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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소를 통과해서 타슈켄트로 들어선다
▲ 타슈켄트 도착 검문소를 통과해서 타슈켄트로 들어선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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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나는 타슈켄트로 향하는 마지막 길에 접어들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알리셰르의 말에 의하면 여기서 타슈켄트 경계까지는 2km, 중심가까지는 7km라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늦어도 나는 오전 중에는 중심가에 도착할 수 있다.

어제 목화밭 사진을 찍다가 경찰에게 붙잡혀서 2시간 넘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아마 어제 저녁에 타슈켄트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래도 지금처럼 차가운 아침공기를 들이마시며 타슈켄트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좋다. 어제 저녁에 타슈켄트에 도착했더라도 아마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어두워진 저녁이 아니라 환한 대낮에 들어왔어야 하는데, 하면서.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 언제나 지나고 나서 후회만 하는 이 성격은 여기와서도 고쳐지지가 않는다.

타슈켄트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도로 한쪽에 연달아서 나타나는 커다란 상점과 식당들, 이른 아침인데도 분주한 도로의 움직임 때문이다. 타슈켄트가 어떤 도시인가. 인구 250만명의 대도시이자 '중앙아시아의 수도'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우즈벡이 소비에트연방에 속해있던 시절에도 모스크바, 키예프와 함께 구소련의 3대 도시로 꼽혔던 곳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지하철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자,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있는 곳이다. 타슈켄트에는 중앙아시아의 유일한 국제규격 챔피언십 코스의 골프장도 있다.

타슈켄트는 우리나라와도 연관이 있다. 1937년 스탈린이 연해주의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켰을 때, 상당수의 한인들이 타슈켄트 인근에 정착했고 그 후손들은 지금도 이곳에 살고 있다.

역시 그 시절에 '인민의 적'이란 누명을 뒤집어쓰고 총살당한 포석 조명희선생의 기념실도 타슈켄트에 있다. 고구려 출신으로 당나라 군대를 이끌었던 고선지 장군이 한때 이곳을 점령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타슈켄트가 '석국'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사연이 많은 도시를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발길을 옮겨온 것이다.

타슈켄트 앞, 마지막 검문소를 통과

칠란자르 바자르(시장)
▲ 타슈켄트 도착 칠란자르 바자르(시장)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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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검문소가 보인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수많은 검문소를 지나왔지만, 아마 저 검문소가 이번 여행의 마지막 검문소가 될 것이다. 검문소 한쪽에는 타슈켄트에서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 도시까지의 거리를 표시해놓은 간판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흔히 말하는 중앙아시아 5개국의 중심에 위치한다고 봐도 좋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머지 4개국과 모두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도 국경을 맞대고 있다.

간판에 의하면 여기서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쉬하바드까지는 1307km,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까지는 1071km, 카스피해 너머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까지는 2279km다. 검문소 너머로는 커다란 러시아어 끼릴 문자가 보인다. 'ТОШКЕНТ(타슈켄트)'.

드디어 타슈켄트에 도착했구나! 이곳에 오기 위해서 40일간을 고생했던가. 감상에 젖는 것은 나의 체질과 맞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짐을 도로 한쪽에 놓고 거리에 멈춰섰다. 넓은 대로를 오가는 수많은 차량들, 검문소에서 들리는 커다란 확성기 소리,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는 현지인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결국 왔구나, 사막을 뚫고 40일동안 혼자서 걸은 끝에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기뻐해야 마땅할텐데 이상하게 그렇지가 않다. 처음 이 여행을 구상할때는 무사히 타슈켄트에 도착하면 좋아서 펄쩍 뛸줄 알았다. 지금 내 심정은 의외로 담담하다. 아니 시원섭섭하다고 해야할까.

타슈켄트에 도착했다. 40일 동안의 여정이 끝나고 이제 더이상 갈 곳이 없다. 이건 분명히 서운한 일이다. 한편으로 시원한 점도 있다. 길이 끝났으니 오늘하루는 어디까지 걸어가야 할까, 오늘은 어디에 가면 잘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걱정을 안해도 된다.

나는 다시 짐을 챙겨서 걸음을 옮겼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두발로 걸어서 SKY114 사무실에 들어갈 때까지는 여전히 긴장해야 한다. 떨어지는 낙엽을 피하는 말년병장의 심정으로.

여행이 끝나니까 드는 기쁨과 아쉬움

버스 터미널
▲ 타슈켄트 도착 버스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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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가 펼쳐진다.
▲ 타슈켄트 도착 대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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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다. 망기트의 루스탐, 구르렌의 안바르, 이 친구들은 술 좀 줄여야 할텐데. 칼리지 개학식에서 학생들 앞에서 춤을 추게 만들었던 교장과 영어교사 후산도 떠오른다.

