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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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무대응'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지난 11일 '용산철거민참사 대응에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청와대 이메일 지침 사건'이 터진 이후 '청와대 실세'라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두문불출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한 행정관의 개인 행위"라고 결론을 내린 이후에도 ▲박형준 홍보기획관 등 윗선 보고 여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사 시기 ▲정부 공용메일 사용 여부 ▲경찰청장 인사청문회팀 이메일 발송 여부 등 각종 의혹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해명에 나서야 할 이 대변인은 지난 12일 이후 기자들 앞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부 출입기자들이 춘추관 관계자들에게 "청와대가 질문을 안 받기로 작정한 거냐"고 항의해도 청와대측은 묵묵부답이다. 심지어 "또다시 양치기 대변인이 될까 두려워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오전까지만 해도 "정치인 입각은 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오후 이달곤 한나라당 의원의 행정안전부 장관 내정 사실이 알려지는 바람에 몇 시간 만에 '양치기 대변인'이 되는 굴욕을 당한 바 있다.
그런 불쾌한 경험이 작용한 것일까? 이 대변인은 정권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사건임에도 김은혜 부대변인을 브리핑대에 세우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이메일 보낸 적 없다" 잡아떼다가 하루 만에 "경위 파악 중" 물러서
지난 11일 김유정 민주당 의원이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청와대 홍보지침 문건'을 폭로하자 이동관 대변인은 "청와대가 경찰청에 공식적으로 문건을 보내거나 지침을 내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것은 청와대의 첫 공식 반응이었다.
이 대변인의 발언은 1층 브리핑 장소(제2기자실)에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이른바 '1진 기자실'(제1기자실)의 휴게실에서 '청와대 공식 견해'가 전달됐다. 물론 이전에도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청와대 대변인'이 아닌 '청와대 핵심관계자'라는 우산 속으로 숨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가 이날 저녁 김 의원의 폭로를 뒷받침하는 '청와대 홍보지침 문건 전문'을 보도하면서 '문서'가 아닌 '이메일'로 전달되었고 발신자가 ◯◯◯ 행정관이라는 사실을 적시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지침을 내린 적이 없다'고 잡아떼던 청와대가 코너에 몰리는 순간이 온 것이다.
다음날(12일) 오전 이동관 대변인이 1층 브리핑실에 들렀다. 물론 청와대 이메일 지침을 해명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는 이날 오전에 열린 7차 비상경제대책회의 내용을 브리핑했다.
브리핑이 끝나자 기자들은 <오마이뉴스>가 전날 보도한 '청와대 이메일 지침'의 사실 여부를 캐물었다. 이에 이 대변인은 "청와대 관계자로 처리해 달라"고 '익명'을 요구한 뒤 이렇게 답변했다.
"어제 (김유정 의원 문건에 대해) 얘기한 것처럼 그런 일 없다."
그러자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동관 "한국 말도 못 알아듣나?... 홍보하는 분끼리 얘기한 것"
- 좀 더 진전된 내용(이메일과 전문)이 보도되었는데.
"더 진전된 내용이 있나? (어쨌든) 그런 일은 없다."
- 그럼 어제 관련 의혹을 제기한 김유정 의원에게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김 의원도 문서수발대장을 요청한 걸로 알고 있다. 현재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청와대 이메일 지침 사건과 관련,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내사를 벌이고 있음을 암시하는 발언이다. 전날(11일) "그런 일은 전혀 없다"고 잡아떼던 태도에서 한발 물러선 셈이다. 또다른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 청와대 행정관이 사적으로 이메일을 보낼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이 대변인은 한 기자가 "경위 파악이라면 이메일 지침을 보낸 사실 자체도 포함되나"라고 캐묻자, 다소 불쾌하다는 듯 이렇게 답변했다.
"한국 말도 못 알아듣나? 경위 파악에는 (당연히 이메일 지침을 보냈는지) 사실 여부가 포함된다."
이어 이 대변인의 묘한 발언이 이어졌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홍보하시는 분이 홍보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알려라'고 얘기한 거니까…."
