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양반!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이 동네가 재개발된다고 들썩이는데, 어이구 저걸 불쌍해서 어쩐대요.”
안양7동 덕천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한 발발이 개를 쳐다보며 혀를 찼다.
필자가 이 개의 사연을 접한 것은 지난 해 여름이었다. 삼복더위를 피해 평상에 모인 대엿 명의 노인들이 부채질을 하며 다루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5년 동안 주인 없는 빈집을 지키며 살아가는 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그 개 이야기라면 저 앞집에 물어보슈”라며 식당을 가리켰다. 노인들이 가리키는 순대집 앞에는 유난히 눈빛이 초롱초롱한 누렁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순대집 주인은 “지금은 동네 개가 되었지만, 다루는 정확히는 몰라도 한 8살 정도 되었을 걸요”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다루는 이 골목집에서 어머니, 누나와 함께 살았지요. 지병이 있던 어머니가 화장실에 갔다가 뇌출혈로 사망했어. 장례식을 치른 후, 혼자 남은 누나(아가씨)는 어머니를 떠나보낸 아픔을 잊기 위해 다루만을 남겨둔 체 훌쩍 외국으로 떠나갔지요.
이웃에 사는 외삼촌은 이 녀석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대문에 구멍을 뚫어 주고, 가끔 외숙모가 사료하고 물만 주고 가요. 그렇게 이 녀석은 혼자 먹고 자고 들락거리며 살아온 거야.
그런데 이 녀석이 한 닷새 안 보이더니, 새벽에 돌아와서는 문을 사정없이 긁는 거야. 아마도 노숙자들이 눈독을 들인 것 같아. 그리고는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면 발작하듯 짖는 거야. 우체부는 ‘난 네게 해코지 안 했는데 왜 그러니’ 하기도 했어.
그 후부터 다루는 아무리 맛있는 고기도 낮선 사람이 주면 먹지 않고, 경계하며 접근조차 못하게 사납게 짖기 시작했지요.
전에는 방 하나를 세 주었는데, 주인이 떠나며 4년째 집 전체가 비어 있지. 나만 졸졸 따라 다니며 내가 우유라도 마시면 달라고 낑낑거려, 동네 사람들은 내가 얘 엄마인 줄 알아. 맨 날 밤마다 빈집 지키고 낮에는 수시로 들락거리고, 엄청 영리해. 아마 개 나이로 할아버지지.”
그때 낡은 철 대문 구멍으로 다루가 쑥 들어오며 낮선 기자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다루가 사는 빈집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서 여기저기 거미줄이 처져 있고, 담벼락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허술했다.
지난 해 1월, 외국으로 떠났던 누나가 돌아왔지만 다루는 알아보질 못했다고. 그러자 누나는 “다루야 네가 나를 몰라보다니...”라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고 외국으로 떠나갔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루는 무엇을 지키는 것일까? 근방에서는 다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파트에 사는 한 아주머니는 간식을 도맡아 챙겨주지만, 다루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육포다. 다루 소식이 궁금해서 며칠 전 순대집을 찾았을 때 다루는 따뜻한 연탄난로 아래에서 아주머니와 함께 있었다.
아주머니는 곧 덕천마을이 재개발이 될 텐데 외갓집 역시 강아지가 2마리나 있어 다루를 맡을 형편이 못 되고, 다루가 눈에서 멀어지면 찾아 나서지만 아주머니 역시 다루를 맡을 형편은 아니라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온통 재개발 이야기로 덕천마을이 술렁거리는데 과연 다루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지? 동네 사람들의 걱정 또한 깊어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후덕한 인심의 아주머니는 순대 간을 썰어 주기도 하고, 삼복더위에 털갈이하는 다루에게 빗질을 해 주면 다소곳이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