키질쿰 사막을 통과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도 생각난다. 나에게서 태극기를 가져가고 나중에는 염소고기를 사주었던 사막의 운전사 일홈, 현대판 오아시스인 식당에서 잠자리를 제공해준 사람들, "꼭 성공하길 바랄게!"라며 응원해 주었던 네덜란드 여행자들.

한국에서 일하고 돌아와 성공한 밥켄트의 알리, "형님 나랑 같이 한국에 가요!"라고 부탁하던 이쉬티한의 또다른 알리, 도로에서 벌꿀을 팔며 생활하던 자스루벡,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어준 사이둘라 할아버지.

이들의 친절과 웃음이 있었기에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기억에 남을 수많은 순간들도 있다. 사막에서 걷다가 지친 끝에 혼자 야영하던 그 밤, 잘곳을 찾아서 두리번거리던 뜨거운 오후, 1박 2일 동안 보드카를 마시고 녹초가 되었던 그 날, 촉촉한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컨테이너 안에서 대화하던 저녁시간.

아마 이 순간들을 내가 살아가면서 평생동안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기억들은 나의 내면 어딘가에 깊숙히 자리잡고서 종종 고개를 내밀 것이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무작정 그리워할 때,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지도를 뒤적이다가 문득 우즈베키스탄의 영토가 눈에 들어올 때, 나는 아마 우즈베키스탄의 사막과 목화밭, 첨탑, 푸른 돔을 그리워하게 될 거다.

차량과 현지인들로 복잡한 타슈켄트 시내, 나는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아 걸었다. 그리고 정각 12시, SKY114 사무실에 도착했다. 성수기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바쁜 사무실, 조상식 사장님은 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고생 많았지?"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악수를 하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SKY114 사무실은 출발전과 비교해서 별로 바뀐 것이 없다. 직원들은 여전히 바쁘고 하루종일 방문객들이 오간다. 나는 바깥쪽의 소파에 앉아서 오랜만에 인스턴트 커피를 한잔 마시고 이곳 교민들 사이에서 발행하는 교민일보를 펼쳐들었다. 한국의 소식이 궁금했기에.

또다른 여행을 꿈꾸며

나보이 국립극장
▲ 타슈켄트 중심가 나보이 국립극장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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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최진실은 자살했다. 미국에서 터진 금융위기 때문에 아이슬란드는 국가부도의 위험에 처해있고, 우리나라의 경제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소식들이 머리속으로 들어온다. 나의 정신과 육체 모두 지금 휴식을 원하는데. 그리고 내 몸은 깨끗하게 씻는 것을 갈망하고 있다. 나는 교민일보를 덮고, 도착해서 풀어둔 짐으로 눈을 옮겼다. 운동화는 1200km를 걸어오면서 터지고 너덜너덜 해졌고, 배낭과 보조가방은 흙먼지를 뒤집어써서 더러워졌다. 지도는 누더기처럼 변했고, 카메라의 메모리는 어느새 사진으로 가득찼다.

그 기간동안 크게 망가지거나 잃어버린 물건이 없다는 것이 대견하다. 술 취해서 정신없이 잠든 것도 여러 차례였는데. 그런 밤에도 본능적으로 여행용품들을 우선적으로 챙긴 모양이다. 한국에서 떡이 되도록 술을 퍼마셔도 무사히 집에 찾아들어가는 것처럼.

이 물건들도 참 그동안 고생 많았다. 앞으로 내가 또 어느 곳을 어떻게 여행할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이번 여행에서 날 도와주었던 것처럼. 나는 소파에 기대서 눈을 감았다.

기억은 어느새 키질쿰 사막으로 날아간다. 숨막히는 사막의 태양과 모래바람을 거쳐서 끝이 안보이는 지평선으로, 그 가운데에 도도하게 서있던 사막의 묘비들 사이를 떠돈다. 그리고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내가 살면서 우즈베키스탄에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이곳에서 잠시나마 함께했던 사람들이 못견디게 그리워지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들이 웃으면서 나에게 던졌던 이야기들이 떠오를 때, 이들과 부딪혔던 보드카 한잔을 생각할 때, 나는 당장이라도 우즈베키스탄으로 달려가고 싶어질 것이다. 그때가 언제일까. 확실한 것은 지금 하나의 여행이 끝났다는 점이다. 나는 또다른 여행을 꿈꾸고 있다.

타슈켄트 도착 다음날, 조상식 사장님과 함께
▲ 중앙아시아 전문여행사 SKY114 사무실에서 타슈켄트 도착 다음날, 조상식 사장님과 함께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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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번 편으로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기 연재를 모두 마칩니다. 그동안 제 여행기에 관심을 가져주셨던 모든 분들, 댓글과 쪽지로 격려해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태그:#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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