청와대측은 부인했지만, '설사 그런 이메일을 보냈다고 해도 홍보하는 사람들끼리 얘기한 거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뉘앙스의 발언이었다. 문제의 이메일이 보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도 해석됐다. 이는 다음날(13일) '사실 인정'의 전조였다.
한편 이날 오후 5시 22분 청와대 기자들에게 인터넷으로 보도자료를 전하는 'e춘추관'에는 '청와대 대변인실' 명의의 보도자료가 올라왔다. 이 대변인의 의중이 담겨 있는 내용이었다.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청와대는 민주당 김유정 의원의 폭로와 같은 지침이나 공문을 경찰청에 내린 바 없습니다. 또 <오마이뉴스>가 입수했다는 '청와대 공문'은 청와대가 사용하는 공문이나 e-mail 양식과도 다릅니다."
부인할 때는 '대변인 브리핑', 인정할 때는 '부대변인 브리핑'
13일 오후 3시께. 이동관 대변인은 오지 않고 대신 김은혜 부대변인이 1층 브리핑실에 나타났다. 김 부대변인은 미리 정리해온 메모를 읽어내려갔다. 물론 김 부대변인도 "출처는 '청와대측'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은 메모 전문이다.
"자체조사 결과 국민소통비서관실의 한 행정관이 경찰청 관계자에게 개인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로 확인됐다. 사신(私信)이긴 하지만 이런 이메일을 발송하는 것은 청와대 근무자로서 부적절한 행위라고 판단해 구두경고 조치를 내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청와대는 민주당 김유정 의원의 폭로와 같은 지침이나 공문을 내린 바 없다."
청와대는 김 의원이 폭로한 '공문'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이메일 발송' 사실은 마지못해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김 부대변인의 발표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행사 참석을 이유로 브리핑실을 바로 떴다.
브리핑실 여기저기서 원성이 터져 나왔다. 기자들은 "조금 있다가 이동관 대변인이 오는 거냐"고 물었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짙게 묻어 있었다.
그리고 주말인 15일 오후 3시 56분. 'e춘추관'에 청와대 대변인실 명의의 보도자료가 올라왔다. 이성호 행정관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내용을 담은 자료였다.
"국민소통비서관실 이모 행정관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e메일 건과 관련해 오늘 사의를 표명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자신의 부적절한 행위로 물의를 빚은 데 책임을 지고 사직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청와대는 이 행정관이 오늘 사직서를 제출함에 따라 적절한 행정절차를 밟게 될 것입니다."
'꼬리자르기식 대응'이라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주말을 지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박형준 홍보기획관 등 윗선 보고 여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사 시기 ▲정부 공용메일 사용 여부 ▲경찰청장 인사청문회팀 이메일 발송 여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혹들이 제기된 16일에도 이동관 대변인은 기자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대변인 대신 나타난 김은혜 부대변인은 이날 열린 녹색성장위 1차회의 결과를 짤막하게 브리핑한 뒤 마이크를 김형국 녹색성장위원장에게 넘겨주었다.
김 위원장의 브리핑이 끝난 뒤 기자들은 청와대 이메일 지침과 관련된 의혹들을 해소하기 위해 김 부대변인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이미 브리핑실을 떠난 뒤었다. 일부 기자들은 "김 부대변인 다시 안 오느냐"고 물었지만, 이는 춘추관 관계자들만 당혹스럽게 할 뿐이었다.
'질문 받지 않는 청와대' 얼마나 오래 갈까?
이 대변인의 두문불출과 관련,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요즘 이동관 대변인이 일이 많아서 브리핑을 김 부대변인에게 맡기고 있다"며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관계자는 "대변인이 적극 나서서 해명하지 않으면 오히려 의혹이 더 증폭될 수 있다"며 "왜 대변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명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대변인실의 대응에 불만을 터뜨렸다.
이 관계자는 "본인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브리핑했다가 다시 본인이 나서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말을 뒤집기가 곤란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질문을 받지 않는 청와대'는 얼마나 오래 갈까? 이 대변인은 본인이 평소 자랑해온 '프레스 프렌들리' 정신으로 돌아오길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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