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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끝과 시작이 맞물리는 연말연시가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가까운 절이나 교회 혹은 기도를 잘 들어준다는 영험한 곳을 자주 찾는다. 하지만 올해는 새해가 되어도 예년에 비해 절이나 교회를 찾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이는 아마도 지난해 그토록 깊은 경제 불황에 너무 오래 시달려 몸과 마음이 몽땅 지쳐버렸기 때문일 게다.

 

천년 고찰 성남 봉국사. 야트막한 영장산(413m) 허리춤께 둥지를 틀고 있는 봉국사는 이 산 비탈에 이끼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서민들 보금자리인 다가구 주택을 그윽이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이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서민들 슬픔이나 분노, 절망 따위를 목탁소리로 다독이다가 기어이 만인이 잘 살 수 있는 미륵세상을 활짝 열어놓고 말겠다는 듯이.    

 

성남은 5·16 쿠데타로 정권을 뺏은 박정희 군사독재시대 때 서울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야트막한 산비탈 곳곳에 보금자리를 틀기 시작하면서 인구가 크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성남 역사는 산비탈에 움막처럼 붙어 있었던 철거민촌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다가구주택으로 뿌리 내리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영장산 봉국사는 지금으로부터 40~50년 앞까지만 하더라도 깊은 산 속에 있는 기도도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코앞까지 빼곡히 들어찬 메마르고 삭막한 먹구름빛 주택들 때문에 도심 속에 있는 절이 되었다. 다행이다. 가난한 서민들 비탈진 삶만큼이나 위태로운 산비탈에 이 절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을씨년스러웠을까.  

 

 

언제까지 서민들은 산비탈로 밀려나 살아야 할까

 

봉국사(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2동 216-2)로 간다. 기축년 한 해에는 제발 춥고 배고픈 서민들 삶에 따스하고도 배부른 햇살이 비치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두 손 싹싹 빌어보기 위해서다. 기축년 한 해에는 제발 어려운 나그네 가정에도 돈가뭄에 시달리지 않고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부처님과 나그네 자신에게 두 손 싹싹 빌어보기 위해서다.

 

12월 25일(목) 오후 2시. 시인 박윤규(50), 권 사장(51·건축업)과 함께 봉국사로 가기 위해 분당선을 타고 경원대역에서 내렸다. 하지만 봉국사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4~50도쯤 되는 비탈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언뜻 77번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갈까 하다가 운동도 하고 이 지역 풍경도 살필 겸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비탈길 곳곳에는 먹구름 빛 다가구주택과 일반 주택이 영장산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 사이에 때가 덕지덕지 낀 서민주택을 맘껏 비웃으며 마구 짓밟는 듯한 반듯한 아파트가 우뚝우뚝 솟아 있다. 서글프다. 언제까지 가난하지만 세금 꼬박꼬박 잘 내는 착한 서민들은 부잣집에서 버린 쓰레기처럼 산비탈로 밀려나 살아야 할까.

 

숨이 몹시 가쁘다. 10여분 쯤 비탈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자 손과 귀는 시린 데 이마에서는 진땀이 나기 시작한다. 대체 이 가파른 계단은 어디에서 끝이 날까. 마치 낭떠러지처럼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나그네와 주변 사람들, 그리고 이곳에서 아등바등 발버둥치며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 가파른 삶을 떠올리자 더욱 숨이 가쁘다.    

     

 

봉국사, 수도 서울과 이웃하고 있는 성남을 대표하는 고찰

 

