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커밍아웃(coming out) 1
.. 세상을 떠나기 약 3년 전 형률 씨는 원폭 2세 환우로서 ‘커밍아웃’했다 … 원폭 2세로서 유전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와 같은 공개적인 자기선언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 《전진성-삶은 계속되어야 한다》(휴머니스트,2008) 22, 64쪽
“약(約) 3년(三年) 전(前)”은 “거의 세 해쯤 앞서”나 “얼추 세 해 앞서”로 손질합니다. ‘과연(果然)’은 ‘참으로’나 ‘참말로’로 손보고, “올바른 선택(選擇)이었는지”는 “올바른 일이었는지”나 “올바로 한 일이었는지”로 손봅니다. “공개적(公開的)인 자기선언(自己宣言)이”는 “사람들 앞에 자기를 드러낸 일이”로 다듬어 줍니다.
┌ coming-out : (상류 계급 여성의) 사교계 정식 데뷔, 데뷔 축하 파티;
│ 《구어》 동성애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일
│
├ 원폭 2세 환우로서 커밍아웃했다
│→ 원폭 2세 환우로서 자기를 드러냈다
│→ 원폭 2세 환우라고 자기를 밝혔다
│→ 원폭 2세 환우임을 떳떳이 밝혔다
│→ 원폭 2세 환우임을 모두 앞에서 말했다
└ …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커밍아웃’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사교계 데뷔’를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나옵니다. 덧달린 뜻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일’이라고 나옵니다.
보기글을 쓴 분은 작은따옴표까지 붙이면서 ‘커밍아웃’을 이야기합니다. 아무래도 이 낱말 ‘커밍아웃’을 남달리 쓰고 싶어서 이렇게 했을 테지요. 인터넷을 뒤적여 ‘커밍아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좀더 꼼꼼히 살펴봅니다.
[커밍아웃] 영어 ‘come out of closet’에서 유래한 용어로, 번역하면 ‘벽장 속에서 나오다’는 뜻이다. 동성애자(同性愛者)들이 더 이상 벽장 속에 숨어 있지 않고, 밝은 세상으로 나와 공개적으로 사회에 자신의 동성애적 취향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성애자 스스로가 동성애자임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동성애자 집단에서 자신의 성 취향을 드러내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커밍아웃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가족이나 직장ㆍ학교 또는 일반 사회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모로 따져 볼 때, ‘커밍아웃’이라는 낱말을 쓰자면,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자리 아니고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보기글을 쓴 분은 굳이 ‘커밍아웃’을 썼습니다. 동성애자가 자기 정체성을 밝히면서 사람들한테 손가락질을 받고 따돌림도 받는 우리 사회 흐름을 돌아보면서 이와 같은 낱말을 쓴 셈일까요. 원폭 2세 환우임을 밝히는 일도 큰 틀에서는 ‘커밍아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 원폭 2세 환우로서 ‘커밍아웃’했다 (x)
└ 이와 같은 공개적인 자기선언이 (o)
그런데, 글쓴이는 곧바로 “공개적인 자기선언”이라는 말도 씁니다. 다만, “공개적인 자기선언”은 이 대목에 딱 한 번 나오고, 보기글이 실린 300쪽쯤 되는 책에서는 예닐곱 차례쯤 ‘커밍아웃’만 따옴표를 치면서 이야기합니다.
┌ 자기밝힘
├ 자기드러냄
├ 자기내보임
└ …
‘자기선언’이라고 하는 말은 느낌이 살아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자기밝힘’처럼 적어 볼 생각은 아예 할 수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떳떳이 자기를 드러냄”이나 “당차게 자기를 내보임”처럼 적는다면 느낌을 살릴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들은 왜 우리 참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는 자리에서 ‘드러낸다’든지 ‘밝힌다’든지 하고는 이야기를 못하는지 궁금합니다.
ㄴ. 커밍아웃(coming out) 2
.. 오직 대한민국 1퍼센트의 상층을 위한 정부임을 당당히 커밍아웃해야 한다 .. 《심상정-당당한 아름다움》(레디앙,2008) 270쪽
“대한민국 1퍼센트의 상층(上層)을 위(爲)한 정부”는 “대한민국 1% 꼭대기에 있는 사람만 생각하는 정부”나 “대한민국 1% 잘사는 사람만 껴안는 정부”로 다듬고, ‘당당(堂堂)히’는 ‘떳떳이’로 다듬어 줍니다.
┌ 당당히 커밍아웃해야
│
│→ 떳떳이 말해야
│→ 환하게 밝혀야
│→ 소리높이 외쳐야
└ …
우리가 쓸 만한 낱말을 찬찬히 살피면서 알맞게 들여온다면, 처음부터 올바르게 쓰이지 않는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라밖 영어를 들여오는 모습을 보면, 굳이 들여놓지 않아도 될 성 싶던 낱말이 참 많습니다. 우리한테 얼마든지 알맞는 낱말이 있을 뿐더러, 두루 쓰고 있는 낱말 또한 있지만, 이모저모 꼼꼼하게 살피면서 뜻과 쓰임새를 넓히는 일이 퍽 드뭅니다. 우리 깜냥껏 우리 낱말을 알뜰살뜰 새로 짓는 일 또한 드뭅니다.
어떻게 보면,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우리처럼 쓰임새나 뜻이나 넓히지 않고 있는 낱말임에도, 우리한테는 쓸모가 많아서 여러모로 쓰임새나 뜻을 넓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영어로 두루 쓰지만, 정작 영어를 쓰는 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낱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을 텐데, 그 사람들이 못 알아듣건 말건 우리끼리 즐겁게 쓰면 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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