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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후자가 대부분이지만. 하루하루가 참 기대된다. 내가 몸담고 목회하고 있는 ‘사랑의마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평균나이는 85세다. 다 어른들이다. 그러나 진짜 어른은 몇 명 안 된다. 무슨 말이냐고? 평범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나이에 걸맞은 지성과 인격과 품성을 갖춘 이, 너무 거창한가. 그 정도는 아니어도 적어도 보통 정도인 어른들 말이다.

쉽게 말하면 내 설교를 알아듣는 사람이 3분의 1 정도다. 나머지는 치매이거나 ‘치매스러운’ 이들이다. 치매인 어른들에 대하여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이고, ‘치매스러운’ 어른들에 대하여 궁금할 게다. 그냥 보면 멀쩡하다. 좀 깊이 알면 이상하다. 앞뒤가 안 맞는 언행, 욕으로 범벅이 된 말, 3살짜리 정도의 아집, 금방 가르쳐줘도 딴소리하는 망각…. 대강 이런 상태다.

물론 육체적인 장애는 말하지 않겠다.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이들은 그러려니 하니까 그리 문제로 생각하지도 않으니까. 그럴싸하게 말을 하고 좀 불편하긴 해도 그럭저럭 걷는 이들 중에서 어린아이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만 아는 어른들, 그들이 항상 ‘사랑의마을’을 시끌벅적하게 만든다.

지랄하는 이야기 들어보라고?

 문제의 그 할머니께서 친지에게 직원이 써서 들고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고 있다.
 문제의 그 할머니께서 친지에게 직원이 써서 들고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고 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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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목사님!”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숙소로 돌아간 후 한 할머니께서 뽑아주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는데 복도 끝에서 손을 휘저으며 급히 오면서 할머니 한 분이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우리 마을에서는 ‘고자질리스트(고자질을 잘하는 이?)’로 통하는 할머니다. 할머니가 오는 방향을 향하여 일어서니 내게로 달려와 옷소매를 당기신다. 옆자리에 끌어 앉히고 내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이러신다.

“글쎄, 정○○이 지랄하는 이야기 들어 보실라우? 날마다 죽여달래. 진짜 죽지는 않고…. 하여튼 내가 그 꼴 보기 싫어 먼저 죽겄시유. 살은 뒤룩뒤룩 쪄가지고. 밤낮 밥 조금 준다고 지랄이여. 그러고도 운동은 안 허구. 날마다 휠체어만 태워 달래. 그런 건 암 것두 상대를 해주지 말아야 혀.

그러구 소리는 왜 그렇게 질러대? 귀청 떨어지겄시유. 그것 때문에 잠잠헐 날이 없대니께유. 비기싫은 게 귀까정 쳐 먹어서 듣지도 못 허구. 날마다 헌 소리 또 허구헌 소리 또 허구 그래유. 아구 지겨워. 목사님, 그런 건 상대를 말아야 해유. 목사님두 휠체어 밀어주고 그러지 말아유. ….”

대강 이런 내용의 어느 할머니의 ‘지랄하는 얘기(?)’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끔 맞장구도 쳐주는 센스, 나에게도 어느새 능수능란쯤은 아니어도 어른들과 사는 재미가 솔솔 붙은 모양이다. 내 맞장구는 할머니에게 남의 험담에 단수를 높여주는 양념쯤 되는가 보다. 맞장구가 붙으면 그 말의 꼬리가 올라가며 도를 더한다.

“아침밥 쳐 먹을 때부터 저녁에 침대에 누울 때까정 그 지랄하는 거 보다가 날 샌대니께유. 지금 사랑의마을에서 누구 하나 그 까짓 년 허는 소릴 듣는 중 알어유? 근데도 그렇게 씨부려쌌는데. 하여튼 내가 죽는다니께유. 그년 땜에. ….”

지랄이라고라고?

 할머니께서 비록 속옷차림에 침대 위이지만 사진 포즈만큼은 신세대 뺨친다.
 할머니께서 비록 속옷차림에 침대 위이지만 사진 포즈만큼은 신세대 뺨친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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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이란 뭘까? 갑자기 이 단어가 몹시 궁금해졌다. 국어사전을 보니, ‘재랄하다, 육갑(六甲)하다, 변덕부리다’가 비슷한 말이란다. ‘변덕스럽고 함부로 행동함에 대한 욕’을 일컬어 ‘지랄’이라고 한단다. 하하하. 그러니까 내 곁에서 계속 소위 ‘지랄하는 할머니’ 얘기를 하는 할머니도 종은 같은 종인 듯싶은데. 할머니는 지금 다른 할머니 ‘지랄하는 이야기’에 푹 빠지셨다.

