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젓갈이 맛있게 보이네요."
"전라도 소금하고 삼천포 멸치가 만나서 만들어진 젓갈이여"곰삭은 멸치젓갈은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어 숙성된 깊은 맛과 화끈함이 제대로 살아있다. 그 맛난 젓갈 만드는 과정을 농부는 이렇게 맛깔스럽게 표현했다.
"지지난 여름에 멜따구젓 맹근다고 각시랑 삼천포까지 갔어. 비금도서 가져 온 묵은 소금을 실고 달리 가서 쌩 멜따구를 스무 상자나 사 갖고 제자리서 소금 간 해다가 도가지에다가 재 놓니라 쎄가 놀놀했었는디...것다가 꼬칫가리랑 청양꼬치랑 마늘을 썰어 여 갖고 무치 내 주는 그마. 잘 삭은 멜따구 젓은 열무에다가 싸 묵어야 제맛이 난당깨..."
그랬다. 얼갈이배추와 열무김치에 멸치젓을 넣어 싸 먹은 쌈밥은 쌈의 진수였다. 그 맛에 매료되어 한마디로 깜박 갔다. 음식에도 격이 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독특한 음식에 어떤 걸 먹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비빔밥, 쌈...무얼 먹을까? 이런 망설임도 잠시, 농부(53.서재환. 광양 텃밭도서관 관장)는 커다란 양푼에 갖가지 산야초로 버무려낸 나물을 듬뿍 넣어 쓱쓱 비벼 비빔밥을 만들었다. 그런 남편을 보고 농부의 아내는 "당신은 맨날 양판 떼기잖아"라며 그런 모습이 아주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농부의 아내는 하루 삼시세끼 밥을 다 그때그때 해먹는다고 한다. 그래야 밥이 맛있다며, 음식의 기본에 아주 충실했다.
"반찬이 없어도 밥이 맛있어야죠.""우리 식구는 먹는 거는 소중하게 여기고 폼을 다 잡고 먹어요."
텃밭과 들에서 온갖 나물(15가지)을 다 뜯어 모았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내 된장 고추장 매실엑기스에 갖은 양념으로 새콤달콤하게 무쳐냈다. 새싹나물이 갖은 양념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룬다. 가꾸지 않은 자연에서 온 천연재료들은 이루 말로 형언키 힘든 특별한 맛을 담고 있었다.
보드라운 열무에 매실엑기스를 넣고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낸 열무겉절이 맛 또한 범상치 않다. 옛날 고향집에서 목화밭 사이에 심었던 바로 그 열무를 찾은 듯 기뻤다. 열무김치를 통에 담아 긴 밧줄에 매달아 우물에 띄어놓고 먹었던 어머님의 손맛이 담긴 그 맛이 오롯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에 좀처럼 찾아내기 어려운 토속적인 맛이다.
"야~ 맛이 너무 좋은데요. 금세 힘도 느껴져요.""나물비빔밥을 먹으면 피로가 금방 풀려요. 몸으로 느껴요."
농부네 시골밥상의 나물비빔밥은 아삭한 식감이 잘 살아있을뿐더러 부드러운 감칠맛도 아주 그만이다. 다양한 나물이 한데 어우러져서일까. 독특한 풍미가 살아있다.
"울안에 키우는 닭 한 마리도 내가 잡아주면 노동이지만, 손님들이 찾아와 잡아먹고 같이 놀면 유희죠. 그래야 놀이가 되고 재밌어요. 항상 닭 잡는 사람 한명 끼여서 오라고 그래요."촌에서 오지게 사는 농부네 가족은 음식문화를 놀이로 승화시켰다. 농부네 집에 찾아가면 밥상머리에 앉은 것이 즐겁다. 유기농에 자연식이니 보약이 따로 없다. 자연이 담겨있는 농부네 텃밭에서 맛본 음식이 자꾸만 입맛을 부추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