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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아동센터는 저소득층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을 지원하는 배움터다. 열악한 상황이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보금자리이자 인큐베이터이다. <오마이뉴스>는 창간 9주년 특별기획의 일환으로 우리 동네를 살찌우는 지역아동센터를, 사단법인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www.jckh.org)의 도움을 받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www.grassroot.or.kr)과 함께 찾아간다. 작지만 희망을 만드는 풀뿌리들의 이야기를 10여 차례에 걸쳐 소개할 계획이다. [편집자말]
인천의 '청학동 늘푸른 교실'(이하 '늘푸른 교실')은 1999년 말에 처음 문을 열었다. IMF 구제금융 위기가 터진 얼마 후였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더 가난할 것을 요구했던 시기였다. 그런 아이들을 보듬기 위해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뜻을 모아 '돌봄, 배움, 공동체'라는 정신으로 문을 연 것이다. 올해가 10년이다.

다행히 아동복지법에 '지역아동센터'가 명시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고, '늘푸른 교실'도 그런 혜택을 지난 2005년부터 받게 되었다. 처음엔 60만원이 지원됐다. 지원금이 차츰 늘어났고 후원자들의 후원금을 합쳐, 대부분의 지역아동센터가 그렇지만,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

'늘푸른 교실' 운영은 청학동 한 빌라 지하에서 시작됐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의 동선은 왁자지껄한 재래시장 분위기와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시끄럽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늘푸른 교실'은 짐을 쌀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복음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곳은 또 다른 지하방이었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뛰고 달리고 들썩였다. 아이들은 아이다웠을 뿐인데, 주민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다시 짐을 싸고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그들이 지하로 내려간 까닭

 사진은 '늘푸른 교실' 입구.
 사진은 '늘푸른 교실' 입구.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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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른 교실'을 운영했던 사람들은 차라리 집을 구입하자, 빚을 내서라도 하자, 소외계층의 아이들이 더 소외받지 않도록 하자, 이런 다짐을 하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3만원, 10만원, 100만원씩 출자를 받았다. 그렇게 1500만원을 모았다. 500만원은 지인에게 빌렸다. 2000만원은 은행에서 대출했다.

그런 식으로 4570만원을 모았고, 현재의 '늘푸른 교실'을 매입하게 된다. 아마 공부방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면 그 집을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관계자는 말한다.

가난해서 살아가기도 버거운 아이들은 그렇게 숨죽이면서 잠시라도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그 보금자리는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매입한 집은 반지하다.

현행법은 소방시설 설치 유지와 안전 문제로 지하에 설치된 아동전용시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늘푸른 교실'은 '미신고 시설'이다. 

소방시설 문제뿐만 아니라 반지하는 아이들의 건강에도 좋을 리 없다. 그러나 '늘푸른 교실'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래층에 누군가 살고 있다면, 또다시 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반복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써서 반지하를 구한 이유도 있습니다"라고 '늘푸른 교실' 시설장은 이야기한다. 희극적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상근 교사 2명, 반상근 교사 2명, 급식 교사 1명에 아이들은 모두 26명이다.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 220만원, 후원금 170여만 원, 아이들 급식비 보조금을 쪼개고 쪼개서 교사들은 그야말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아간다. 88만원 세대? 그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이다. 교사들은 자신의 열악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아이들도 질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악기를 다루었으면 하는 아이들을 모아서 작은 밴드를 하나 결성했다. 교사들은 이 아이들이 제대로 악기를 배우길 원했고, 없는 돈을 쪼개서 제대로 된 학원을 보내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10만원의 비용이 매번 지출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엄마들은 말한다. "어휴, 진짜…선생님들 월급이나 올리세요." 교사들은 그냥 웃음으로 답한다.

아이들에게 고향 같은 안식처

 공부방 아이들이 만든 게시판
 공부방 아이들이 만든 게시판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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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이 아니다. 대체로 운영비의 대부분은 아이들 프로그램 운영비로 지출된다. '마음성장 공부'라는 프로그램은 마음 속 상처가 있는 아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문 상담사가 찾아온다. 80만 원가량의 운영비 중, 60만원이 지출된다. 큰 부담이긴 하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난으로 생긴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실제로 아이들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매우 우호적이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의 비용은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교사들의 생각이다. 교사들에겐 아이들이 우선이다.

교사들은 '늘푸른 교실'이 아이들에게 고향 같은 안식처가 되길 희망한다. 이곳을 거쳐 간 아이들은 줄잡아 200명이 넘는다.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도 있고 취직을 한 아이들도 있다. 때때로 졸업한 아이들이 자원봉사자가 되어 찾아온다. 선배들이 찾아오면 제일 반가워하는 이들은 아이들이다. 지금의 아이들을 진정으로 보듬을 수 있는 이들이 형, 누나, 언니, 오빠들이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살아가다 지치고 힘겨울 때,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아이들의 고향이길 희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년째 초심을 잃지 않고 꿋꿋이 이 자리를 지켜왔던 두 상근 교사의 작은 소망이기도 하다.

