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글 : 김선주- 펴낸곳 : 삼인 (2009.5.18.)- 책값 : 11000원 (1) 교회와 우리 삶터
우리 나라에 예배당이 많다고 느낀 때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제 국민학교 3학년인가 4학년인가 하던 때가 처음입니다. 서울에 있던 작은아버지 댁에서 숨을 거둔 할아버지 주검을 충남 당진에 있는 시골집 산등성이로 어른들이 힘겨이 상여 메고 올라가던 그날 밤 늦게 버스를 타고 인천집으로 돌아오는데, 다른 어른들은 모두 지치고 힘들어 곯아떨어지셨지만, 저는 웬일인지 잠이 오지 않아 어두운 밤길을 창밖만 내다보면서 왔습니다.
그때 스쳐 지나간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하나도 모릅니다만, 깊디깊이 어두운 밤에 시골에서건 도시에서건 예배당 빨간 십자가가 몹시 많았던 일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습니다. 하루아침에 저승사람으로 바뀐 할아버지 생각이 겹쳐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무렵 학교 선생 가운데 누군가가 '우리 나라에는 교회가 너무 많다. 그리고 밤마다 빨간 불을 켜 놓는 모습도 보기 나쁘다' 하고 읊조렸기에 그 말을 떠올리며 '그래, 선생님 말이 맞네. 교회 참 많네. 구역질 나게 많네' 하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모릅니다.
.. 그는 또 다른 설교에서 이명박 장로를 찍지 않으면 "내가 생명책에서 지울 거야"라고 했다. "생명책에서 지울" 수 있는 권리를 하느님이 아닌 목사가 행할 수 있다는 말은 자신이 곧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이 역시 애교 섞인 설교의 테크닉쯤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이다. 어느샌가 목사가 하느님의 자리에 선 것이다.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지배하고 그들의 정신과 영혼까지 장악하려는 권력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존재보다 눈에 보이는 담임 목사에게 신앙의 구체적 지향점을 찾으려는 신도들의 미숙한 정신을 목사가 올바로 인도하지 못할 때, 목회자는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의 자리에 앉게 된다 .. (19∼20, 33쪽)그 어릴 적, 우리 나라 구석구석에 예배당이 아주 많음을 불현듯 느낀 뒤로는, 버스를 타고 어디 간다든지, 또는 부모님 따라 시골집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든지,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면서 빨간 십자가 숫자를 세어 보곤 합니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던 고등학생 때에도 고속버스에 탄 저는 빨간 십자가 숫자를 세곤 했습니다.
요즈음은 깊은 밤에 골목마실을 하면서 십자가 숫자를 셉니다. 인천 옛 도심지인 중구와 동구에는 예부터 이름난 큼직큼직한 예배당이 꽤나 많습니다. 답동성당이나 내리교회나 내동성공회성당 같은 데야 워낙 오래되고 역사책에까지 이름이 실릴 만한 곳입니다만, 이런 예배당을 빼고도, 그리 높은 산이 있지 않은 인천임에도 언덕받이마다 예배당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배당은 하나같이 동네를 굽어살핍니다. 요사이야 아파트가 예배당보다 높이 올라선다 하지만, 스무 해쯤 앞서만 하여도 예배당보다 높이 치솟은 건물은 하나도 없던 인천입니다. 언덕받이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달동네 지붕 낮은 골목집을 우쭐우쭐 내려다보던 예배당이었습니다.
.. 자유당 정권과 유신, 5공화국으로 이어지는 반공 노선에 한국 교회와 목사들이 인권 탄압을 묵인하거나 도리어 앞장서서 주도한 것은 중대한 범죄다. 이것은 역사적 범죄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정의를 짓밟는 행위다. 교회가 하느님의 정의에 배치되는 특정 집단이나 사상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이념과 정치 대립의 장에 깊숙이 개입하여 인권을 유린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데 앞장섰던 것이다 …
1966년 박정희 군사정권 때 김준곤 목사에 의해 '대통령 조찬 기도회'가 시작됐다. 연중행사로 열리는 이 모임의 첫 번째 기도에서 김준곤 목사는, "박 대통령이 이룩하려는 나라가 속히 임하길 빈다"고 기도했다. 그리고 2회 때는 "우리 나라의 군사혁명이 성공한 이유는 하나님이 혁명을 성공시킨 것"이라 하는가 하면 …
1980년 8월 6일 전두환이 5ㆍ18학살의 공로로 대장 진급을 하던 날, 서울 롯데호텔에서는 개신교 지도자 23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도회가 열렸다. 정진경 목사는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 (52, 57쪽)
예전부터 인천은 '서울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거쳐 가는 징검돌 노릇을 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뿌리내리며 살던 사람들 집에서는 딸이며 아들이며 서울로 대학교를 다니다가 서울에서 일자리를 잡아 서울에서 홀살이방을 조그맣게 얻다가는 조금씩 전세값을 모아 아예 서울에 뿌리내리곤 합니다. 이러면서 인천은 늙은 엄마 아빠가 할매 할배가 되도록 조용히 남는 땅으로 바뀌어 갑니다. 서울과 가까이 찰싹 달라붙어 있는 탓이라 할 테지만, 아직 인천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젊은이를 빼고 스스로 인천에서 오래오래 살아가고자 하는 젊은 식구는 그리 안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무원이나 교사가 아니라 한다면. 젊은 식구는 그나마 인천 옛 도심지를 벗어나 부평이니 관교동이니 연수동이니 또 송도니 청라이니 하는 비싼 아파트(서울과 견주면 반값쯤 되거나 훨씬 더 싸지만)로 옮겨 갑니다.
