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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경위들은 본회의장 진입에 나서고, 경찰은 국회의사당을 에워쌌다. 이것은 더 이상 국회가 아니다. 국민주권의 구현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더 이상 헌법기관이 아니다. 그저 강경진압의 대상이다. 강제퇴거의 대상일 뿐이다. 늘 강조하는 '정치의 경찰화'다. 우리는 다시 경찰 국가로 회귀하고 있다. 

 

지난 2일,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식으로 (민주당이) 빌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일본 대하소설 <대망>에서 비롯된 말이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노부나가는 때려죽이고 히데요시는 울도록 만들며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

 

오다 노부나가는 잔인하고 성급한 성격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과시하는 능력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끈기와 인내의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자신이 키운 부하에 의해 살해된다.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에서의 패배가 비참한 말로의 결정적 계기가 되어 사망한다. 이에야스는 한없는 때를 기다려 일본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최후의 승자가 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무단(武斷)의 노부나가, 지모(智謀)의 히데요시, 인내(忍耐)의 이에야스라고 평한다(<도요토미 히데요시> 이길진).

 

 

왜 하필 도쿠가와 이에야스일까? 인내와 끈기로 때를 기다리겠다는 말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이에야스는 한없이 참고 인내하며 상대방이 스스로 항복하기를 혹은 상대방이 약화되는 결정적인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이에 반해 홍 원내대표의 생각은 민주당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때로는 단전, 단수까지 압박하며 상대방을 협박해 굴복시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분석은 하루만에 틀린 것으로 확인되고 말았다.

 

3일 오후 김형오 국회의장은 드디어 경찰 병력을 동원했다. 본회의장 입구는 국회 경위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렇다면 홍원내대표의 발언이 결코 '이에야스 방식'은 아니었음이 확인된 셈이다. 도리어 경찰 병력 투입을 숨기고 강경진압을 은폐하기 위한 연막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는 이에야스 식이 아니라 히데요시 식이나, 더 나아가 노부나가 식이다. 잘 알다시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의 원흉이다. 이에야스도 임진왜란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야스는 당시 일본 본토에서 히데요시에 협력해 군수조달을 맡았다. 또 뻔히 일본이 패할 줄 알면서도 히데요시의 패망을 재촉하기 위해 협력했다.

 

그렇다면 홍 대표의 인용은 역사적 맥락에서 대단히 부적절했다. 나아가 철저히 거짓이었다. 또 한가지, 이명박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핵개방 3000'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2일까지만 하더라도, 대야 정책도 기다림, 대북 정책도 기다림이었다. 진짜 대화가 필요한 상대방에 대해서는 무조건 기다림이었다. 그것도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리고는 경찰력 행사. 이것이야 말로 2009년 정초의 비극이다.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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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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