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압도적인 존재감
.. 보는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그 조용함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아이 .. 《카와쿠보 카오리/설은미 옮김-해피 투게더 (3)》(학산문화사,2005) 109쪽
‘압도적(壓倒的)인’은 ‘내리누르는’이나 ‘짓누르는’으로 풀어낼 말이지만, 이 자리에서는 ‘어마어마한’이나 ‘엄청난’으로 다듬어 봅니다. ‘발휘(發揮)하는’은 ‘뽐내는’이나 ‘선사하는’이나 ‘보여주는’으로 손봅니다.
┌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
│→ 어마어마한 무게를 느끼게 하는
│→ 엄청난 힘을 느끼게 하는
└ …
여기에서는 ‘존재’ 뒤에 ‘-感’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압도적인 존재를 느끼게 하는 아이”처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쓰나 저렇게 쓰나 ‘우리를 내리누르는 느낌을 준다’ 함은 ‘무게가 느껴진다’는 소리이며, 이러한 무게가 보통 무게가 아니라 ‘어마어마한 무게’라는 소리입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무게는 ‘엄청난 힘’이기도 하고요.
┌ 훨씬 더 커 보이는 아이
├ 다른 사람을 모두 눌러 버리는 아이
├ 모든 기운을 잠재우는 아이
└ …
느낌과 뜻을 찬찬히 살펴야 합니다. 한자말 ‘존재’이든 다른 어떠한 말이든, 우리가 알맞게 쓰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야 합니다. 제아무리 토박이말이라 하여도 올바른 자리에 알뜰살뜰 넣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고 글이 안 됩니다. 우리들은 알맞게 쓸 말을 써야지, 알맞지 않거나 걸맞지 않는 낱말을 아무 자리에 함부로 넣어서는 안 됩니다.
다 함께 주고받는 말이요, 서로 나누는 글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 마음과 생각이 고이 담기는 말이며, 내 얼과 넋이 살포시 깃드는 글임을 헤아려야 합니다. 말 한 마디에 사랑을 담으니 천 냥 빚을 갚는다 했고, 말 한 마디에 믿음을 싣지 못하니 천 냥 빚을 진다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말이 되도록 애쓰고, 살아숨쉬는 글이 되도록 힘쓸 노릇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듬으면서, 꾸밈없이 북돋울 노릇입니다.
ㄴ. 확실한 나가 존재하고 있었다
.. 쫓아가는 삶이 아닌 내가 앞서서 이끌어가는 삶. 시작부터 그곳엔 확실한 ‘나’가 존재하고 있었다 .. 《이나미-나의 디자인 이야기》(마음산책,2005) 24쪽
‘시작(始作)’은 ‘처음’으로 고쳐씁니다. ‘확실(確實)한’은 ‘뚜렷한’이나 ‘또렷한’이나 ‘틀림없는’으로 다듬으면 되는데, 이 자리에서는 ‘바로’나 ‘다름아닌’ 같은 말로 풀어내어도 잘 어울립니다. ‘생활(生活)’이 아닌 ‘삶’이라 한 대목은 반갑습니다.
┌ 확실한 ‘나’가 존재하고 있었다
│
│→ 뚜렷한 내가 있었다
│→ 바로 내가 깃들어 있었다
│→ 다름아닌 내가 숨쉬고 있었다
│→ 누구도 아닌 나를 느낄 수 있었다
│→ 내가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 내가 단단히 자리하고 있었다
└ …
내가 이끌어 가는 삶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는 사람’을 느낀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여기에 있음’을 깨닫고, ‘내가 이렇게 살아숨쉬고 있음’을 느끼며, 내 손과 내 발과 내 몸뚱이를 곱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를 느끼는’ 일은, 사람마다 다 다른 ‘나’이기 때문에, 저마다 다 다르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 싱그러운 나를 느낀다 할 수 있고, 새삼스러운 내 모습을 본다 할 수 있으며, 뜻밖에 야무진 나를 찾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를 느낀다 할 수 있고, 다름아닌 나를 보았다 할 수 있으며,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튼튼히 뿌리내린 나를 좋아한다 할 수 있습니다.
┌ 처음부터 그곳엔 ‘너’ 아닌 바로 ‘내’가 있었다
├ 처음부터 그곳엔 ‘남’이 아닌 ‘내’가 있었다
└ …
그렇지만 우리들 말씀씀이를 가만히 보면, 우리 말씨나 느낌을 살리기보다는 ‘존재’ 한 마디로 대충 얼버무리지 않느냐 싶어요. 우리(나)는 우리(나) 나름대로 ‘우리(나)’를 느끼거나 찾는다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를 느끼거나 찾았다고 하면서 꺼내는 말을 살피면 으레 자기다움, 나다움, 내가 여기 있음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할까요.
┌ 처음부터 그곳엔 싱그럽게 살아숨쉬는 ‘내’가 있었다
├ 처음부터 그곳엔 튼튼하고 기운찬 ‘내’가 있었다
├ 처음부터 그곳엔 당차고 똘똘한 ‘내’가 있었다
├ 처음부터 그곳엔 씩씩하고 아름다운 ‘내’가 있었다
└ …
입으로만 외는 나다움이 아닙니다. 누구 앞에서나 환히 보이는 나다움입니다. 어디에서나 스스럼없이 말하고 함께할 수 있는 나다움이며, 둘레 삶터에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휩쓸리지 않는 나다움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몸과 마음을 가꿀 때 가장 아름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과 글을 돌볼 때 가장 알찹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일과 놀이를 찾고 일구고 서로 즐길 때 가장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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