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꽃바람이 장관이다."
언제 저리도 곱게 피어났을까? 온통 꽃 세상이다. 달리는 차창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꽃 향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 풋풋한 향기로움이 우주를 메우고도 넘쳐나고 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환한다. 눈이 부셔서 제대로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다. 하얀 꽃잎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운데 섬진강을 두고서 2 차선 도로의 양쪽에 피어난 벚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거기에다 더욱 더 아름다움을 배가시켜주고 있는 것은 노란 개나리였다. 벚나무 아래로 활짝 피어나 있는 노란 개나리꽃이 피어난 벚꽃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화엄 세상이란 바로 이런 곳을 말하는 것이라 실감하게 된다.
화엄 세상. 남도의 섬진강은 꽃바람이 일고 있었다. 그 근원지가 어디인지는 분간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화엄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달려도, 달려도 꽃들의 세상이다. 화려한 꽃들로 환한 화엄세상이 열려 있었다. 그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는 나 자신도 꽃이 되어지고 있었다. 물들여지는 것을 고스란히 만질 수 있어 좋았다.
전주에서 출발할 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이제 갓 꽃봉오리가 맺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꽃샘추위로 인해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햇살은 맑았지만 살갗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매서웠다. 꽃들도 아직은 힘을 쓰지 못할 것이란 생각하였다. 다음 주 정도가 되어야 꽃들도 활짝 피어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꽃들은 당당하게 피어나 있었다. 환경이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에도 꽃을 활짝 피어낸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난날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것도 바로 그런 환경이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을 보낸 50년대 60년대는 참 가난했었다. 그 때에는 가난이 지긋지긋하였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가난이 바로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이었다. 가난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당당하게 슬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배가 고팠기에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였고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안이함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되니, 나도 모르게 편안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고 시나브로 나도 모르게 달라져버린 것이다. 조금만 추워도 몸을 움츠리고 자신감을 상실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어려움이 있으면 먼저 포기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환하게 피어난 꽃을 바라보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절망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꽃처럼 빛이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역경을 이겨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꽃바람 속에서 나또한 꽃이 되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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