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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달맞이 정월대보름 달맞이를 하는데 맨 먼저 본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고 믿었다.
보름 달맞이정월대보름 달맞이를 하는데 맨 먼저 본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고 믿었다. ⓒ 이무성

"선생님, 설 잘 쇠었나요? 인사가 늦었어요. 참, 선생님은 방학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책 많이 읽으셨겠죠? 저는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권해주셨던 책 중에서 <톨스토이 단편선> 두 권만큼은 달달 외울 정도로 여러 번 읽었어요. 그게 이번 방학 동안 제가 이뤄낸 보람이에요."

오늘(1월 31일) 창녕 도서관 열람실에서 내 반 인서를 만났는데, 그동안 몸집이 훌쩍 컸다. 대여 받을 책을 고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마침 필자도 그럴 참으로 들렀기에 같이 서가를 거닐면서 여러 책들을 훑어봤다. 언제나 봐도 인서는 야무지다. 어느 책 한 권을 보더라도 그냥 흘러 보내지 않는다. 인서하고는 책을 통한 대화가 원활하다. 녀석, 어린 나이인데도 그동안의 독서이력이 남달라 깨알같이 아는 게 많다. 근데도 덜렁대지 않는다.

방학동안 훌쩍 자란 인서하고는 책을 통한 대화가 원활해

각각 두 권씩 대출을 받았다. 구내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뽑아 마시면서 인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달 여 동안 못 만난 탓이었을까. 정작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보니 그다지 많은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았다. 방학 중 인서는 해남 외할머니 댁에 다녀왔던 일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나도 덩달아 보길도 갔었던 이야기를 덧붙였다. 비슷한 지역을 여행했던지라 그곳 풍물에 대한 이야기는 한참 길었다.

"선생님,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며칠 후면 정월 대보름이다'고 하시면서 영산장에 가셨어요. 오곡밥과 나물거리를 사러 가신대요. 오늘 영산 오일장이 서는 날이거든요. 대보름 먹을거리는 꼭 장에 가서 사야 한대요. 설을 쇤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정월 대보름이라고 하니 왠지 명절을 하나 더 쇠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정월 대보름에 대해서 잘 몰라요. 선생님은 잘 아시죠?"

"정월 대보름이라? 요즘 사람들이야 대수롭지 않게 맞이한다마는 예전에는 이 날을 일 년 중 '첫 보름'이라 중요시하며 그 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 그 해의 좋고 나쁨을 점쳤지. 그래서 설을 쇠는 것만큼 온갖 정성을 다했어.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귀밝이술을 마시고, 부럼을 깨물며, 오곡밥과 나물을 먹고, 쥐불놀이나 달집태우기, 달맞이 등 여러 가지 민속놀이도 해. 또 정월 대보름날 뜨는 보름달을 보며 한 해의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여겼지. 특히 농부들은 풍년이 들기를 빌었어."

달집태우기 정월 대보름에 액을 막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마을마다 벌였던 달집태우기를 해왔다. 사진은 지난해 국립극장 문화광장에서의 달집태우기.
달집태우기정월 대보름에 액을 막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마을마다 벌였던 달집태우기를 해왔다. 사진은 지난해 국립극장 문화광장에서의 달집태우기. ⓒ 국립극장

보름달을 보며 한 해의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져


"부럼이 뭐예요. 지난번에 해남에 갔을 때 외할머니께서 '얘, 에미야. 이것 가져다가 보름에 먹어. 가을에 아버지가 너희 오면 주려고 곱게 챙겨놓은 부럼이여' 하시며 주셨어요. 저는 하얀 보자기에 싸인 게 무엇인지 관심 없었어요. 그게 정월 대보름날에 깨무는 부럼이었군요."

"응, 부럼은 딱딱한 껍질로 된 열매를 말하는데, 호두나 잣, 땅콩 같은 것들이야. 그리고 그것을 깨무는 것을 '부럼 깐다'라고 하지. 또 '부럼'은 '부스럼'의 준말로 피부에 생기는 종기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해. 요즘은 먹을 것도 다양하고 좋은 음식도 많아 부스럼이 나지 않지만, 내가 너만 했을 때는 영양 상태가 좋지 않다보니 피부에 버짐이 많이 피었어.

근데 왜 하필이면 땅콩이나 호두 같은 열매를 부럼으로 이용했을까? 궁금하지 않아?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땅콩이나 호두 같은 열매에는 그런 부스럼을 막아주는 영양소가 쌀보다 수십 배나 많이 들어 있어.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것을 미리 먹여 일 년 동안 피부병에 걸리지 않게 하려고 했던 거야.

또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여러 가지 나물을 먹는 날이지. 오곡밥은 찹쌀, 찰수수, 팥, 차조, 콩을 다섯 가지 종류의 곡식을 섞어 만든 밥이야. 반찬으로는 묵은 나물을 삶아 먹었어. 가을이 되면 어머니들이 호박이나 가지, 시래기, 곰취 같은 나물들을 손질해서 겨울 동안 잘 말렸다가 대보름날이 되면 이 나물들을 삶아서 기름에 볶아 먹었지. 대보름날 묵은 나물을 먹으면 일년 동안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해. 사실 대보름날은 묵은 나물로 반찬을 해먹는 풍습은 겨울 동안 없어진 입맛을 되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풍습이야."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여러 가지 나물을 먹는 날

"네, 잘 알겠어요. 그런데 정월 대보름은 어떻게 유래가 되었나요? 추석과 설날 유래에 대해서는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셔서 잘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정월 대보름에 대한 것은 잘 몰라요. 음력으로 1월 15일, 그러니까 다가오는 2월 9일이란 것밖에는 아는 게 없어요."

