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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오르는 사람 오른편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왼편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그런데 한 남자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올라가려 하고 있다. 역주행이다.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오르는 사람오른편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왼편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그런데 한 남자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올라가려 하고 있다. 역주행이다. ⓒ 최경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는 보통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올라가는 계단으로는 올라가는 사람만 타야 하고, 내려가는 계단으로는 내려가는 사람만 타야 합니다.

만약 올라가는 계단으로 내려가려 하거나, 내려가는 계단으로 올라가려 한다면… 다칩니다. 도로에서 차가 역주행을 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죠.

지인들과의 송년회를 마친 뒤, 밤 늦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에 올랐습니다. 꽤 긴 에스컬레이터였기 때문에 걸어서 올라갈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손잡이를 잡고 얌전히 서 있었죠. 늦은 시간이었지만, 저처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긴 채 지상으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올라가다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분명히 제가 올라탄 에스컬레이터는 올라가는 것이 맞았습니다. 제 앞에도 10여명의 사람들이 등을 보인 채 서 있었구요. 그런데 반대편 에스컬레이터에 있던 한 청년도 등을 보이고 있는 게 아닙니까. 술에 취해 잘못 봤나 싶어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그 청년은 위쪽을 향해 등을 보이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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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검은색 빵모자를 깊게 눌러 쓴 그 청년은 부지런히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은 좀처럼 위로 올라가지 못한 채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탄 에스컬레이터가 올라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반대편 에스컬레이터는 분명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였습니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그 청년의 옆을 지나치면서 힐끗 쳐다보는 등 관심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습니다. 밤 늦은 시간, 피곤에 젖어있던 사람들로서는 웬만하면 남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겠지요. 저 역시 그 청년을 지나칠 때쯤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빤히 쳐다보는 것이 괜히 멋쩍었기 때문입니다. 얼핏 본 그 청년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다 오르고 나서, 그 청년이 어디쯤 왔을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냥 가던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청년이 왜 '역주행'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간혹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을 일으켜 역주행을 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는 뉴스를 접합니다. 반면 사람이 역주행을 해서 다쳤다는 얘기는 못 들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엔 흥미롭게만 생각했던 저는 집에 오는 내내 씁쓸한 기분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 아니 올 한해 참으로 익숙했던 그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제대통령'을 표방하며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고소영·강부자'로 한 달도 안돼 그 본질을 드러내더니, 대북정책을 비롯해 경제, 교육, 언론, 인권 분야 등 곳곳에서 '역주행'에 가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서는 정부 여당의 '역주행'을 막기 위한 야당 의원들의 배수진으로 폭풍전야를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곧 국회 경비들에게 사지가 들려 끌려나가는 야당 의원들을 보면서, 현 정권이 벌이는 '역주행'의 하이라이트를 감상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역주행이든 고속도로에서의 역주행이든, 모든 '역주행'은 큰 사고를 불러올 것이 자명합니다. 그게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그렇게 2008년은 '역주행'을 기록하며 역사 속으로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역주행#엄지뉴스#에스컬레이터#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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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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