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사회민주화와 남녀평등의식이 확산됨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부문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여성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여성이 의회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다수의 여성 총리를 배출하면서 양성평등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몇 년 동안 각종 남녀 차별적 법이 철폐되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이 각 부분에서 약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영성·생태라는 21세기 보편적 흐름(트렌드)과 잘 맞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의미 있는 흐름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여전히 이를 외면하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종교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종교 대중의 70% 이상이 여성임에도 성직을 비롯한 각종 제도와 구조 속에서 여성들은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천주교, 예수가 남자였다는 이유로 여성사제직 인정 안해 천주교와 개신교 일부 교단은 아예 여성사제직을 인정하지 않고 불교는 여성의 출가를 인정하지만 수행 문화나 대의기구 등 실질적인 차원에서 차별하고 있다. 사회민주화와 양성평등의식이 급속하게 확산됨에도 불구하고 종교 내에 성차별이 온존하는 이유는 각 종교 내에 팽배한 가부장적 유산 때문이다.
성차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됨에도 각 종교는 종교의 창시자나 경전에 남녀차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천주교의 경우 교회법을 어기고 여성에게 사제직을 서품하는 주교들과 해당 여성들을 '자동 파문'에 처할 정도로 여성사제직에 대한 반대 입장이 강하다.
천주교가 여성사제직을 반대하는 근거는 ▲ 예수가 남성만을 열두사도로 삼았고 ▲ 예수가 남성이기에 남성만이 예수를 자연스럽게 표상할 수 있으며 ▲ 교회 전통에서 한 번도 여성을 사제로 만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여성장로도 불허... "남녀는 평등하지만 역할은 다르다"개신교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이하 합동) 같은 교단에서는 여성목사는 물론 장로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남녀는 평등하지만, 역할은 다르다"는 이유로 여성안수를 반대하고 있다. 여성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서에서 가르치는 교회의 본질과 달라 '성직'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자(또는 아내)는 조용히, 아주 순종하면서 배우십시오.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사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그 다음에 하와가 지음을 받았습니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서 죄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면,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디모데 2장 11~15절)기독교 초기 지도자인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해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교회 안에서 '여자는 남자를 가르치거나 다스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여성사제직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천주교나 합동 등 개신교 보수교단이 인용하는 신약성서의 내용이 당시 사회적 배경과 사상적 배경을 바탕으로 선포된 말씀이기 때문에 현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디모데 같은 목회서신은 바울이 직접 쓴 서신이 아니라 바울의 제자들이나 바울의 추종자들이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와 마찰을 피하고 공동체의 안정과 제도화를 위해 작성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성서학자도 대부분 이를 인정하고 있으며 실제 신약성서 27권의 확정이 기독교의 로마 공인 시기인 4세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있다.
또한 로마의 성 프락세디스 성당 바닥에는 313년에 제작된 벽화에 디아도라라는 여성 주교와 3명의 여성 사제가 그려져 있고 가톨릭에서 여자들이 사제 서품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은 12세기 이후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회변화와 성서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은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고 국내 개신교 일부 인사들은 여성비하 발언을 통해 여성안수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대한민국에 어느 교단이든지 여자 목사 여자 장로 다 만들어도 우리 교단은 안돼… 여자들이 기저귀 차고 강단에 올라가? 안돼!" (예장합동 증경총회장 임태득 목사, 2003년 11월 12일 총신대 채플 설교에서)불교, 비구니는 비구를 무조건 공경해야 한다는 전통 남아 있어
불교에도 붓다시대부터 내려오고 있다는 여성차별사상이 있다. 여성이 출가하면서 정법의 수명이 5백년 단축됐다는 정법감소설(正法減少說), 여성은 성불할 수 없다는 여인불성불성(女人不成佛說), 비구니는 비구에게 무조건 공경해야 한다는 팔경법(八敬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8경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 백세의 비구니(여자 스님)라도 새로 비구계 받은 비구를 보면 일어나 맞아 예배하고, 깨끗한 자리를 펴고 앉기를 청해야 한다 ▲ 비구니는 비구를 흉보거나 꾸지람하지 못한다 ▲ 비구니는 비구의 죄를 들어, 그 허물을 말하지 못한다 ▲ 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 대중 가운데서 가르쳐 줄 사람을 구해야 한다 ▲ 비구가 없는 곳에서 여름 안거를 하지 못한다.
