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 자체가 순례이지요." 수녀님은 나의 자전거 여행을 보고서는 묻지도 않은 질문에 현답을 내놓았다. 방법만 다를 뿐 어차피 모두가 구도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자신이 섬기는 신을 믿든 자기 자신을 믿든, 스스로 가치가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가는 인생의 걸음이니까.
오후에 수녀님을 만난 곳은 떼우안테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신학교였다. 날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봉사 및 교육을 하는데 오늘은 신학교에 일이 있었다. 수녀님을 바라보며 여전히 나는 신기하기만 했다. 이런 오지 중의 오지에서 한국인을 만난 것은 실로 대단한 우연(우연, 나는 이것을 하늘에서 이미 그렇게 되기로 정해진 시간을 미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닥뜨릴 때 나오는 감정이라고 본다. 운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이었다.
두 분 중 꼼꼼하게 이것저것 챙기는 아나 수녀님은 멕시코에 온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된 베테랑이고, 맡은 일을 살뜰히 해내는 엘리자베스 수녀님은 이제 하나하나 일을 배우는 신참 입장이었다. 바쁘다고 얼굴에 쓰여 있을 정도로 분주한 분위기는 최선이란 이름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수녀님은 낯선 청년의 방문을 환대하며 오자마자 신학교 구경을 간단히 시켜주고 나서 바로 일하는 곳으로 안내했다.
멕시코 남부, 남한만한 땅에 단 두 명밖에 없다는 가톨릭 선교사는 팔방미인이 되어야 했다.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습득은 가장 기초가 되는 일이다. 함께 어우러져 누군가를 사랑하고 보살펴야 한다면 그들의 마음까지 헤아릴 정도의 수준이 요구된다.
그리고 강철체력을 가져야 한다. 몸이 고단하고 아파도 더 상처받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겨내야 하고, 이쪽저쪽 필요에 의해 도움을 구하는 손길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감당하는가?’라는 질문을 빠져나가기 위한 핑계 댈만한 근거는 없다. 무엇보다 신앙인으로서 낮고 가난한 자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진심으로 섬기는 것, 제 몸 하나 챙기기 어려운 요즘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 멕시코 땅을 내딛은 후 가장 시급했던 것은 바로 가난한 자들을 자립시키는 것. 무작정 도와준다고 이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는 않기에 적극적으로 이들을 생산현장에 투입시켜 근로의욕을 고취시켜야 했다. 노동자의 대부분은 문명의 혜택을 덜 받는 산 속에서 사는 인디오 빈민들. 별다른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잠 잘 곳과 자립할 수 있는 돈을 주며 구제에 나섰다고 한다.
농장에서는 직접 유기농 작물들을 재배하고, 공장에서는 그 작물을 가지고 참기름이나 과일잼 등 친환경 식품 등을 개발해서 환경을 지키고 이윤도 추구하는 일거양득의 경영방침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관리자와 노동자에게 제반 교육도 함께 병행해야 했다. 돈이 없어 치료받기 어려운 시민들에게는 매주 토요일마다 수지침 봉사활동을 통해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수지침은 유일한 안식처이자 대화의 창구가 되는 셈이다.
“수지침으로 현지인들을 만나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몰라요. 간단한 병은 응급처치 하기에도 좋고, 위험 가능성도 없지요. 무엇보다 치료시간이 길어 현지인과 접촉을 하고 이야기 할 시간이 많아 환자와의 관계가 무척 좋아져요. 원래 수지침은 약을 먹지 않을 경우 잘 드는데 우리나란 조금만 몸에 이상이 생겨도 내성으로 이기려 하지 않고 약을 많이 먹으니 잘 안 듣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약을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효과를 많이 보거든요. 한 번 치료를 받으면 그 다음엔 꼭 단골이 되더라니까요.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무료로 건강을 봐 주니 좋아할 수 밖에요.”
토요일 오후, 시내 한복판 성당에는 수녀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끊이질 않는다. 대부분 하층민의 삶을 사는 고단한 인생들이지만 가끔 신부님이나 지체 높으신 양반들도 다녀간다 한다. 치료 앞에선 모두가 평등한 연약한 인간의 몸이다. 잠시 성당을 나와 떼우안테뻭 시내를 구경했다. 후덥지근한 열기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이런 내 마음을 간파라도 한 듯 아나 수녀님은 봉사가 끝나자 바쁜 일정 중에 틈을 내 차로 40여 분 걸리는 살리나 크루즈 가서 식사 겸 바다 구경이나 하자 한다.
소형차를 직접 운전하고 가는 길에 수녀가 된 이유와 과정을 잠시나마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의 인생을 주님 앞에 헌신해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먼 땅에서 그분의 이웃사랑 메시지를 몸소 실천하는 수녀님은 보는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진정한 신앙인을 마주한다면 그런 마음의 감격이 일어나야 하는데 내가 순수함을 잃어버린 건지 요즘은 자신을 장렬히 희생해가며 진리를 전파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보다 종교기관이 권력과 명예와 물질 위에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기회의 장으로 전락해 버린 까닭에 참 종교지도자를 보기 힘들어져 가는 것이 마음이 아플 뿐이다. 그 누구보다 가장 순수해야 할 집단에서 말이다.
해안 도시에 가서 식사를 하고 시원하게 드라이브를 하니 하루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수녀님은 머무는 동안 찢어진 패니어(자전거 짐가방) 수선과 여러 편의를 봐 주셨다. 우연한 만남의 인연에게 과분한 대접이었다.
헤어지던 날, 수녀님은 자비로운 미소와 함께 내게 편지를 전해 주셨다. '주님의 은혜로 여행을 잘 마치기를, 이 모험을 통해 더 큰 성장이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남진해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과테말라로 내려갈지 아님 마야 문명을 보러 유카탄 반도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내게 팔렝케 행 티켓을 쥐어주셨다. 또 젊은 청년의 미래와 소망과 평안을 위해 그 자리에서 기도해 주셨다.
누군가에게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참 마음이 부요해지는 일이다. 나를 사랑하고,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이 순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감정조절이 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인사를 하고 나니 몇 발짝 더 멀어진 수녀님의 뒷모습에 헤어짐이 섭섭하기만 하다.
그렇게 수녀님과 작별을 나눈 밤, 나는 조금 더 늦게 과테말라에 가기로 하고 팔렝케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복음성가의 노래처럼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소망했다. 누구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누구보다 더 많이 다른 이들을 축복해 주는 인생이 되길, 뭐 아직은 철없는 애 늙은이지만 말이다.
버스가 출발하고 수녀님을 생각하다 나는 버스 안이 왜 이리 건조하냐며 침침해진 안경을 벗었다 썼다를 반복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