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회상하다 문득 꺼내든 일기장. 일기장에는 24년 전 대학 시절, 풋풋했던 나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일기장을 넘기자 묻혀졌던 과거의 그녀까지 덩달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1985년 2월 27일, 수
모든 게 그리움에 사무치는 지금 나의 가슴을 죄이면서 다가드는 고독이 있다.
이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날 사랑해 주었던 그녀를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나지 않는 얼굴…
'삶은 사랑의 연속이다'더니 과거 일기 속에도 그 흔적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기분은 왠지 씁쓸했다. 13년 전,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이런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빛바랜 일기는 단지 내 삶의 기록일 뿐
결혼 전, 일기 등 과거의 파편들을 없애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좋든, 좋지 않든 간에 내 삶의 기록이다."
아내를 만나기 전 기록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삶을, 부부라는 이유로 간섭할 수 없다고 여겼었다. 하여, 아내의 과거도 굳이 없앨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건 아내의 삶이니까.
일기장으로 인한 작은 사건이 한 번 있었다. 결혼 3년차에 접어들던 때였다. 서재를 치우던 아내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일기장을 본 것이었다. 뜨끔했다. 내 기억으론 며칠 동안 불편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굳이 일기장을 없애지 않았었다.
꿈 많던 시절은 어디 가고, 중늙은이만 남았을까?
결혼 12년 차인 지금, 다시 본 일기장은 빛이 바래 있었다. 잉크가 번진 자국도, 잊고 있었던 편지들도 나타났다. 문학 일기며, 독서록도 군데군데 숨어 있었다.
'꿈 많던 시절은 어디가고, 40대 중반의 중늙은이만 남았을까?'
일기장을 본 감상 소감이다. 일기를 덮기 전, 내 생의 기록 일부 페이지를 찢어냈다. 오려낸 추억들은 족히 일기 한 권 분량이 되었다. 뒤늦게, 왜 일기장을 찢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가족'. 추억보다 가족이란 울타리가 더 소중했다. 추억 속의 그녀와 일상에게 작별을 고한 것이었다.
'세월이 약이다'더니, 세월은 이렇게 변화를 동반하는가 보다. 가정은 이런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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