이 같은 차별에 따라 한국불교계를 대표하는 조계종 내에서 비구니 스님이 종정이나 총무원장은 물론 24개 교구본사 주지를 맡아본 적이 없고 81명의 중앙종회(입법기관) 의원 중 10명만이 비구니대표로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조계종 승려 1만3천여 명 중 약 6천명이 비구니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
불교가 정법감소설 등을 통해 성차별하게 된 것은 여성의 출가를 반대했던 붓다가 자신의 이모이자 양모인 마하파자파티 고타미가 출가를 간청하자 마지못해 허용하면서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붓다가 여성의 출가가 금지된 사회에서 이를 허용했다는 것 자체가 당시 사회에서는 혁명적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붓다가 활동했던 기원전 6~5세기 인도사회는 카스트제도가 정착되면서 계급과 신분 차별이 심해지던 시기로 당시 지배층은 계층 간의 혼혈을 막고 순수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정조와 순종을 요구하면서 사회활동에 많은 제약을 가했다. 여성들은 아버지, 남편, 아들의 소유로 인식되었고 여성이 해야 할 가장 우선적 일은 조상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남아를 생산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의 수행생활은 대부분 계절에 따라 유리걸식과 숲속 생활을 병행했기 때문에 여성이 수행할 경우 체력적인 문제와 함께 강간과 폭행, 맹수로부터 습격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에서 붓다가 여성출가를 허용한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고 당시 사회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붓다가 8경법을 제정했다는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붓다 생전에 없었던 것이 사후에 추가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붓다의 평등적 입장을 무시하고 당시 극심한 남녀차별사회에서 포교를 확대하기 위한 방편으로 성차별적인 내용을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여러 해석들이 분분하지만 붓다가 여성차별을 인정했다기보다는 당시 사회에서 승가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선택을 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수나 붓다가 여성에게 관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와 불교가 성차별이 강화된 것은 남성중심의 권력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와 예수, 여성의 깨달음과 지도적 위치 받아들여
남성 중심의 종교권력이 여성을 배제한 것은 당시 차별받았던 여성들이 불교나 기독교를 해방의 종교로 인식하고 포교와 교단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교단내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붓다의 제자 비구니들의 게송(불교의 가르침을 짧게 표현한 시의 일종)을 모아 놓은 <장로니게>에는 초기 여성출가자들의 심경과 생활, 수행상황들이 잘 나타나 있다. 붓다시대부터 내 구전되어온 <장로니게>에는 시집살이에 혹사당한 여성, 기녀, 매춘 여성과 같은 밑바닥 여성들의 출가와 성불이 소개되고 있고 그들의 포교활동에 대한 내용들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초기 기독교의 선교활동을 기록한 <사도행전>에도 여성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있으며 근래에 발견된 <도마복음서> <빌립복음서> <마리아복음서>와 같은 영지주의 기독교 문서는 정통기독교가 창녀로 묘사한 막달라 마리아가 베드로를 능가하는 예수의 수제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 복음서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와 입맞춤할 정도로 가까웠으며(도마복음서), 예수와 항상 동행하는 인물로 다른 제자들의 질투를 받고(빌립복음서), 예수가 그녀에게만 특별계시를 내리는 내용(마리아복음서)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기독교 역사에서 여성의 역할이 크고 막중했음을 보여준다.
원시 불교와 기독교가 여성의 깨달음과 지도적 역할을 인정했음에도 오랜 제도화 과정에서 여성들을 배제해온 불교와 기독교는 한국 땅에 들어와 유교와 결합하면서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해 나갔다. 불교의 경우는 성리학이 국가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공고해졌다.
근대 불교를 개혁하려고 했던 한용운 선생조차 한국사회의 유교적 전통에 호소하기 위해 <아함경>의 일부 내용을 인용해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이른바 <현모양처>에 머물도록 규정하기도 했다. 마치 불교도 여성문제에 한해서는 유교와 같은 편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남녀권리동일이라는 여성해방의 이념을 실천해온 원불교도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의 뜻과는 다르게 남성성직자(교무)의 결혼은 인정하면서 여성성직자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정녀(貞女)제도를 통해 차별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에 대해 원불교 정녀선서 대상자 중 일부가 2001년 11월 '독신상태에서 수도하고 봉사하겠다'는 내용의 정녀선언을 거부하기도 했다.
유교 전통과 만난 불교와 기독교, 여성 위에 군림하다기독교 역시 미국 근본주의 신앙과 유교적 전통이 결합해 여성의 제도적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여성안수를 거부하는 한국의 근본주의자들은 성서의 내용은 신의 계시로서 일점 일획도 고칠 수 없다는 성서무오설에 따라 남성우위의 가부장적 질서를 강요하면서 교회 안에서 남성 성직자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불교와 기독교는 한국에서 그들과 대척점에 섰던 유교전통과 손잡고 절대다수의 종교대중(여성) 위에 군림하고 있다. 주나라의 남녀차별과 장유유서의 사회질서, 도덕규범, 예의규범이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이어서 단지 개개인이 모두 그것을 엄격히 준수하기만 하면 사회가 안정되고 천하가 태평할 수 있다고 주장한 과거회귀주의자 공자의 사상이 혁명가들의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를 포섭해버린 것이다.
물론 기존 종교의 역사적 과정도 크게 한몫을 했지만 불교와 기독교가 유교적 전통과 맞물리면서 마치 물만난 고치처럼 기존의 가부장적 제도를 옹호하고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구적 전통도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 여성들의 오랜 투쟁으로 비구니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여성 안수를 허용하는 교단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뛰어난 여성 종교지도자들이 등장해 기존 종교권력과는 다른 영성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까지 시대착오적인 교리를 근거로 여성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천주교도 당장은 아니지만 시대변화에 따라 적절한 대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예는 아니지만 미국 천주교인의 약 70%가 여성사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보고되고 있다.
붓다나 예수가 과거 전통과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현재의 불교나 기독교는 창시자들보다 더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천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