"천년 사찰 봉국사는 한국불교의 근대사를 이끌어 온 만해선사와 춘성스님의 법맥이 흐르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전법과 수행 기도도량으로 수도 서울과 인접한 성남의 대표적 고찰입니다. 이곳 대광명전은 한국 전통불교의 향기를 전해주고 심검당, 삼성각 등 다양한 신행공간은 도심 속 수행 기도도량입니다." - 임효림 봉국사 주지스님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헉헉거리며 20여분 쯤 올라가자 저만치 왼편 산기슭에 '영장산 봉국사'라는 글씨를 매단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눈앞에 2층짜리 기와집 하나가 마치 산봉우리처럼 우뚝 서 있다. 1층은 천왕문이고, 2층은 범종루다. 독특하다. 보통 일반 절에 가면 범종루는 따로 있는데, 이곳은 천왕문 위에 범종루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천왕문에 들어서자 양쪽 벽에 알록달록한 빛깔의 옷을 입은 사천왕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그중 왼손에 금빛 5층 석탑을 들고 있는 사천왕이 눈에 확 들어온다. 천왕문을 지나 절마당에 올라서자 한창 손질하고 있는 심검당(尋劒堂)과 삼성각(三聖閣), 대광명전(大光明殿)이 왼쪽으로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심검당과 대명광전을 날개로 삼아 가운데 오도카니 웅크리고 있는 삼성각 앞에는 미륵보살 화신이라는 포대화상(布帶和尙)이 동자승과 함께 기분 좋게 웃고 있다. 하지만 포대화상을 세운지는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포대화상 왼 편, 대명광전 앞에는 1981년에 세운 춘성스님 사리가 들어 있는 부도탑과 3층 돌탑이 하나 우뚝 서 있다.

 

춘성스님은 만해선사 정신을 이어받은 유일한 제자이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1977년 세운 이 3층 돌탑 안에는 태국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 1과가 들어 있다. 그 밖에 부처님 경전을 보관하고 있는 염화실과 스님들이 살고 있는 요사채, 종무소, 다심원, 청소년문화관 등이 염주알처럼 꿰어있다. 

 

 

관세음보살 마음을 가진 진정한 강부자가 많이 나오길

 

"성남 영장산 서남쪽 기슭에 있는 봉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입니다. 고려 현종 19년(1028)에 법현선사가 창건했고, 그 뒤 폐허화된 것을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담화스님이 왕명으로 중수했습니다. 그리고 현종 15년(1674년)에는 공주 명혜와 명선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금강산 일축존자에게 중창하게 하여 봉국사라 불렀습니다." - 임효림 스님

 

봉국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명광전(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101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명광전은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몸집에 비해 지붕이 몹시 크다. 그래서일까. 언뜻 겉으로 바라보기에는 꽤 덩치가 큰 건물인 것처럼 보인다.

 

대명광전 불단 위에는 알록달록한 무늬와 예쁜 색깔이 사리알처럼 박혀 있는 닫집(궁전 안의 옥좌 위나 법당의 불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이 있다. 마치 천상세계를 지상 위에 펼쳐놓은 듯한 천장무늬가 아름다운 이 불단에는 금빛으로 칠한 목조 아미타불과 좌우로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불심을 향촉으로 내밀고 있다.

 

대명광전 양쪽에는 석수가 하늘을 바라보며 오도카니 앉아 있다. 언뜻 보기에 사자 모습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그네 눈에는 분명 원숭이 모습으로 비친다. 근데, 불전 앞을 지키고 있는 그 두 마리 원숭이 모습이 왜 그리 배고프고 쓸쓸하게 보일까. 봉국사 아래 산비탈에 다닥다닥 힘겹게 붙어 사는 서민촌 때문일까.  

 

 

그래. 어쩌면 저 원숭이 두 마리도 가난한 서민촌을 애타게 바라보며 '강부자'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서민이야 죽든 말든 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강부자가 아니라 서민들에게 가진 것을 골고루 나눠주는 강부자(강남 부자 자선사업가), 관세음보살 같은 마음을 가진 그런 진정한 강부자 말이다. 

 

그날, 나그네는 영장산 봉국사 천왕문 사천왕 앞에서 사천왕이 어서 그림 속에서 이 세상으로 튀어나와, 이 모질고 거친 세상을 손에 들고 있는 큰 칼로 싹둑 베어내 버리기를 빌었다. 미륵보살 화신이라는 포대화상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세상이 어서 오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분당선 경원대역 2번 출구-신도양 마을버스 77번-봉국사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봉국사#효림스님#대웅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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