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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 산행기>겉표지
<백수 산행기>겉표지 ⓒ 부키
그 남자는 평생 산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인들과 산에 가면 근처에서 술을 마셨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온 사람들이 있으면 어차피 내려올 거 뭐 하러 힘 쓰냐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단다. 김서정, 그는 그랬다. 그런데 그가 등산 예찬론자가 됐다. <백수 산행기>에서 그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등산의 좋은 점을 이야기한다.

사람이 어떻게 이리 변할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백수가 된 뒤에 집에서 뒹굴거리며 살았다. 그러다가 산에 가게 된다. 삶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동안 못해본 것을 해보자는 각오 때문이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마음은 저자도 잘 모른다. ‘불현듯’ 가고 싶었던 그런 마음이었다. 그랬기에, 남들처럼 무슨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다. 배낭 하나 없이, 과거에 할인마트에서 샀던 등산복 입고 북한산성 입구에 다다른 것이다.

그곳에서 저자는 자신이 다른 등산객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뭔가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생수와 오이, 김밥을 샀고 그 길로 산에 오른다. 그 후의 경험은 어떠했을까? 새롭게 발견한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았을까? 산을 오를 때의 즐거움을 깨닫게 됐을까? 아니다. 고난의 행군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저자는 느리다. 앞에서 오는 사람이 있으면 길을 비켜주고 뒤에서 오는 사람에게 길을 내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길도 모른다. 달랑 검은 비닐봉지 하나 들고 있는 저자는 사람들에게 계속 길을 물어야 한다. 저자는 체력도 약하다. “정말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고 가래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다. 저자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안쓰러워서 산에서 구출해주고 싶을 정도다.

저자는 이날 7시간의 산행을 마친 후에 집에 돌아온다. 중도에 포기하진 않은 것인데 그래서인지 2kg이 빠진다. 살이 빠졌다는 것은 일종의 기쁨이었다. 저자는 다시 산에 오르기로 한다. 살을 빼기 위해서인가?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인가? 모른다. 저자도 분명한 건 모르지만 그는 계속해서 산에 간다. 매번 쉬운 길만 찾으려 하고 헐떡거려야 하지만 그의 발은 멈추지 않는다. 그 결과 <백수 산행기>가 나온 것이다.

산에 오르는 이야기를 하는 책은 많았다. 하지만 <백수 산행기>는 눈에 띈다. 왜 그런가? 첫 번째는 그가 휴일이 아니라 평일에 산에 간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는 그가 백수라는 뜻이다. 물론 백수가 산에 간다는 것이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백수가 아닌 시절에, 돈 벌던 시절에는 모르던 것을 백수가 돼서 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산’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것, 그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인생의 쓴맛을 짭짤하게 바꿔주며 솔찮은 즐거움을 준다.

두 번째로 눈에 띄는 이유는 단연 ‘진솔함’이다. 솔직하게 쓴 책들이 많다고 하지만 <백수 산행기>는 그 농도가 더 짙다. 산에 오르면서 체력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는 둘째치고라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오르려고 소위 ‘잔머리’ 굴린 이야기 등은 직접 눈으로 보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진솔하다. 그래서일까. 그 진솔함은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게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백수가 평일에 고생하면서 산에 오르는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방식을 생각하게 만든다.

요즘 나온 에세이는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자기계발서적인 측면이 강해 에세이 특유의 맛을 풍기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백수 산행기>는 그 진솔함이나 삶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녹록치 않게 담겨져 있다. 오랜만에 에세이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백수 산행기 - 평일에 산에 가는 나, 나도 정상에 서고 싶다

김서정 지음, 지만 그림, 부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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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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