져 '경제 대통령' 얘길 좀 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 말을 '헛소리' 취급하면 되냐구요? 됩니다. 땅 한 평 없이 소작하고 있는 내겐 헛소리 그 이상으로 들립니다. 요즘 툭하면 고소하고 벌금 때리고 파면 시키고 별의 별 짓거리를 다 하는데 맘대로 하라지요.

주식이라는 것이 오르면 경제가 좋고 떨어지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 내가 아는 주식에 대한 상식은 그게 전부입니다. 벼 나락을 한 알 한 알 '훌태'로 훌 터 낸 단순 무식한 촌놈에게 가마니떼기처럼 가만히 앉아 주식에 투자하면 부자가 되느니 어쩌니 맥 빠지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면 그게 헛소리, 0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까?

더구나 스스로 경제 대통령이라 떠벌이고 다녔던 사람이 오히려 경제를 말아먹고 있질 않습니까?. 세계 경제가 다 어려워서 그렇다구요? 단순무식한 촌놈이 기왕 시작한 김에 좀더 단순무식한 경제 얘기 좀 하겠습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잘해야 진짜 '경제 대통령' 아닙니까? 경제논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익은 둘째 치고 최소한 본전치기, 원금은 까먹지 말아야 되질 않습니까? 경제가 좋을 때 누군들 경제 대통령을 못해 먹겠습니까?

경제가 어렵다고 자손대대로 물려받은 대자연을 까뭉개서 경제 살리겠다는 속셈은 또 뭡니까? 그런 식으로 경제를 살린다면 단순무식한 나 같은 촌놈 역시 '경제 대통령'될 수 있습니다. 개발인지 괴발인지 좌우지간 무지몽매한 사람들 현혹시켜 푼돈 쥐어 주고 그냥 불도저로 깡그리 밀어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우리 동네에서는 부모님이 뼈 빠지게 지켜온 땅 팔아먹는 자식을 애비에미도 모르는 후레자식이라고 합니다. 낳아주고 먹이고 애지중지 길러 실컷 가르쳐 놓았더니 그런 부모님 돕지 못할망정 겨우 남은 땅까지 죄다 팔아먹으려 한다면 그 인간은 그야말로 부모님 피 빨아먹는 기생충이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국토는 우리를 낳고 길러주고 먹이고 가르침을 주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국토는 부모님 품과 같습니다. 그런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지 못할망정 함부로 짓 까뭉개고 난도질하여 경제를 살리겠다니, 쌍욕 밖에 안나옵니다.  그런다고 경제가 살아납니까? '조상 땅 팔아 먹고 잘 된 인간 없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제 대통령' 얘기 꺼내면 머리에 쥐가 날려고 하니,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지극히 게으른 농사 얘기로 돌아가죠. 농사라 할 것도 없는 낯간지러운 농사일을 하다보니 개발이니 주식이니 따위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얘기며 또한 조상대대로 물려 받은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거기서 밥이 나오거든요.

주변 사람들과 비록 한 되 박씩 정도 나눠먹을 수 있는 손바닥만한 논이지만 우리 논에는 엄청 많은 일손이 들어갔습니다. 가뭄에 물꼬 대랴 죽을 똥을 쌌지만 그렇다고 농사일이 괴로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올해 벼 수확이 있기까지 행복했다는 얘기하고 싶어서 입니다. 

농기계 사용은 처음 논을 갈아엎어 써레질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삽으로 일일이 갈아엎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없는 소고삐 잡고 “이러 쩌쩌~” “일러루 절러루” 해가며 쟁기질을 할 수도 없는 처지니 어쩔 수 없었지요.

 모내기 보다는 장난치는데 정신 팔린 큰 아이 친구들을 작년에 이어 다시 불러 모았습니다.
 모내기 보다는 장난치는데 정신 팔린 큰 아이 친구들을 작년에 이어 다시 불러 모았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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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아내 체면 살려주기 위해 전문대에서 요청 들어온 강의를 덥썩 물어 야채 배달도 못갈 처지라서 그냥 이앙기로 모내기 할까 싶었죠. 그런데 우리 밭 옆댕이에 코딱지만한 밭을 얻어 상추며 토란이며 몇몇 밭작물을 심어 놓고 종종 놀러 오던 글쟁이 중학교 교사, 최은숙 선생이 옆구리를 꾹꾹 찔러댔습니다.

