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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인상적인 장수 문인들이 몇 있다. 옛 학자로는 85세까지 산 황종희(黄宗羲)나 73세를 산 왕부지(王夫之) 등이 대표적인 장수학자다. 당대 인물로는 당장에 기억나는 인물이 바진(巴金 1904 ~2005)이다. 그는 백수를 누렸고, 그의 노년은 ‘매의 노래’ 등을 통해 우리 독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럼 아직 살아있는 당대 최고의 장수문인은 누굴까. 아마 많은 이들이 베이징대 지셴린(季羡林 1911~)을 말할 것이다. 산둥성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이 수재는 칭화대를 거쳐서 선생으로 일하다가 뽑혀 독일유학의 기회를 잡는다. 짧게 예정된 유학은 2차 대전으로 인해 10년으로 길어지고 그는 돌아와 베이징대학의 교수로 교편을 잡은 후 아직까지 베이징대학의 살아있는 역사가 되고 있는 인물이다.

 

사실 중국 현대 학자 문인들에게는 모두 한곳의 특이한 장소가 있다. 바로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이다. 이 시간 동안에는 라오서(老舍)처럼 죽음에 이른 이도 있고, 이때 받은 상처로 단명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지식인 출신에 독일유학까지 갔다 왔으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시절에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리 없다. 그도 외양간에서 소돼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몰두할 자신을 찾았고 그 험난한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아흔을 넘어 바진의 장수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당대 중국이 배출하기 힘들었던 제대로 된 지성이다. 대학에서 서양문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는 동양학을 전공했다. 범어 등 8개국어를 공부하면서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그리고 돌아와 자의든 타의든 고난의 시간을 거쳤다. 그리고 노인이 되어 우리에게 지난 시간을 이야기해주는 책 ‘다 지나간다’(원제 閱世心語)를 읽었다.

 

이 책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 우선 단점은 책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너무 평이하다는 것이다. 사실 산전수전 다 겪고 아흔을 넘긴 노학자이니 만큼 세상에 큰 걸림이 없다. 또 그의 풍상의 시간은 문혁 시기의 기록인 ‘우붕잡억’ 등에 있으니 이 책은 그런 곡절의 시간보다는 평상심으로 쓴 명상록이니 만큼 강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 세상의 이치에 대한 통찰을 가진 스승이라면 풀어줘야할 중국의 미래에 대한 경고가 없다는 점도 아쉽다.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는 중국 정치나 환경문제등과 맞물려 복잡한 중국 경제에 대한 쓴소리도 거의 찾을 수 없고, 관념 위주로 말하는 것은 공감의 폭을 줄인다.

 

장점은 학문적 기초가 튼실한 노 학자가 인고의 시간을 겪고나서 풀어내는 성찰이 잘 녹아있다는 것이다. 이런 장점은 책의 전반부보다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 두드러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공감의 폭도 후반부에 더 강했던 것 같다. 따라서 독자들도 앞 부분이 너무 지리해 뒤에 있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개인적으로 쓸데없는 책을 만들기 위해 벌목을 하는 것, 아까운 원고료만 낭비한 쓰레기 같은 글들에 대한 비판(144페이지)에서는 뜨끔했다.


다 지나간다

지셴린 지음, 허유영 옮김, 추수밭(청림출판)(2009)


#지셴린#다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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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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