가끔 이 할머니에게 지목된 그 할머니는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하는 특유의 버릇을 가지고 있다. “야!” 우선 반말로 아무에게나 이렇게 부른 다음 자신의 필요를 외쳐댄다. “야! 거기 있는 방석 이리 줘!” 오늘 아침예배 때도 다들 조용히 묵상하고 있을 때 벼락같이 이렇게 소리를 냅다 질러대는 바람에 한동안 교회 뒤쪽이 어수선했었다.

“어이구! 또 지랄이네! 이그, 지겨워!”에서부터 “누가 야야? 이 년아!” 그리고 “시끄러워! 이 할망구야!”로 이어지는 질펀한 욕 시리즈물이 난무했었다. 할머니의 “야!”로 시작한 한 마디는 금방 그 할머니 주위를 온통 적들의 본거지로 만들어버린다. 누구 하나 할머니의 요구에 좋은 반응을 할 생각을 하는 어른은 없다. 하는 수 없이 강단에 엎드려 있던 내가 슬금슬금 내려가 할머니 휠체어 곁으로 가 방석을 집어주는 수밖에.

그러고도 그 상황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지기미! 내가 뭐라고 하면 눈들만 흘기고 욕지거리들만 하지 들어 주려고 하지도 않아! 무시해도 유분수지? 이 더러운 년들아!” 할머니는 귀가 안 들리신다. 그러나 주변의 눈짓과 욕지거리는 용케도 들으신다. 내가 손가락을 입에다 가져다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아, 저 년들이 날 무시하니까 그렇지! 지들이 있으면 얼마나 있어? 응? 자식 못 낳았다고 그러는 거야? 씨×× 년들”

목소리가 더 높다. 할머니의 분은 쉽게 삭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쉿!” 하며 입술에 가져다 댄 손가락을 보면서 잠시 후 조금 움칠하며 수그러드신다. 그래도 이럴 때 목사라고 봐 준다는 생각을 하며 감사할 때가 많다. 다른 어른들은 나이가 많건 적건 상관없이 막무가내다. 그러나 그래도 내 앞에서는 듣는 척한다.

그래도 설교는 계속된다

 같은 장소 같은 모습이지만 포즈는 또 다르다. 사진 찍기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같은 장소 같은 모습이지만 포즈는 또 다르다. 사진 찍기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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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는 지랄하는 얘기를 내게 들려주는 할머니나 지랄하는 할머니로 낙인찍힌 할머니나 거기서 거기다. 난 늘 말한다.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이렇게 생각하고 너그럽게 봐주세요”라고. 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큰 소리 친 할머니가 문제다. 하지만 그 소리에 한마디씩 거드는 어른들도 문제다. 큰소리 친 할머니 목소리보다 거기에 대꾸하는 웅성거림이 더 크게 들린다.

내가 보기엔 모두가 할머니 표현대로 하면 ‘지랄하는 짓’이다. 그런데 다른 할머니들이 ‘지랄하는 짓’이라고 그리도 까불어대는데, 난 그게 그리 ‘지랄하는 짓’으로 보이지 않으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그냥 어두운 날들을 과거로 가지고 있는 이들의 한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기에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도 설교는 계속된다. 듣는 이보다 듣지 못하는 이가 더 많은 상대들을 향하여 하는 설교이지만. 그래도 쉴 수 없는 게 설교자인 나의 사명이다. 그래도 그만 둘 수 없는 게 나의 사명이다. 죽 그 ‘지랄하는 것’이 계속된다 할지라도(분명 그럴 것이지만) 지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사랑의마을’의 식사시간은 매끼마다 전쟁이나 다름없다. 적게 준다고 떠들어대는 할머니 때문에 그렇다. 숟가락질을 못하는 할머니 떠먹이느라 그렇다. 먹는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뜨거운 것, 찌르는 것 가리지 않고 입으로 넣는 눈먼 할아버지 때문에 그렇다. …. 내일 또 똑같은 전쟁을 치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상의 전쟁과는 상관없이 어제도 강단에 섰고, 오늘도 난 강단에 섰으며 내일도 난 강단에 설 것이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고 말할 것이다.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이렇게 생각하고 너그럽게 봐주세요.”라고 말할 것이다. 죽~.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충남 연기군 소재 '사랑의마을'이라는 노인요양시설에서 신앙생활을 돕는 목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른과 함께살기]는 그들과 살며 느끼는 이야기들을 적은 글로 계속 올라옵니다.
*이 기사는 갓피플, 당당뉴스 등에도 올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랑의마을#노인요양원#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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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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