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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라 가는 길 쭉 뻗은 포장도로가 펼쳐진다
부하라 가는 길쭉 뻗은 포장도로가 펼쳐진다 ⓒ 김준희

'부하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원'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중앙아시아 최고의 이슬람 종교도시이자, 과거에는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인 만큼 이 도시도 여러차례 수난을 겪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칭기즈칸의 침공이었다.

칭기즈칸은 1218년에 지금 카자흐스탄 시르다리야 강 중류에 있는 도시 오트라르를 점령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군대를 이끌고 키질쿰 사막을 건너서 부하라로 진격했다. 당시 이 지역의 군주였던 무함마드는 약 40만 명에 달하는 군사를 이끌고 칭기즈칸에 맞섰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부하라를 함락시킨 칭기즈칸은 1220년 경에 이 지역의 대부분을 손에 넣었다고 한다. 내가 지금 가고있는 부하라가 바로 그곳이다. 내가 키질쿰 사막을 건넜듯이 칭기즈칸도 군대를 이끌고 그 사막을 통과한 것이다. 그 군사가 적어도 수만 명은 되었을텐데, 이 커다란 사막을 건너는 일 자체가 고생이었을 것이다.

수만 명의 군사와 말들에게 어떻게 식량을 조달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물을 어떻게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을까. 칭기즈칸이 걸어온 길은 오트라르-부하라 구간이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어떤 길을 따라서 알프스를 넘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 처럼, 칭기즈칸이 어느 경로를 지나 키질쿰 사막을 건넜는지도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번 그 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트라르와 부하라를 연결하는 최단구간을 설정해보면 어떨까. 칭기즈칸이 군대를 이끌었던 것 처럼, 나도 배낭을 끌고 그 길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 한복판에서 어쩌면 당시의 유물이나 무기가 발견될지도 모른다.

키질쿰을 뚫고 온 유목의 전사들은 사기가 최고로 충전되었을 것이다. 사막의 열기가 그들의 가슴에도 불을 지르기 때문이다. 막막한 사막을 지나서 부하라의 높은 첨탑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들은 거대한 함성과 함께 돌격했을 것이다. 수백 년의 역사가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전장에서 그들의 용기도 하늘을 찌를듯이 높다.

그 앞에서 무함마드의 군대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부하라를 포기한 무함마드는 서쪽으로 도주하지만 칭기즈칸은 그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칭기즈칸의 추격을 받으며 도망치던 무함마드는 카스피해의 작은 섬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이 지역에 '몽골에 의한 평화'가 구축되던 순간이다.

키질쿰 사막을 건넌 칭기즈칸과 티무르

부하라 가는 길 밭에 일하러 가는 소년
부하라 가는 길밭에 일하러 가는 소년 ⓒ 김준희

부하라 가는 길 가즐리에서 100킬로미터, 부하라에 도착하다
부하라 가는 길가즐리에서 100킬로미터, 부하라에 도착하다 ⓒ 김준희

그로부터 약 200년 후에, 또다시 군사를 이끌고 키질쿰 사막을 건너는 풍운아가 나타난다. 사마르칸드를 수도로 중앙아시아를 제패한 아미르 티무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인도의 델리와 바그다드까지 점령하며 티무르 제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명나라를 정복하기 위해서 군대를 이끌고 사마르칸드를 출발해서 키질쿰 사막을 건넌 것이다.

하지만 노환과 병마를 이기지 못해서 그 도중에 사망하고 만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티무르가 죽지 않고 명나라에 쳐들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명나라의 왕은 영락제였다. 명나라의 왕들 중에서 가장 호전적이라고 알려진 인물이다. 영락제와 티무르가 맞붙었다면 결과야 알 수 없겠지만 건곤일척의 한판승부를 벌였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걷다보니까 '가즐리 100'이라고 써진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가즐리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 오오, 드디어 부하라에 도착했구나! 사막은 어느새 목화밭과 마을로 변했고, 좁은 사막의 길은 뻥뚫린 넓은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군대를 이끌고 부하라에 도달한 칭기즈칸도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발걸음을 빨리하며 구시가지로 향했다. 시간은 오후 5시. 검문소의 경찰들은 친절하게도 구시가지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버스를 타고 가라고 권하지만, 나는 이 두발로 걸어서 부하라의 중심으로 들어갈 것이다.

"차 한잔 마시고 가!"

