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수업 약 20여 분 전인데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수업 약 20여 분 전인데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 김아라

관련사진보기


지난 20일 오후 2시, 서울역사박물관 로비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혀 공통분모가 보이지 않는 이들이 한데 모인 까닭은  3시부터 시작하는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를 듣기 위한 것.

이날 강의는 장회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물질, 생명, 인간 – 그 통합적 이해'의 마지막 시간으로, 5주차마다 이뤄지는 종합토론 자리였다. 수강신청은 2시 20분부터 시작되지만 훨씬 전부터 많은 이들이 줄서서 기다렸다. 이곳에서 수강신청을 마치고 배포된 책자를 읽고 있던 초로의 이진달(68)씨를 만나보았다.

"매번 일찍 와서 기다려야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는 이씨의 말처럼 실제로 이날 강의는 260여 좌석이 빼곡하게 찼다. 앉을 자리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강당 전체가 참가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일부는 계단에서 강의를 듣기도 했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불리는 시대에 조금만 늦어도 자리를 잡을 수 없는 풍경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난 10월부터 '대중과의 소통을 통한 인문학'이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된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대표 석학들을 대학 밖으로 불러내다

이 날 이루어진 종합토론 시간. 토론자뿐 아니라 청중에서까지도 질문이 오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날 이루어진 종합토론 시간. 토론자뿐 아니라 청중에서까지도 질문이 오가 열띤 토론을 벌였다.
ⓒ 김아라

관련사진보기


이 강좌는 인문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이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로 2007년 10월부터 2008년 8월까지 10명의 한국 대표 석학들로 구성된 1기 강좌를 선보인 바 있다.

큰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학진 관계자는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의 강의임에도 청중들의 꾸준하고 활발한 참여에 놀랐다"며 "시민들의 요청에 의해 2기 강좌를 지난 10월부터 다시 개설했다. 순수인문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경제학까지 강좌 스펙트럼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각 분야의 석학이 4주간 강의한 후 마지막 주에 질의와 응답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 속도감 있고 흥미롭다고 평가된다. 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강의가 이해하기 쉽고 자료가 풍부해 호응도가 높다.

"노인층과 인문학이 코드가 맞는 것 같아요"

주목할 만한 것은 대다수의 수강생들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층이라는 점이었다. 이씨에게 장년층 참여 비율이 높은 이유를 묻자 "인문학 특강 프로그램에는 한국 전통사상 및 고전에 대한 강의가 많은데, 이러한 것들은 상대적으로 노인들이 이해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철학 등을 배운 경험이 있어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학습을 점검하기도 한다고.

또한 시간대가 토요일 오후라는 점도 장년층의 참여가 높은 요인이라 말한다. "아무래도 우리 나이는 이제 막 현업에서 은퇴를 하고 대부분 주말을 무료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게 있는 것보다야 어렵게라도 걸음해서 뭐라도 배우는 게 나으니 노인들이 발걸음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인문학 특강의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첫째, 지나치게 순수학문 중심의 고차원적 강의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현실생활과 관련도가 높은 시사적인 부분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지적이 많다. 이씨는 "교수들의 강의라 아주 깊이는 있지만 폭이 좁은 것이 아쉽다"고 했다. 또 더 많은 대학교수들로 강사진이 구성돼 강의의 다양성을 느꼈으면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둘째, 청중과 청중 그리고 청중과 교수 간 쌍방향 소통을 더 늘려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는 교수 일방의 강의 방식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학생들의 참여와 의견공유가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기부터 특강에 개근 출석 중인 오산고등학교 사회담당 정훈식(55) 교사는 "배경지식을 보충하면서 학교 강의에 보탬이 될까 해서 왔다"며 "인문학 강좌 홈페이지를 의사소통의 장으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교수들에게도 성찰의 기회가 돼"

종합토론을 끝으로 5주간의 강의를 마친 장회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사진에서 가운데)
 종합토론을 끝으로 5주간의 강의를 마친 장회익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사진에서 가운데)
ⓒ 김아라

관련사진보기


이날 종합토론을 끝으로 5주간의 강의를 담당했던 서울대학교 장회익(71) 명예교수는 "대학강의와는 다르게 최대한 통합적으로 정리해서 제시하고 전달하는 방법을 택했다"며 새로운 인문학 강의법을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인문학 강의는 너무나 틀에 갇힌 것이 아닐까 한다"면서 "제3자의 시선에서 보다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계기도 됐다"는 소감을 밝혔다.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을 대학과 학문의 틀에만 가두어 놓는 바람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학계 내부의 반성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 말이다.

대학 강단에서만 존재하는 학문은 생명력을 잃고 말지만, 사회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대중으로 뛰어드는 학문은 그만큼 지속성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는 어떻게 하면 한국 인문학이 대중과 접점을 형성할 수 있을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진달씨는 마지막으로 "인문학이라면 막연한 두려움과 거리감이 있었는데, 인문학강좌를 통해 거리감이 많이 좁혀진 것 같다"며 인문강좌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다가오는 27일부터는 이혜순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전통과 수용 - 한국고전문학과 해외교류'를 주제로 한 강의가 5주 동안 진행된다.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에 가면 알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태그:#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자를 꿈꾸고 있는 학생입니다.하고싶은말이 많은데 이공간을 빌어 목소릴 내고 싶네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