이러면서 저절로 '예전부터 많았던 예배당에 들락거릴 사람' 숫자도 줄어들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많은 예배당 가운데 문을 닫는 곳은 아직 한 군데도 못 봅니다. 오히려 모두들 새로운 사람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며, 골목골목 '새 신도를 환영합니다' 하는 글월이 적힌 전단지가 뒹굴고 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계산동이나 부개나 부평 둘레에는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못지않은 엄청난 교회 건물이 새로 지어지고, 때로는 더 크다 싶은 교회 건물마저 숱하게 지어집니다.
.. 재미난 사실 하나는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 결혼 적령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신앙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소망교회를 찾는 경우가 생겼다는 것이다. 소망교회가 시쳇말로 '물 좋은' 교회로 알려지면서 '집안 좋은' 배우자감을 물색하기 위해 소망교회 청년부와 대학부에 등록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내각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부의 초대 내각이 소망교회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소망교회는 권력을 향해 가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 (138쪽)예배당 건물을 바라보면서 절집 건물을 생각합니다. 절집도 천주교나 기독교에서 세우는 예배당 건물과 마찬가지인 종교 시설입니다. 곰곰이 따지면, 지난날 불교 절집 또한 '우리들 낮은자리 여느 사람' 주머니에서 돈을 거두어들이고 품을 그러모으면서 으리으리하게 건물을 올려세웠습니다. 이제는 불타고 없다는 황룡사 높직한 나무탑을 헤아려 보든, 다른 수많은 이름난 절집을 떠올려 보든, 그 절집을 짓는다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짜야 했을까 싶어 적잖이 쓸쓸합니다.
오늘날 큰 교회 건물이라면, 뭐 무턱대고 아무한테나 돈을 거둬내지는 않습니다. 그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 주머니에서 돈이 나올 테지요. 그런데 그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왜 당신들 교회가 새 건물을 번쩍번쩍 높직높직해지는 데에만 돈을 낼까요. 하느님을 사랑해서? 예수님 믿음을 이 땅에 널리 퍼뜨리고 싶어서?
그러면 하느님 사랑이란 무엇이고, 예수님 믿음이란 무엇인가요. 하느님한테서 사랑을 받고프다면 어떤 사랑을 어떻게 받고 싶은가요. 예수님 믿음을 나누고프다면 어떤 믿음을 누구한테 어떤 매무새로 나누고 싶은가요.
집없어 떠도는 숱한 사람들은 하느님 사랑이나 예수님 믿음을 받을 만한 몸이 못 되는지 궁금하고, 비싼 집삯에 허덕이는 낮은자리 사람들한테는 하느님 사랑이든 예수님 믿음이든 와닿을 구석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 한국 교회의 큰 어른 노릇을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악어의 눈물로 보이는 회개 이벤트를 한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의 문제다 … 국민들은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실은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갔다. 또한 어청수 경찰청장을 중심으로 검찰까지 합세하여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무더기로 구속하는가 하면, 심지어 유모차를 끌고 나와 먹을거리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 시민들까지 '아동학대방지법'이라는 엉뚱한 법을 들이대어 처벌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러한 위선은 그의 개인적 기질이나 정치적 성향 때문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신앙 패턴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다. 쉽게 반성하고 또다시 쉽게 범죄하는 싸구려 감상주의식 회개가 한국 교회와 신도들에게 만성화됐다는 것을 방증한다. 회개할 때는 눈물콧물 다 빼다가도 그 순간을 벗어나면 또다시 세속적 명리와 가치를 좇게 만드는 이벤트성 예배에 익숙한 사람이 장로가 될 때까지 경험한 영성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 (224∼226쪽)서양사람 믿음인 천주교가 이 땅에 온갖 푸대접과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으면서까지 뿌리를 내리며 널리 퍼졌습니다. 천주교가 서양에서 보여주는 얄딱구리한 모습을 나무라면서 개신교가 태어났고 성공회가 태어났으며, 이러한 서양사람 믿음도 '천주교가 한국에 들어오는 동안 죽어나는 꼴'을 가만히 살핀 다음 이 나라 권력자 눈치를 살피면서 살금살금 들어와서 두루 퍼졌습니다(이 이야기는 기독교회 역사를 갈무리한 책에 거짓과 숨김 없이 잘 적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우리네 개신교회가 오늘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까닭이 천주교회가 어마어마하게 순교자를 내며 쫓겨나고 밀려나는 모습을 보면서, 낮은자리 사람한테 참사랑과 참믿음을 나누는 흐름으로 들어와서는 같은 꼴이 난다고 깨달아 처음부터 권력자한테 빌붙는 꼴로 들어와서 오늘날과 같은 잘잘못을 낳게 되었다고 말씀하는데, 이 말씀이 모두 옳지는 않을 터이나 여러모로 잘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다고 느낍니다.