"선배님, 언제 모내기 할 꺼요?"
"올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건네요."
"그냥 손 모내기해요, 다들 불러서 하면 되잖아요."
"그럼 그럴까요?"

결국 최 선생의 기분좋은 꾐에 넘어가 예년처럼 올해도 손모내기를 시작 했습니다. 손바닥만한 논에다가 모를 심는데 장장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혼자서 이틀쯤 하다가 중학생 되고부터 당최 보기 힘든 녀석들, 우리 집 큰아이 친구들이 삼삼해 죄 불러 몇 줄 심고, 그 다음 날은 혼자서 하다가 또 그 다음날은 이웃사촌 영주네 엄마 아빠와 함께 심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빼미는 아침 부터 비가 주룩 주룩 내릴때 해결 했습니다. 서울에서 남녘 출판사 사장 하다가 고향에 내려와 버스터미널에서 편의점 하면서 지역사회운동을 하고 있는 조성일 형, 명동 만두집을 하다가 장사가 신통치 않아 다른 일거리 구상하고 있는 ‘만두 김 재덕’과 우리 부부 대책없는 부부 싸움 느슨하게 해주는 사람좋은 최은숙 선생까지, 최 선생은 '모내기 주동자' 답게 노는 날도 아닌데 연가까지 냈답니다. 아, 그리고 경기도 어딘가에서 한겨레신문 지국장을 하다가 공주로 마악 이사왔다는,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또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질퍽거리는 논흙에서 웃고 까부는데 정신 팔았던 우리집 큰 아이 친구들이나 어른들이나 별반 다를게 없이 행복한 모내기를 했습니다. 손모내기까지는 좋았는데 벼 수확이 문제였습니다. 남들 수확 다 끝난 뒤끝에서 보름이 훨씬 지났는데 벼메뚜기 폴짝 팔짝 뛰어다니는 우리 논은 여전히 황금빛이었습니다. 콤바인 모는 양반이 워낙 바쁘게 움직여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이번에는 조성일 형이 '유혹의 낫'을 들었습니다.

 '막걸리의 힘'으로 낫으로 직접 벼를 벴습니다.
 '막걸리의 힘'으로 낫으로 직접 벼를 벴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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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거 그냥 낫으로 베자구, 그 까짓 거 얼마나 된다구”
“베는 것은 문제가 아닌디, 그 다음은요?”
“거시기네 호롱개 있다며?”
“있긴 한디...”

머뭇거리고 있는데 최은숙 선생이 거들고 나섰습니다.

“선배님, 내 논은 언제 벨 건데요?” 

손모내기 할 때, 최 선생에게 코딱지 만한 논 한 빼미를 뚝 떼 주었거든요.(넘 땅 빌려 쓰는 주제에 인심 팍팍 썼지요) 그려, 일단 베고 보자는 심사로 조성일 형과 김 재덕, 최 선생 그리고 최 선생과 같은 학교 근무하면서 국선도 하시는 김영희 선생에 갑사 내원암 주지하다가 집도 절도 없이 여기저기 선방 떠도는 석호 스님까지 합세해 벼 베기를 시작했습니다.

김선생은 '국선도의 힘'으로 줄기차게 베 나갔고, 석호스님은 소꼴 베듯이 "쫘악 쫘악" 베 나갔습니다. 어려서 논에서 살았다는 조성일 형은 선수 중에 선수 였습니다. 벼 베는 소리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모내기 할때는 밀가루 반죽한 수제비 떼 놓듯 "쓱쓱" 꽂아 놓더만 "싹뚝 싹뚝" 작두로 여물 써는 소리처럼 경쾌했습니다. 그 나머지 우리는 벼를 베기보다는 죄 뜯기 일쑤였습니다.

새참 시간, 논바닥에 보기 좋게 둘러 앉아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다가 저걸 어떻게 일일이 다 털어내나 싶어 잠시 뒷목이 뻐근했습니다.