"밥만 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설 수 있게 응원하죠"
[인터뷰] 안미숙 '늘푸른 교실' 시설장

 안미숙(왼쪽) 선생과 10년 동안 함께 일한 이현주 선생.
 안미숙(왼쪽) 선생과 10년 동안 함께 일한 이현주 선생.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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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아동센터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늘푸른 교실'처럼 좋은 철학과 가치로 운영되는 곳과 그런 곳의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고민이긴 해요. 예전 공부방엔 빈곤 문제를 이웃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철학이 있었잖아요. 그런 과정에 법 개정 운동을 했고 '지역아동센터' 자격으로 지원을 받게 되었던 건데, 공식적인 지원이 가능하다 보니 우후죽순으로 시설들이 많이 늘어났죠. 저희와 같은 철학을 가지고 운영하는 곳이 드문 것 같아요. 마치 돈 저렴한 학원처럼 운영하는 곳이 많아진 거죠. 그런 것이 좀 안타깝죠."

- 일반 사람들은 그런 것을 판단하기 어려울 텐데요, 어떤 차별성이 있나요?
"그런 것이 눈에 확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10년이 되다 보니까 아이들이 성숙해 가는 과정을 쭉 지켜볼 수 있었어요. 벌써 군대 다녀온 아이들, 대학에 입학한 아이들, 취직한 아이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잘 커가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더라고요. 또 하나는 우리는 다른 곳과는 다르게 숙제 대신 해주고 문제집 풀어주고 하는 식으로 안 하거든요. 밥은 챙겨주지만 밥만 먹여주는 곳도 아니고요.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내면의 상처를 들어주고 아이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응원해주거든요. 그런 것이 차별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말씀하신 대로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그런 차별을 느끼긴 쉽지 않을 거예요."

- 미신고 시설인데 구청에서 지원을 해주는 것 같네요.
"네. '늘푸른 교실'이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됐거든요. 그래서 구청도 그 취지나 뜻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원을 해주거든요. 그런 점에서 구청도 난처한 것 같아요. '늘푸른 교실'이 지역아동센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지원을 받으니까요. 구청에서도 시설을 제대로 갖추라고 얘기는 해요. 저희는 상황이 안 되고요. 지원해주는 것에 대해서는 고맙죠."

- 정부가 여러 영역에서 소외받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 같은데, 그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부처마다 소통이 잘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중복 지원을 받는 아이들도 있지만 사각지대의 아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아요. 여러 정책이 통합되면 그런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싶고요. 또 하나는 아이들 특성에 맞는 정책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역아동센터가 필요한 아이들도 있겠지만, 학교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도 있을 거고, 상담을 통해 치유가 필요한 아이들도 있거든요. 정책 일원화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적어도 방학에 굶는 아이들은 없어야 하잖아요? 그러나 여전히 굶는 아이들이 생기는 건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런 시스템이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현실화된 금액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동복지 차원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지원하기 때문에 정부가 사회복지사를 고용하라고 요구했거든요. 시설로서는 사회복지사를 고용하려면 그에 걸맞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자세였어요. 그래서 작년에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가 18평 기준으로 470만 원가량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동결된 거죠.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딜레마가 있어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시설이 3000개 이상 증가하면서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맞는지, 그것에 대한 판단이 잘 안 서더라고요."

- 정부는 특별히 지원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요, 뜻있는 사람들의 후원을 많이 늘려야겠네요?
"작년에 연수구로부터 지원 중단 통보를 받았어요. 미신고 시설이기 때문에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많이 걱정됐는데, 시설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5천원 내는 회원이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전화도 주시고, 아무튼 조금 후원금이 늘긴 했어요. 어려운 시기에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넘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참 고맙더라고요. 저희는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일일주점과 같은 행사는 안 해요. 일일호프나 일일주점은 '아이들'을 위한 시설의 성격에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일종의 철학이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큰 목돈이 들어오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내부적으로는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보자는 생각이 있어요. 아이들이 중심으로 밴드를 하나 결성했는데, 아이들 노래를 CD에 담아 판매해볼 생각이 있어요. 잘 될지 모르겠지만요(웃음)."

- 올해가 매우 특별할 텐데, 10년 기념행사는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지요?
"몇 가지 계획이 있긴 해요. 10주년 준비위원회를 꾸리면서 '늘푸른 교실'을 거쳐 간 아이들의 '동문회'를 만들어볼 생각이 있어요. 졸업한 아이들이나 현재 시설에 있는 아이들에게 서로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졸업한 아이들에게 연락하고 찾아내는 것이 큰일이죠. 그리고 매년 연말에 개최하는 발표회를 잘 준비하는 일과 소식지를 더 보강해서 동네 신문을 만드는 일 등이 현재 잡힌 계획이에요."



#지역아동센터#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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