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무소속연합'을 선언한 정동영-신건 후보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일시적 연대가 아닌 근본적인 연합"을 선언한 두 사람은 20일 신 후보의 사무실 개소식에서도 만나 세를 과시했다. 신 후보는 이날 오후 3시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아트빌딩 3층에 선거사무소를 열었다. 정 후보는 바쁜 선거 일정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 개소식에 참석했다.
정 후보가 연일 신 후보 주위를 맴돌며 '엄호'에 나서는 이유는 민주당 세력을 등에 업은 이광철 후보에 아직 뒤쳐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신 후보의 지지율은 비록 상승세이긴 하지만 이 후보에 상당히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 안팎의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무소속연합을 선언한 정 후보에게 신 후보의 당선 여부는 자신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다. 만약 신 후보가 민주당 후보에 밀려 떨어진다면, 정 후보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정치력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무소속 출마→ 당선→ 복당→ 당권 장악'이라는 시나리오도 훨씬 더 어려워진다.
따라서 '정-신' 두 후보는 선거판을 뒤집을 만한 세력 모으기에 온 힘을 쏟아붓고 있다. 신 후보가 후원회장을 맡았던 한광옥 예비후보의 조직과 이무영 전 국회의원 조직은 벌써 선거운동에 나섰다. 이날엔 무소속 오홍근(전 국정홍보처장) 후보와 김광삼(변호사) 민주당 예비후보가 "신 후보를 돕겠다"며 지지선언을 했다. 신 후보 캠프는 "오 후보가 사퇴를 하고 선대위원장을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동영 동정론→ 정치혐오' 미묘한 변화도... "전주가 볼모냐"신 후보측은 선거사무소 개소식 이후 '정동영 바람'을 타고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추격해 막판에는 판세를 뒤집는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판이 계산처럼 간단하게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 신 후보가 뒤늦게 선거판에 뛰어든 탓에 인지도는 아직 이 후보에 비해 한참 떨어지고 있다. 일흔을 바라보는 고령의 나이와 함께, 선거 직전 민주당을 탈당해 '구태 정치' 비판을 받는 것도 신 후보로선 부담이다.
정 후보의 무소속 출마에 동정을 보낸 전주 민심에도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덕진과 완산을 넘나들며 선거운동을 벌이는 정 후보가 "전주를 볼모로 잡고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무소속연합이 가시화된 지난 17일 풍남문 뒤 남문시장에서 만난 최일규(58)씨는 "당이 공천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다 뛰쳐나오면 누가 당에 남아서 충성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무소속연합에 대해서도 "자신의 지역구만 잘 돌보면 그만이지, 왜 옆 지역구까지 넘보는지 모르겠다"면서 "전주가 정 후보의 볼모냐"고 꼬집었다.
박병주(66)씨도 "신 변호사가 전주에 무슨 연고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나이가 일흔에 가까운 것으로 아는데, 그 나이에 젊은 사람보다 더 일을 잘 할 수 있겠느냐"고도 비판했다.
같은 날 모래내시장에서 만난 박종기(55·정육점 운영)씨는 무소속연합에 "정치 혐오증을 느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박씨는 "민주당이라고 해서 계속 찍어줬더니 지금껏 전주가 발전한 게 뭐냐"고 성토한 뒤 "정동영씨가 신건 변호사와 연대를 하든 안하든,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차피 투표하러 갈 생각도 없지만, 진짜 서민정치를 해달라고 주문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더 멀어진 민주당... 정세균 "DY 레드라인 건넜다" 그렇다고 무소속연대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북대 인근 경기장사거리에서 만난 김동철(45)씨는 "당이 잘못가고 있으면 뛰쳐나올 수도 있다고 본다"면서 "정 후보가 전주의 큰 인물이니만큼, 나중에 복당하면 문제가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민주당도 당선 가능성을 보고 공천해야 하는데, 지금 (김근식) 후보로는 전주 사람들 성에 안 찰 것 같다"며 "정 후보가 당선된다면 민주당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 기사인 양아무개(51)씨도 "어차피 안 될 것 같으면 정 후보를 공천줬어야 옳다"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는 "정 후보가 당선돼서 고향에 좋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며 "신건씨도 국정원장을 지낸 경력이 민주당에 오히려 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무소속연합 선언 이후 두 사람과 민주당과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있다. 매일 인천 부평으로 출근하다시피하며 4.29 재보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세균 대표는 정 후보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정 대표는 20일 오전 최고위에서 "정 후보가 결코 건너서는 안 될 레드라인을 건넜다"며 "이는 소탐대실"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유정 대변인도 같은 날 공식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을 살리겠다던 정동영 후보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민주당 죽이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이는 자신을 키워준 민주당에 대한 배신이자 민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