"그랬구나. 어쨌든 끊임없는 너의 궁금증을 말릴 재간이 없다. 대보름날은 우리 민족의 밝음 사상을 반영한 명절로 다채로운 세시풍습의 하나로 전해 오고 있어. 중국에서는 이 날을 상원이라 하는데, 도교적인 명칭으로 '천관이 복을 내리는 날'이라 여기고 있어. 여기에 중원인 7월 15일, 하원인 10월 15일을 합하여 삼원이라 해. 이밖에도 원소절, 원석이라고도 하며, 일본에서는 소정월이라 하여 공휴일로 정해 명절로 삼고 있지.

말이 좀 어렵지? 적어 봐. '세시풍습' '천관' '도교' '상원' '중원' '하원' '삼원' '원소절' '원석' '소정월' 등은 집에 가서 백과사전을 찾아보거나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렴. 그러면 정월 대보름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거야.

대보름날에 행하는 각종 풍속은 전체 세시풍속 중 1/4이 넘을 정도로 풍부해. 정초의 설 풍속을 합치면 전체의 절반이 넘어. 이것은 정초 설과 대보름 명절이 우리 민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이들은 상호 유기성을 가지기 때문에 정월 중에 많은 세시행사가 모여 있는 거지."

달집태우기 정월 대보름날 밤 달이 떠오를 때 나무나 짚으로 만든 달집에 불을 지르며 노는 세시풍속놀이인 달집태우기. 정월대보름을 맞아 전남도내 곳곳에서 달집태우기가 펼쳐진다.
달집태우기정월 대보름날 밤 달이 떠오를 때 나무나 짚으로 만든 달집에 불을 지르며 노는 세시풍속놀이인 달집태우기. 정월대보름을 맞아 전남도내 곳곳에서 달집태우기가 펼쳐진다. ⓒ 순천시청

정초 설과 대보름 명절이 우리 민속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그런데 인서야. 설날이 개인적이고, 폐쇄적이며, 수직적인 피붙이의 명절임에 반해, 대보름은 개방적이며, 집단적이고, 수평적이며, 적극적인 마을공동체 명절이야. 밝음과 어둠이라는 두 관념이 교차하며 달의 생성과 소멸주기에 따라 긴장과 이완, 어둠과 밝음, 나에서 우리로 교체 확장되는 일원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거지.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의 명절 중 정월 대보름의 '예축의례'와 상대적인 명절인 8월 한가위의 '수확의례' 역시 만월을 통한 풍요관념을 보여주고 있어.

또한 대보름은 상징적인 측면에서 달·여성·대지의 음성원리에 의한 명절로, 달은 곧 물의 여신이므로 대보름과 농경문화는 밀접한 거야. 땅과 달을 여성으로 여긴 것은 오랫동안 전해온 지모신의 생산력 관념에서 나온 것인데, <태종실록>에 전하는 경기도 연안부의 용갈이, 용경풍속이나 <동국세시기>에 전하는 홍주의 용경과 용알뜨기 민속, 영동지방의 용물달기 등은 용신신앙이 농경의례와 밀접함을 보여주는 그 좋은 예다. 줄다리기 역시 용사신앙의 한 표현이지.

쥐불놀이 정월대보름 쥐불놀이
쥐불놀이정월대보름 쥐불놀이 ⓒ 이돈삼

따라서 대보름 달빛은 어둠과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 상징이므로 동제를 지내고 개인과 집단적 행사를 해. 전해 오는 말로는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든가 ‘중국 사람은 좀생이 별을 보고 농사짓고, 우리나라 사람은 달을 보고 농사짓는다’는 것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유형이 다름을 말해주고 있는 거야. 개인적인 기복 행사로는 부럼 깨물기, 더위팔기, 귀밝이술마시기, 시절음식인 복쌈이나 묵은 나물먹기와 달떡을 먹는 것이 있고, 줄다리기, 다리밟기, 고싸움, 돌싸움, 쥐불놀이, 탈놀이, 별신굿 등은 집단의 이익을 위한 대보름 행사가 있어."

정월 대보름에는 줄다리기나 달집태우기 등 집단의 이익을 위한 행사가 많아

"선생님 설명을 듣고 보니 정월 대보름도 소중한 명절 중의 하나군요. 그런데 말씀 중에 어려운 게 너무 많아요. 옛날 우리 세시풍습이라서 그런 것이겠지요. 이제 모레면 개학이네요. 방학을 시작할 때는 긴 것 같았지만 지내놓고 보내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보내 버린 것 같아 아쉬워요. 초등학교 마지막 방학인데 말에요."

"그러냐? 난 방학도 방학이지만 머지않아 너희들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그게 더 마음이 아파. 왜 이런 말이 있잖아.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고. 내가 그런 것 같아.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서로 마음을 모아 6학년 한 해 동안의 생활을 마무리 잘 해야겠다. 우린 언제든지 만날 수 있잖아. 개학날 더 좋은 얼굴로 만나자."


#정월 대보름#달집태우기#쥐불놀이#세시풍습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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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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