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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김태원의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삶〉
책겉그림김태원의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삶〉 ⓒ 시골생활
가톨릭의 사제들은 세상과 사람들의 소리에 민감하다. 세상 사람들이 온갖 불의와 거짓에 맞서 살아갈 수 있는 길도 제시한다. 당연히 사제들은 세상과 사람들을 더 많이 품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사목의 길이기 때문이다.

김태원 사제도 몇 년 전까지는 그랬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늘 깨어 있었다.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청을 스폰지처럼 다 받아줬다. 한결같이 성실과 진실한 자세로 세상 사람들을 대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쓴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삶〉은 강원도 외딴 산속의 흙집에서 그가 홀로 살아간 삶의 흔적들을 그려주고 있다. 그가 왜 사제 생활을 잠시 접고 산속으로 들어갔는지, 산속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등, 그의 산중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그가 도심을 떠나 외딴 흙집으로 들어간 것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도심에서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에다 심장질환과 고혈압 등 건강상의 문제가 컸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더 극렬했던 것은 내면에서 불어오는 자연 세계의 동경이 가장 컸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수행도, 자연과 더불어 색칠할 수 있는 그림 세계도 더 깊게 연마할 수 있는 까닭이었다.

사제 생활을 할 때만 해도 홀로서 밥을 해 먹거나, 빨래를 하거나, 불을 지펴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외딴 흙집에서는 모든 것을 홀로 자급자족해야 한다. 산 속에서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도 스스로 구해야 하고, 들판을 일궈 먹거리를 뿌리고 기르는 몫도, 부엌에 장작불을 지펴 밥을 해 먹는 것도 모두 스스로의 몫이다.

산 속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때가 언제였을까? 눈 덮인 겨울 산속일까? 아니다. 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때는 여름 장마철 기간이었다. 3년에 걸친 숲속 생활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웠던 때가 장맛비로 모든 것들이 쓰러지고 넘어지고, 떠 밀려 갔던 때다. 개울 도랑도, 숲속 길도, 그리고 전봇대까지 다 쓰러져 전기까지 끊긴 첩첩산중의 그때가 가장 혹독한 때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자연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세상 속 빠름과 경쟁과는 달리 자연 속 느림과 공생에 발맞추어 살아갈 수 있으니, 그 생체리듬을 어디에서 쉽게 체득할 수 있겠는가?

"3년 동안 산에서 살면서 다행스러우면서도 신기한 점은 겨울에 바깥 기온 영하 25도의 추운 냉방에서도 감기 한 번 앓지 않고 지내왔다는 점이다. 그만큼 건강해졌다는 이야기이고 보면 정말로 육체의 건강은 정신 여하에 따라 많이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하나하나의 일에 전념하는 자세는 자연으로부터 배운 건강 비결 중 하나다."(321쪽)

김태원 사제의 자연 속 일기를 들여다보니 월든의 소로우가 따로 없는 듯 했다. 홀로서 오두막집을 짓고, 채소를 가꾸고, 옥수수를 길러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소로우의 삶이나 강원도 외딴 흙집의 김태원 신부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홀로 자급자족하게 하며, 느림과 공생의 비결을 체득하게 하며, 건강도 회복하게 하는 자연의 힘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힘이 아닌가 싶다.

그런 자연의 힘을 우리나라의 현 정부는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더욱 짓누르려고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누구보다도 정부 관료들이야말로 자연 속에서 꼭 한 번 살아봤으면 한다. 그때에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느림과 공생과 치유의 미학을 그들 스스로 깊이 있게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꼭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삶

김태원 지음, 시골생활(도솔)(2008)


#자연 속 외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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