길 한쪽에 앉아있던 노인들이 나를 부른다. 이미 부하라에 당도한 이상 서두를 필요는 없다. 나는 그 옆에 앉아서 노인들이 주는 뜨거운 녹차를 한잔 천천히 마시고 다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구시가지로 가는 길은 울퉁불퉁한 좁은 골목길이다. 나는 짐을 모두 풀어서 배낭을 메고 핸드카를 손에 들고 열심히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구시가지. 커다란 연못 라비하우스 주변에는 B&B(Bed & Breakfast) 호텔들이 많다. 나는 그중에서 라비하우스 바로 앞에 있는 파티마 호텔로 들어섰다. 영어를 잘하는 젊은 여인이 나를 맞아준다.

작은 호텔에서 열흘만에 샤워를 하다

역사도시 부하라 연못 라비하우스
역사도시 부하라연못 라비하우스 ⓒ 김준희

"방 있어요?"

그녀는 나한테 2층에 있는 작은 방을 보여준다. 작은 방에 침대하나, 방 한쪽에 욕실과 화장실이 있다.

"이 방은 하루에 얼마에요?"
"아침식사 포함해서 하루 30달러인데 좀 싸게 해줄 수도 있어요."
"아침식사 안할테니까 하루에 20달러에 안될까요?"
"아침식사 포함해서 하루에 25달러에 해줄게요. 우리 호텔 아침식사는 아주 좋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녀가 열쇠를 주고 나가자 나는 짐을 정리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얼마만에 씻는 건지 모르겠다. 계산해보니까 11일만에 샤워를 하고 5일만에 머리를 감는 것이다. 물로 머리를 헹구니까 시커먼 구정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렇게 샤워를 하고 사막에서 땀에 절은 옷도 모두 빨았다. 부하라의 강한 햇볕속에서 빨래는 하루만에 다 마를 것이다. 이제 나는 새로 닦고 광을 낸 구두처럼 깨끗해졌다. 라비하우스 앞의 노천카페에 앉아서 맥주와 꼬치구이를 주문했다. 역시 부하라는 관광도시답게 수많은 외국인들이 몰려다닌다. 성수기가 지난 9월 중순인데도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있다니.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음식가격도 비싸다. 맥주 한병에 2500숨을 받고 꼬치구이는 하나에 2000숨을 받는다. 사막에서 먹은 음식과 비교하면 거의 2배 가까이 비싸다. 내일 하루는 부하라에서 푹 쉬면서 좀 싼 맥주집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부하라를 방문한 수많은 외국인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하라를 가리켜서 '박물관 도시'라고 하던가. 이 라비하우스 주위는 '호텔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할것 같다. 얼마나 많은 호텔들이 이 주위에 모여있는지, 그리고 그 건물들이 얼마나 고풍스럽게 치장했는지. 이 주위를 걷다보면 어떤 건물이 유적이고 어떤 건물이 호텔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다.

부하라가 이 정도면 사마르칸드는 어떨까.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너무 상업적으로 변해버리면 곤란할것도 같다. 내 뒤쪽의 탁자에는 젊은 일본인들이 앉아있다. 그들이 재잘거리는 일본어가 귀에 들어온다.

그리고 또 다른 언어도 들어온다.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세계 각지에서 여행객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여기 앉아있으면 우즈벡어보다 해외각국의 언어가 더 많이 들린다. 아마 이 구시가지에는 현지인들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렇게 맥주를 마시다보니 사막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모두 꿈만 같다. 부하라에 도착하면 무척 기쁘고 즐거울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하니까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시끄럽게 북적거리는 이곳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함께 있을때는 소중한 것을 모르다가 떠나고 나니까 그리워하는 것 처럼, 나는 다시 사막을 생각한다. 그 사막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심어준 모양이다.

맥주를 마시고 나서 주변의 상점을 어슬렁거렸다. 먹고 싶었던 도시락 라면도 보이고, 수많은 과자도 있다. 내일은 쉬면서 뭘할까. 시내에 나가서 이발을 하고 양말을 한켤레 사야한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첨탑에 올라가 보자. 그곳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탁트인 경치를 감상하자. 그러면 부하라에 도착한 것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역사도시 부하라 칼랸 미나레트(첨탑), 좌측은 미리아랍 메드레세
역사도시 부하라칼랸 미나레트(첨탑), 좌측은 미리아랍 메드레세 ⓒ 김준희


#우즈베키스탄#중앙아시아#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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