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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 -

 

 인천에는 골목마다 ‘닭집’이 꼭 있습니다. 어디를 가도 튀김닭 파는 집이 있습니다. 통닭 파는 집은 어디에나 어김없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앞 분식집에도 닭꼬치를 팝니다. 술집 차림판에도 튀김닭은 반드시 적혀 있습니다. 케이에프시 같은 데뿐 아니라 맥도날드 같은 데에서도 닭다리나 닭몸통을 튀겨서 팔고, 또 햄빵에 닭살을 넣어서 팝니다. 신포시장에서 매운 닭강정을 사먹을 수 있습니다. 저잣거리 안쪽에서는 ‘튀김옷에 풀 입힌 닭(야채치킨)’을 팔기도 합니다. 여느 저잣거리, 또는 ㅇ마트나 ㄹ마트 같은 큰 곳, 또는 조금 큰 동네 마트에서는 날닭을 얼려서, 또는 차갑게 해서 팔기에, 이와 같은 닭을 사서 집에서 튀기거나 찌거나 삶아서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을 조금 더 헤아린다면 답동성당 앞 가톨릭농 매장에서 유기농 날닭을 사먹을 수 있어요.

 

 우리는 닭집에 가서 튀김닭을 사먹기도 하고, 닭집에 전화를 넣은 다음 때 맞춰서 냄비를 들고 가서 튀겨진 닭을 그릇에 받아 오기도 합니다. 또는, 가톨릭농 나들이를 해서 날닭 한 마리를 산 뒤, 저녁이나 아침으로 손수 튀기거나 쪄서 먹기도 합니다. 어제는 옆지기가 바깥 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면서 동네 마트에서 싸게 파는 닭을 1킬로그램 사 와서 1/3은 찌고 나머지는 튀겼습니다.

 

 

 - 빨래 -

 

 닭집에 나들이를 가거나, 동네 가게에 술 한 병 사러 나들이를 갈 때면, 송림동으로도 가고 신포동으로도 가며 도원동으로 가다가 율목동으로도 갑니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사진기 하나만 들고, 옆지기와 갓난쟁이를 업고 안고 하면서 골목마실을 합니다. 며칠 앞서 아기를 안고 창영동을 나서 율목동을 지나 경동 골목으로 접어들 때입니다. 늘 지나다니는 길인데, 오늘은 율목동에 있는 ‘율목컴퓨터크리닝’이라는 제법 묵은 가게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언제였던지 좀 가물가물한데, 한때 ‘컴퓨터크리닝’이나 ‘드라이크리닝센터’ 같은 이름을 다는 일이 번지곤 했습니다. 예전에는 모두 ‘세탁소’라는 이름을 썼는데, 하루아침에 ‘드라이’와 ‘크리닝’과 ‘컴퓨터’라는 말을 사이에 넣은 이름으로 바뀌었어요. 그러던 1990년대 첫무렵에는 ‘빨래방’이 새로 나오면서 ‘빨래해 주는 가게에 붙는 이름’이 크게 꿈틀했습니다.

 저희는 집에 세탁기를 들이지 않습니다. 저는 혼자 살던 1995년부터 이제까지 세탁기를 써 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두 손 힘에 기대어 손으로 빨래를 했습니다. 손으로 하니 ‘손빨래’인데, 우리가 두 손으로 빨래를 하지 않는다면 ‘기계빨래’가 될까요. 그러나 사람들이 쓰는 ‘빨래 해 주는 기계’는 ‘빨래틀’이 아닌 ‘세탁기’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하긴, 지난날 집집마다 골목마다 돌아다니면서 빨랫감을 거두어 가던 일꾼들은 ‘빠∼알∼래!’ 하고 외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세∼에∼탁!’ 하고만 외쳤습니다.

 

 - 우리 말 운동 -

 

 춘천에 계시는 어느 분이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제가 내는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을 재미있게 보셨다면서 출판사로 제 전화번호를 알아본 다음 전화를 걸어 오셨는데, ‘최종규 씨가 우리 말 운동을 하니 말하면서 조심스러워진다’고 하십니다. 저를 처음 만나며 인사하는 분들도 으레 이 비슷한 말씀을 합니다. ‘우리 말 운동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우리 말을 알맞고 바르게 써야 한다’는 생각에 말이며 글이며 매무새며 굳어지는가 봅니다.

 

 왜 그러실까 하고 궁금하고, 굳이 그래야 할까 궁금하지만, 가만히 따지고 보면, 이분들 매무새나 말씀은 맞습니다. 농사짓는 사람 앞에서 농사일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며, 고기잡는 사람 앞에서 고기잡이를 아무렇게나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우리 말 운동을 하니 마땅히 제 앞에서는 말이며 글을 엉망진창으로 쓰지 않도록 추스르셔야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은 ‘우리 말 운동을 하는 사람 앞’에서만 쓰는 말이나 글만이 아닙니다. 식구들하고도 나누고 이웃하고도 건네며 동무하고도 주고받습니다. 낯모르는 사람하고도 하는 말이며, 낯익은 사람하고도 쓰는 글입니다. 편지 한 장을 쓰건 서류 한 장을 쓰건, 전화 한 통을 걸건 이야기 한 자락을 들려주건, 우리들은 언제나 우리 생각과 뜻을 가장 알뜰히 드러낼 수 있는 말을 하고 글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과 글을 올바르게 추슬러야 해요. 밥을 할 때 아무 밥거리를 섞을 수 없고, 빨래를 하면서 아무 비누나 쓸 수 없으며, 책을 읽을 때 아무 책이나 대충 집어서 읽을 수 있겠습니까. 혼인을 하거나 사랑을 할 사람뿐 아니라 함께 일을 하거나 함께 놀 사람도 아무나 골라잡지 않습니다. 자기 몸과 마음에 쏙 들면서 걸맞은 짝을 찾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나 글도 다르지 않아서, 늘 가장 알맞춤하게 쓸 말을 살펴야 하고, 가장 올바르게 쓸 글을 헤아려야 합니다. 굳이 저 같은 사람 앞에서만 뒤통수를 긁적여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저 아닌 누구 앞에서라도 곰곰이 되씹어야 합니다. 어린이 앞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도 똑같습니다. 가까운 사람들하고도, 동네 이웃하고도, 구멍가게 아지매하고도 다르지 않아요. 한결같아야 하고 꾸준해야 합니다.

 

 

 - 사진기 -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중국 나들이를 다녀오셨다면서, 아는 분한테 얻은 ‘디카’로 천 장 가까이 찍었다고 하십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저는 ‘디지털사진기’라 말하고 아주머니는 ‘디지털카메라’라고 말합니다.

 

 사진 좋아하는 분들은 으레 ‘출사’라고 나가는데, 저는 늘 ‘사진 찍으러’ 다닐 뿐입니다. 사진관에서든 어디에서든 흔히 ‘촬영’을 한다지만, 저는 언제나 ‘찍기’만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카메라’ 아닌 ‘사진기’를 두 대 들고 헌책방 마실을 다녀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우리말#우리 말#한글#국어순화#토박이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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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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