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럭셔리 옥탑방
.. ‘옥탑방이야, 초특급 호텔이야?’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가건물. 옥탑방 하면 대부분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외국의 한 사이트에 소개된 뒤 국내에도 여러 블로그들에 소개되고 있는 ‘럭셔리 옥탑방’ 사진을 보면 그같은 이미지는 싹 가시게 될지도 모르겠다 .. 〈마이데일리〉 어느 기사에서
‘대부분(大部分)’은 ‘거의 모두’로 다듬고, ‘열악(劣惡)한’은 ‘나쁜’이나 ‘모자란’으로 다듬습니다. “외국(外國)의 한 사이트에 소개(紹介)된”은 “나라밖 어느 사이트에 뜬”으로 손보고, ‘국내(國內)에서도’는 ‘우리 나라에서도’로 손보며, ‘소개(紹介)되고’는 ‘알려지고’로 손봅니다. ‘이미지(image)’는 ‘느낌’이나 ‘생각’으로 손질해 줍니다.
┌ luxury
│ 1 사치, 호사
│ 2 사치품, 고급품
│ 3 유쾌, 쾌락, 만족
│ 4 방종
│ 5 《고어》 외설, 호색
│
├ 럭셔리 옥탑방
│→ 사치스런 옥탑방
│→ 호사스런 옥탑방
│→ 돈 퍼부은 옥탑방
│→ 돈으로 바른 옥탑방
│→ 돈으로 꾸민 옥탑방
└ …
우리 말로 사물을 가리키거나 어떤 일을 담아내려는 움직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권력자들이 한문으로 모든 것을 가리키거나 담아내려 했고, 요즘은 미국말로 가리키거나 담아냅니다.
우리 삶이 우리 힘과 슬기와 뜻으로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우리 말로 우리 삶을 담아내지 못하고, 우리 힘으로 우리 말을 가꾸지 않으며, 우리 슬기로 우리 말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나라밖 말로 우리 말을 깔보는 일을 하고, 나라밖 말로 우리 말을 푸대접하는 일을 하며, 나라밖 말로 우리 말을 내쫓는 일을 합니다.
┌ (사치 / 호사 / 비싼 / 분수 넘치는) + 옥탑방
└ (번쩍번쩍 / 으리으리 / 놀라운 / 엄청난 / 아름다운) + 옥탑방
사회는 온통 돈판, 이름판, 힘판입니다. 속알맹이는 없고 마음은 텅 빈 사람들이 돈과 이름과 힘을 부려서 마구잡이로 못된 짓을 해도 손가락질을 하지 않습니다. 부러워하거나 떡고물을 얻어먹으려고 합니다. 자기가 못하거나 못 누리면 자기 아이한테 이런 겉치레 돈과 겉발림 이름과 겉꾸밈 힘을 얻도록 내몹니다.
겉치레가 넘치니 말과 글이 겉치레가 가득하게 됩니다. 겉발림이 넘실거리니 말이건 글이건 겉발림으로 떡발립니다. 겉꾸밈이 그치지 않으니 말이며 글이며 꾸밈없이 가꾸던 아름다움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 럭셔리걸, 럭셔리카, 럭셔리 화장품, 럭셔리 군단, 럭셔리 골프장
├ 럭셔리 브랜드, 럭셔리 실버, 럭셔리 투우사, 럭셔리 쇼핑타운
└ 럭셔리 주유소, 럭셔리 워킹, 럭셔리 호텔, 럭셔리 코미디, 럭셔리 슈즈
처음에는 가볍게 쓰였을 ‘럭셔리’였을 테지만, 이제는 누구나 입에 담는 흔한 영어 낱말이 되었습니다. 인터넷 창에 이 낱말을 넣고 찾아봅니다. 수많은 ‘럭셔리 무엇무엇’이 뜹니다. 온갖 물건에, 온갖 일에, 온갖 곳에 ‘럭셔리’가 달라붙습니다.
말뜻을 제대로 살려서 쓰는 일이란 없고, 말느낌을 알맞게 북돋우는 일 또한 없습니다. 말씀씀이를 올바르게 추스르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말무새를 알차게 손질하는 모습 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 돈냄새 나는
├ 돈독 오른
├ 돈에 빠진
├ 돈에 미친
├ 돈지랄 하는
├ 돈자랑 하는
└ …
미국말을 써야 할 때가 있으면 써야 알맞습니다. 어느 나라 말이었든, 우리 삶을 북돋우고 우리 생각을 키우며, 우리 넋을 이끌어 주는 말이라면 넉넉히 받아들일 노릇입니다. 그러면, ‘럭셔리’는 어떤 낱말일까요. 우리한테 ‘럭셔리’란 어떻게 생각해야 할 낱말일까요.
ㄴ. 럭셔리한 케이블카
.. 가난한 학생인 우리는 럭셔리한(?) 케이블카 대신 끝도 없이 이어진 계단을 오를 수밖에 없었다 ..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이하영, 양철북, 2008) 147쪽
“케이블카 대신(代身)”은 “케이블카 말고”나 “케이블카는 꿈도 못 꾸고”로 다듬어 줍니다.
┌ 럭셔리한 케이블카
│
│→ 비싼 케이블카
│→ 돈 드는 케이블카
└ …
‘럭셔리’라는 낱말 뒤에 묶음표를 치고 물음표를 넣습니다. 우스개소리처럼 넣은 낱말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너나없이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영어 낱말을 이야기에 끼워넣고 있으니, 이런 말씀씀이는 귀엽게 지나칠 수 있어요. 가벼운 말놀이니까요.
다만, 이런 말놀이나 말장난이 말놀이나 말장난으로 그치지 않고 버릇이 들어 버린다면 걱정스럽습니다. 자꾸자꾸 쓰다가 길들어 버린다면 근심스럽습니다. 바늘도둑을 걱정하듯 말 한 마디가 걱정스럽습니다. 콩알 하나 나누는 마음으로 말 한 마디 살찌워 주기를 바라면서 근심스러움을 털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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