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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사랑한 영화들이 온다. 얼마 전에 비카스 스와루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개봉했고 곧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가 개봉한다. 또한 다음 달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용의자 X의 헌신>이 개봉한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꾸준히 소개되기는 했지만, 이렇게 큰 작품들이 한꺼번에 연이어서 소개된 것도 드문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소설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그 영화들에 대한 관전 포인트를 원작소설의 매력에 비추어 말해보고 싶다. 감독이나 주인공의 유명세를 떠나 근본이 되는 소설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는 것이다. 개봉 순으로 이야기해보면, 첫 번째는 이제 막 개봉한 대니 보일 감독의 <슬럼독 밀리어네어>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8개 부문을 수상한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 외에도 여러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수상내역에 '작품상'이 자주 보인다는 것이다. 원작소설도 유명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관전 포인트는 여기서 나온다. 소설과 영화의 작품성을 높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똑같은가? 아니면 다른 것이 있는가?

 

소설이나 영화 모두 시작은 비슷하다. 인도의 하층민이 퀴즈쇼에 출연, 우승을 해서 백만장자가 된다. 황당한 것은, 아니 솔직히 말하면 슬픈 것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는 우승했기에 체포당한다. 하층민이 퀴즈쇼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에 속임수를 썼을 거라고 지레 짐작해서 경찰이 그를 체포한 것이다.

 

이때부터 주인공은 퀴즈쇼에서 문제를 어떻게 맞추었는지를 설명하는데 이 과정이 핵심이다. 그가 문제를 맞출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서글픈 인생을 살면서 인도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경험했는데 공교롭게도 문제가 그것들과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털어놓는 사연을 따라 가다보면 인도 사회의 슬픈 현실이 보인다.

 

소설은 이것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하는 태도가 유머러스하다. 그래서일까. 인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소설의 작품성을 만드는 원천이기도 하다. 영화는 어떨까? 마찬가지다. 다만, 영화는 '사랑'을 넣었다. 또한 '권선징악'을 뚜렷하게 만들었다. 소설과 명확한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어떤 것이 더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언급하는 영화 중에 유일하게 본 작품으로 그 감상을 말하자면, 영화를 보면 기분이 좋다. 할리우드의 동화를 본 느낌이다. 반면에 여운을 주는 것은 소설이 더 짙다. 왜 그럴까? 그 차이를 알아가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한 관전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곧 개봉할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는 어떨까? 아카데미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된 이 영화의 원작소설은 여기에서 언급하는 소설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작품도 크게 호평 받았었다. 책 읽어주는 행위에 대한 그만의 해석과 한 여인의 불온하면서도 숭고한 삶을 아름답게 그렸기 때문이다.

 

소설의 내용을 간략히 보자. 열 다섯 살의 소년은 우연한 계기로 연상의 여인 한나와 사랑을 나눈다. 정열적인 사랑이었다. 그 와중에 한나는 소년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참 뜻밖의 주문이었지만 소년은 그녀의 요청대로 책을 읽어준다. 그런데 한나가 돌연 사라진다. 소년은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고 그대로 시간이 흐른다.

 

소년은 성인이 돼 한나를 다시 보게 된다. 법정에서였다. 그는 그곳에서 어떤 진실을 알 게 된다. 남의 죄를 뒤집어쓰면서 모욕을 당하는 한나가 글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나가 글을 읽어달라고 했던 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감옥에 간 그녀에게 다시 책을 읽어주기로 한다. 테이프에 녹음해서 보내는 방법으로 읽어주는 것이다.

 

여기서 책을 읽어주는 것은 치유의 의미다.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나가 겪어야 했던 그 치욕은 그가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위로받는다. 영화는 그것을 어떻게 그릴까? 어떤 책이며, 또한 어떤 문장을 읽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또한 원작소설은 법정에서의 행동으로 그녀를 숭고하게 만들었는데, 영화는 그녀를 어떻게 그려냈는가 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인지 케이트 윈슬렛의 15분짜리 베드신을 중점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더 관심을 갖고 볼 건 바로 그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4월에 개봉할 <용의자 X의 헌신>은 어떨까? 원작소설의 흥행은 엄청났다. 일본에서 나오키상을 받은 이 소설은 국내에서도 출간 이후 지금까지도 추리소설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로 그 위치를 굳건하게 하고 있다. 소설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느 여인이 전남편을 죽인다. 우발적인 범죄였다. 자수할까 하다가 딸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 어쩌지 못하고 있다.

 

그 사실을 안 천재 수학선생이 여자를 돕는다. 치밀한 작전으로 경찰이 사건의 진실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덫을 만들어 견고한 방어막을 구축해낸다. 경찰은 그것에 속절없이 당한다. 이대로라면 여자는 무죄가 된다. 하지만 우연히 사건에 끼어든 천재 물리학자로 인해 사건의 분위기는 전환된다. 그가 이 사건에 '강적'이 있음을 눈치 채고 성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우게 되면서 천재 대 천재의 대결이 벌어진다.

 

용호상박! 그들의 대결은 그렇게 치열했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것을 생생하게 그렸다. 허를 찌르는 반전 또한 훌륭하다. 여자에 대한 사랑이 만드는 예상치 못한 결말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이다. 영화는 어떨까? 관전 포인트는 여기에서 나온다. 무엇을 변형했느냐다. 추리소설인 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추리소설을 그대로 영화화한 걸 기대하는 사람은 적다. 변형 여부다. 그것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물론 책과 영화라는 것이 사이즈가 다른 만큼, 이 영화들에 원작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런 관전 포인트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맞다.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이러한 관전 포인트는 소설을 본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일종의 '특권'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특권을 누리며, 지켜보자. 소설을 사랑한 영화들이 짝사랑에 그칠지, 아니면 교감하는 사랑에 도달할지를.


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문학동네(2007)


태그:#슬럼독 밀리어네어, #더 리더, #용의자 X의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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