“암만해도, 그냥 테만 둘러 놓구선 콤바인 불러다가 해야 겠슈, 저걸 어떻게 다 호롱개로 턴댜?”
“에이, 그냥 햐, 금방 할 수 있다니께”
“어려서 일하는 거 보기만 했지, 호롱개 사용해 본적이 없어서...”
“아이 씨, 괜찮어, 한 나절이믄 금방 한 다니께, 주동자인 최선생은 어뗘?”
"아, 해요, 해, 못할 거 뭐 있어"

 뒤에 석호스님과 조성일형. 앞에 김영희 선생과 아내. 그리고 새참 얻어 먹으러 온 선우와 여일이, 우리집 작은 아이 인상이, 밀짚모자 쓴 나, 최은숙 선생은 사진을 찍고 있어 보이지 않고 '만두'는 오후에  급한 일이 그 맛난 새참도 못먹고 갔습니다.
 뒤에 석호스님과 조성일형. 앞에 김영희 선생과 아내. 그리고 새참 얻어 먹으러 온 선우와 여일이, 우리집 작은 아이 인상이, 밀짚모자 쓴 나, 최은숙 선생은 사진을 찍고 있어 보이지 않고 '만두'는 오후에 급한 일이 그 맛난 새참도 못먹고 갔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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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몇 잔에 힘이 부쩍 쏟는지 우리들 중 고령자인 조성일 형이 다시 낫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결국 그날, '막걸리의 힘'으로 벼보다 더 키 큰 피가 뒤섞여 있는 큰 논빼미 까지 다 벴습니다. 베고 나니 별거 아니었습니다.

그 후, 이런 저런 일 때문에 니적니적 사흘에 걸쳐 볏 가래만 세워놓고 한 달 가까이 차일피일 미뤄두고 있는데 아랫집 유씨 할아버지께서 '너 잘 만났다'식으로 혀를 찼습니다.

“인우 아부지, 아직두 나락 안 털은 겨?”
“호롱개를 빌려와야 하는디, 요즘 공연히 바뻐서유... 때 되면 끝내겠지유”
“우리 집에 훌태 있는디, 그걸루 혀”
“훌태유? 어이구 그걸루 언제 다 털어유”
“예전엔 혼자서 열 마지기도 털었는디”
“열 마지기유?”

열 마지기를 털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용기가 생겼습니다. 나의 영원한 농사 사부님, 유씨 할아버지네 광에 수십년 잘 모셔져 있는 훌태는 멀쩡했습니다.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는 '훌태'라는게 요렇게 머리빗 처럼 생겼습니다. 우리집 곰순이가 '저것이 뭐시여' 쳐다봅니다.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는 '훌태'라는게 요렇게 머리빗 처럼 생겼습니다. 우리집 곰순이가 '저것이 뭐시여' 쳐다봅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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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뒤적거려 보니 머리빗 처럼 생긴 훌태는 예전에 벼훑이, 그네, 첨치, 천치(千齒)라고도 불리웠다고 합니다. 훌태는 나무틀에 쇠로 된 긴 이빨이 20여 개가 있고 그 나무틀에 네 개의 다리 끼워 여덟팔자 모양으로 세워놓게 됩니다. 틀이 흔들리지 않도록 달아놓은 디딤 발판을 밟고 쇠 이빨 사이에 벼를 끼워 잡아 댕겨 훑어내는 18세기형 탈곡기입니다.

할아버지네 훌태는 다리가 두개 밖에 없어 적당한 나뭇가지를 끼워 놓고 발판을 매달았습니다. 훌태를 논바닥 한 구탱이에 설치해 놓고 기세 좋게 털기 시작했지만 일이 서툴러 이빨 틈새에 걸리거나 나락 모가지가 통째로 잘려 나가곤 했습니다. 부지런히 털었지만 반나절 동안 콤바인 자루 하나 반이 전부였습니다.  힘은 들었지만 나락 한 알 한 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기분은 좋았습니다.

끝장을 보겠다고 작심을 했는데 그 다음날, 비가 내렸습니다. 사나흘 비에 젖은 나락을 말려 다시 털기 시작해 한 자루를 더 털었습니다. 그러다가 함박눈이 내려 일손을 놓았습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유로 한동안 일손을 놓고 있는데 별명이 쌀밥인(쌀밥이 그 어떤 보약 보다 낫다고 말해) 도 닦는 후배 김태범와 함께 놀러 온 그의 엄니가 혀를 찼습니다.

