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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물 바구니
나물 바구니 ⓒ 윤희경

산자락 밑에 하얀 구름과 맑은 태양을 이고 버스정류장 집 할머니가 그림처럼 살고 계십니다. 팔순이 넘어도 한참, 찌그러져 가는 옛날 흙집을 지키며 큰아들과 며느리 셋이서 삽니다. '버스정류장 집 할머니'란 정류장 길목에 할머니가 동네를 지키며 살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시내버스는 시골마을을 하루에 다섯 번 왕복합니다. 할머니는 일을 하다가도 버스가 도착할 무렵이면 정류장으로 나와 오가는 사람들을 마중합니다. 할머니네 집은 버스정류장 큰길가에 있습니다. 대문은 있으나 늘 활짝 열려 있습니다. 문을 닫지 않으니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기웃거립니다.

 봄나물 캐는 할머니
봄나물 캐는 할머니 ⓒ 윤희경

할머니 집 앞을 지나며 동네 사람들은 싫든 좋든 냄새를 맡게 되어있습니다. 삼겹살, 고등어 굽는 냄새, 부침개 지지는 소리, 아욱국과 된장국의 보글거림, 수런수런 사람 사는 기척에 누구나 한 번쯤 할머니네 집을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할머니와 두 내외는 사람들을 불러들입니다. 못이기는 척 잔기침을 하며 안으로 들어서면 대개 먹든 음식이나 술과 시원한 물 한 잔을 권합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동네소식을 전달하기에 바쁩니다.

 봄나물 캐는 할머니, 허리엔 압박붕대를 차고서...
봄나물 캐는 할머니, 허리엔 압박붕대를 차고서... ⓒ 윤희경

할머니와 두 내외는 이렇게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저, 사람 집엔 사람이 끓어야 혀.' 할머니와 내외 부부의 철학이며 삶의 모습입니다. 배운 것 없어도 따스한 정 한마디에 모두들 고마워하고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할머니네 집을 가리켜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라 부릅니다. 머리를 굴려야 사는 마당에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씨가 봄볕만큼이나 따사롭습니다.

할머닌, 평생 땅 파고 채소를 가꾸어내느라 허리가 굽고 다리가 안으로 휘어 어기적거립니다. 어린 채소 하나를 키워도 정성을 다하기 때문에 몸뚱이 어디에도 성한 데가 별로 없습니다. 손등이 거북 등처럼 갈라지고 찢어진 손톱 사이로 검은 때가 끼어 말이 아닙니다. 자식들이 이제 억척을 그만 부리고 농사에서 손을 떼 여생을 편히 쉬라 성화들이지만 말을 듣지 않습니다. 농사꾼은 죽어도 밭고랑을 베고 죽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려댑니다.

 물푸레 지팡이 집고 서방 찾아가는 길
물푸레 지팡이 집고 서방 찾아가는 길 ⓒ 윤희경

할머니가 오늘은 한식날을 맞이해 일손을 놓고 성묘를 떠나갑니다. 서방님을 만나러 가려나 봅니다.

버스정류장 집 할머니
서방님 만나러 가시려나 보다.

분홍 수건
압박붕대 돌려 차고

물푸레 지팡이
연초록 꽃신을 신으셨네.

털내의 통바지
할머니 서방님 만나러 봄 소풍 떠나시네. 

 서방님 찾아 성묘가는 길, 연초록 신발 신으셨네.
서방님 찾아 성묘가는 길, 연초록 신발 신으셨네. ⓒ 윤희경

할머닌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 집 농원 앞에서 무언가 자꾸만 캐 바구니에 따 담습니다.

할머닌, 달래, 냉이, 고들빼기, 민들레 같은 봄나물들을 캐어 바구니를 채워갑니다.
"뭐하시게요?"
"봄 소풍 겸 서방 만나러 가려고 혀, 우리 서방 살아있을 때 이 봄나물들을 무척 좋아했구먼. 오늘이 마침 한식, 식목, 청명이 겹쳤구먼 그려. 아주 길일이야, 이런 때 서방 한 번 찾아봐야지, 지나치면 그 늙은이도 섭섭할 게야." 할머닌 달콤쌉사름한 봄나물들을 씻고 데쳐서 남편을 찾아갑니다.

  봄 입맛을 돌게하는 쌉사름한 민들레.
봄 입맛을 돌게하는 쌉사름한 민들레. ⓒ 윤희경

"여봐유, 일표아버지 나 왔시유, 겨우내 잘 있었시유, 일표아버지 좋아하던 봄나물과 막걸리 한잔 따라 올릴게유, 목 추겨유, 집안이 다 편안하고 아가들도 잘 있구먼유, 조금만 더 기다려유, 나도 곧 따라올 것이니께유."

 봄나물의 왕, 냉이
봄나물의 왕, 냉이 ⓒ 윤희경

알아듣기나 하는 건지, 어디서 흰나비 한 마리 날아와 봉분 위를 맴돌다 숲 속으로 몸을 감추고, 대낮부터 소쩍새 '소쩍소쩍' 앞산을 문득문득 일으켜 세우며 진달래 꽃물을 짜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이야기 윤희경수필방과 농어촌공사 웰촌, 북집 네오넷코리아,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카페 윤희경수필방을 방문하시면 농촌과 시골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나물 바구니#봄나물 캐는 할머니#민들레#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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