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원, 초원의 집, 드넓은 초원 …
.. 초원은 점점 넓어지고 있어 .. 《이가라시 미키오/권성애 옮김-보노보노》(서울문화사,2001) 71쪽
‘점점(漸漸)’은 ‘차츰’이나 ‘조금씩’이나 ‘자꾸’로 고쳐 줍니다. ‘넓어지고’를 쓰고 ‘확장(擴張)되고’를 쓰지 않은 대목이 반갑습니다.
┌ 초원(初元)
│ (1) = 원년
│ (2) 임금의 첫 등극
├ 초원(初願) : 맨 처음에 지닌 소원
├ 초원(草垣) : 풀로 엮어 만든 담
├ 초원(草原) : 풀이 나 있는 들판
│ - 끝없이 펼쳐진 초원 / 드넓은 초원을 치달리면서 꼴을 베었다
├ 초원(稍遠) : 조금 멀다
├ 초원(超遠) : 아득히 멀다
│ - 인가가 초원한 산속에 여편네 혼자 있건만
│
├ 초원은
│→ 풀밭은
│→ 들판은
│→ 숲은
└ …
어릴 적부터 즐겨 보아온 만화책이나 만화영화를 보면, ‘초원’ 이야기가 곧잘 나옵니다. 퍽 오래된 소설이나 텔레비전 연속극 가운데 《초원의 집》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곳에서 쓰이는 ‘초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 나라에는 없는 어딘가 남다른 자연 삶터, 거의 아프리카나 미대륙에서 펼쳐지는, 드넓게 펼쳐진 풀밭을 떠올리게 됩니다.
‘초원’이라는 말은 ‘풀(草) + 판/밭(原)’을 가리킬 뿐입니다. 풀이 나 있으니 ‘풀밭’이라 하고, 이 ‘풀밭’을 한자말로 옮기니 ‘초원’일 뿐이에요.
[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 풀이]
┌ 풀밭 : 잡풀이 많이 난 땅
│ - 풀밭에서 뛰놀다 / 풀밭 속에서는 여전히 풀벌레들이 요란하게 울고
├ 들판 : 들을 이룬 벌판
│ - 끝없이 펼쳐진 들판 / 추수를 막 끝낸 들판 /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다
└ 벌판 : 사방으로 펼쳐진 넓고 평평한 땅
- 만주 벌판 / 끝없는 벌판을 달리다
우리 나라 국어사전을 펼쳐 보면, ‘풀밭’은 “잡풀이 많이 난 땅”, 그다지 넓게 펼쳐진 ‘풀 터’가 아닌 곳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고 풀어냅니다. 풀이 드넓게 자라고 있는 곳을 가리킬 때에는 ‘풀밭’이 알맞지 않은 듯 여깁니다.
‘들판’이라는 말은 좀 다릅니다. ‘들판’은 ‘초원’과 얼추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래도 이 ‘들판’마저도 두루 쓰이지 못해요. ‘들판’이 쓰이는 자리는 논농사를 짓는 곳을 가리키는 자리로 쓰임새로 좁혀져 있습니다.
‘벌판’이라는 낱말도 있으나, ‘허허벌판’처럼 쓰일 뿐, 우리가 ‘초원’이라는 낱말을 꺼냈을 때 떠올리는 느낌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 숲
├ 풀숲
├ 나무숲
├ 푸나무숲
└ …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우리 말을 북돋우거나 가꾸지 않습니다. “들판에 선 집”이나 “풀숲 집”처럼 적지 않고 “초원의 집”이라고만 합니다. ‘풀밭-들판-벌판’이 어울리지 않다고 느끼면 ‘숲-풀숲-나무숲-푸나무숲’처럼 살짝살짝 가지를 쳐 볼 수 있을 터이나, 이렇게 낱말가지를 치는 일이 몹시 드뭅니다.
아니, 이에 앞서 우리 낱말 ‘풀밭-들판-벌판’ 쓰임새를 넓히려고 하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풀밭도 풀밭이지만 널따란 풀밭도 풀밭입니다. 조금 널찍하게 드리워진 곳에는 ‘-판’을 붙인다면 ‘풀판’이라 해도 괜찮은데, 이렇게 낱말짓기를 해 보지도 않아요.
생각을 안 한다고 할까요. 생각을 놓아 버렸다고 할까요. 먹고살기에 너무 바빠서 그러한지, 마음 기울일 곳이 너무 많아서 그러한지, 우리 말과 글이야 대충대충 써도 다들 알아듣는다고 여겨서 그러한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우리들은 날마다 우리 말을 쓰고 있지만 우리 말을 아주 업신여기거나 푸대접하거나 깔보거나 짓밟고 있습니다. 얕잡아보고 내팽개치기 일쑤입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좀더 사랑하지 않으니, 우리 말도 좀더 사랑하거나 조금이나마 사랑을 쏟아 보려는 마음을 못 품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를 찬찬히 아끼며 보듬지 못하니, 우리 글도 찬찬히 헤아리고 쓰다듬으며 추스르려고 하는 매무새를 못 갖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눈길은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웃고 울며 떠들고 놀고 일하는 세상보다는, 나 한 사람 배부르고 등따스면 넉넉하지 하는 데에 쏠려 있으니, 말이든 글이든 죽이든 밥이든 나 몰라라 해도 괜찮다고 여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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