“어이그, 저걸 어쪄, 남들이 보믄 욕혀유, 우리 집에 호롱개가 있으니께, 아예 논바닥에 남아 있는 볏 가래를 가져 와유, 우리가 도와 줄테니...”
“아, 그냥 훌태로 털어 내쥬 뭐”
“가져 오시라니께 그러네”

죄송스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태범이네 엄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직 다 안 털어쥬? 그러다가 나락 다 썩는디, 얼른 가져와유, 이웃 좋다는 게  뭐여, 안가져 오믄 매일 전화할텨."

그리고 바로 어제, 태범이네 엄니 성화를 핑계 삼아 트럭 가득 볏 가래를 싣고 쪼르르 달려갔습니다. 쌀밥은 요즘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어 그의 부모님과 함께 호롱개를 돌렸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이웃지간에 이렇게 얼굴 볼 수도 있고... 예전엔 다 이렇게 일 했어유”
“힘드신데 공연히 일거리만 만들어 드렸네유”
“아이구 아뉴, 이 까짓 거 얼마나 된다구, 그냥 재미삼아 하는 거지”

쌀밥네 부모님과 이런저런 기분 좋은 얘기를 주고 받아가며 한 명이 볏 가래를 풀어 놓으면  다른 한 명은 호롱개로 털어내고 또 다른 한명은 볏단을 묶었습니다. 그렇게 나락에 뒤섞인 지푸라기를 대형 선풍기로 날려 보내 콤바인 자루에 담아 놓기 까지 반나절도 채 안 걸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밭에 덮을 만큼의 볏짚을 집으로 옮겨 놓고 나머지는 논바닥 여기저기에 휘휘 깔아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논바닥에 널려 있는 나락을 주워 모았습니다. 그걸 다시 훌태로 털면서 오만 생각을 했습니다.

 나락을 한 웅큼 쳐 넣어 말그대로 훌터 내는 '훌태'
 나락을 한 웅큼 쳐 넣어 말그대로 훌터 내는 '훌태'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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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나락이 나오기 까지 얼마나 많은 손이 가는가? 이제 그 진정한 뜻을 조금은 이해 할 것 같습니다. 콤바인을 사용하면 벼를 베 탈곡해서 자루에 담기 까지 한두 시간이면 뚝딱 해치울 일이었습니다. 콤바인 기사 단 한 사람이면 끝나는 일이었는데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던 것입니다.

잠시 잠깐이었지만 논일을 할 때, 우리 집 아이들 친구와 선후배들 모두가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그것은 논이, 땅이, 자연이 준 행복이었습니다. 쥐새끼들 피해 없이 조만간 정미기에서 곧장 나온 쌀 한 되박씩을 돌리게 되면 또다시 그런 행복한 얼굴들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 집니다.

이런 얘기하면 "그럼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냐" "그래야 꼭 행복한 것이냐"는 식으로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자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갈수도 없고요. 가끔씩은 뒤 돌아 보면서 느리게 길을 가자는 것이지요. 주식이니 경제 개발이니 발전이니 떠드는 인간들의 속셈에 질질 끌려가지 말자는 것이지요. 그런 인간들 속셈 빤하지 않습니까? 앞에서 말했듯이 이미 ‘헛소리 하는 대통령’이 대표자로 나서 적나라하게 그 실상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가다가 쉬다가 소풍처럼 여유롭게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느리게 가는데 빨리 좀 가자며 정신 사납게 등 떠밀거나 멱살 잡고 끌고 가려는 싸가지 없는 인간들 만나게 되면 한바탕 싸우더라도 말입니다. 여유가 있어야 제대로 싸울 수 있습니다. 싸울 때 여유 없이 분노만 들이대면 다리 힘이 빠져 이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맨손으로 소뿔을 잘랐다는 최강 격투사, 최 배달 선생이 생전에 느릿느릿 태극권 하는 진노인과 대련을 붙어 보기 좋게 패배 했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

주식이니 개발이니 경제 발전이니 따위에 신경 쓰다보면 평생 거기에 목을 매야 할 것입니다. 앞차 추월하는 거 좋아하다 보면 또다른 자동차 뒤꽁무니만 따라 다녀야만 합니다. 자본에 가치를 두고 자본가와 싸워서는 절대로 이겨낼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온갖 술책에 말려들어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급하게 정신없이 가는 것과는 달리 느리게 가다보면 행복이든 뭐든 간에 분명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습니까?


#한 되박의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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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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