천주교회가 한국땅에 자리잡은 모습이랄지, 천주교회에서는 예배당에서도 설과 한가위 잔치를 한달지, 천주교회 집안에서는 내남없이 제사를 지낸달지, 신부와 수녀라는 자리는 남녀로 갈리지만 남녀 푸대접을 많이 가셔냈달지 하는 대목은 서양 천주교회와 한국 천주교회가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그런데 천주교회를 나무라면서 새로 가지를 낸 믿음 가운데 개신교회만큼은 오히려 어마어마한 건물을 수없이 때려짓습니다(새로 짓는 천주교회도 돈을 참 많이 들이는구나 싶더군요. 서울에서 이문동성당 짓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찹니다). 하느님 사랑이나 예수님 믿음과는 거리가 먼 '예수천국 불신지옥' 같은 말을 길거리에서 일삼습니다. 한국 문화를 저주하다시피 깔보면서 장승과 솟대를 자르고 불사르는 짓을 서슴지 않았을 뿐더러, '미국 만세' 같은 말을 거리낌없이 내뱉습니다. '미국 = 하느님'이 아니요, '하느님 = 미국'이 아님에도 목사님 스스로, 또 교회에 나가는 분들 스스로, 참사랑과 참믿음을 자꾸자꾸 잃거나 잊어 가면서 뒤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맙니다. 더군다나 몇몇 개신교회 파에서는 남녀 푸대접을 대놓고 저지르는가 하면, 이런 남녀 푸대접이 아주 마땅하다는 듯이 성경 구절을 대면서 둘러대기까지 합니다.
사랑스러운 종교요 믿음직한 종교라 한다면, 아직 이 종교가 나누려는 아름다움을 깨닫거나 느끼지 못한 사람들 앞에서 더 마음문을 열면서 따뜻하고 너르고 넉넉하고 살가워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수다스러운 종교가 아니라 반가운 종교여야 하지 않느냐 싶고, 떠벌이는 종교가 아니라 다소곳한 종교여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굳이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할아버지'인 권정생 님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교회가 없어도 됨을 깨닫고 너른 믿음을 나눈 '우찌무라 간조'한테서 여러모로 앎을 얻은 이오덕 님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틀림없이 이이들도 교인이요 신도인데 나이 서른을 넘어갈 무렵부터는 예배당에는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않은 사람들이었으며, 이분들은 당신 온삶과 삶자락으로 '종교가 걸어갈 길'을 보여주었다고 할 만합니다. 말마디가 아니라 온몸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종교요, 글줄이 아니라 온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종교라고 느낍니다.
말끝마다 '하느님 사랑'과 '예수님 믿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성경풀이나 예수전 같은 책을 내지 않더라도, 우리가 온몸으로 기쁘고 신나고 살갑게 함께할 사랑과 믿음은 어디에나 그득히 있다고 느낍니다. 인도 캘커타에만 데레사가 있지 않고 한국땅 서울에도 데레사가 있으며, 제 삶터인 인천에도 데레사가 있습니다. 어떤 거룩한 사람 몇몇이 데레사가 아니라, 다름아닌 우리 스스로한테 데레사 넋이 있고, 우리 스스로가 데레사가 되어야 합니다. 떠받드는 하느님이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는 하느님이요, 모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가 몸소 되어야 하는 예수님이 아닌가 싶습니다.
(2)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라는 책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땅에 들어와 있는 교회가 저질렀다는 잘못이 꼭 일곱 가지뿐일까 싶지만, 아무튼 일곱 가지 굵직하다는 잘못을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일곱 가지 잘못을 들어서 밝히는 글이 그리 깊지는 못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틀림없이 일곱 가지 잘못을 쏠쏠히 갈무리해서 차분히 풀어내기는 했지만, 지난 2007년부터 권력을 잡은 이명박 대통령 둘레 사람들 꾸지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닌 이명박 장로로서 얄딱구리하고 안쓰러운 모습을 여러모로 보여주고 있는 탓에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이라는 책에서도 이 대목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꾸짖는다고 할 테지만, 이렇게 하자면 책이름을 고쳐 붙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명박 장로가 한국 교회를 망가뜨리는 일곱 가지 죄악'쯤으로.
.. 전도가 안 되는 것은 하느님을 부정하는 세속인들의 타락 때문이 아니라, 부패한 교회 구조와 목회자의 오만한 권위주의 때문이다 … 한국 교회는 이단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부조리와 부패 때문에 망하고 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 성경과 복음의 진정성을 상실한 교회가 어찌 세상을 향해 예수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겠는가 .. (42, 74, 135쪽)그렇지만,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은 이명박 장로 같은 분이 왜 이런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지를 학자 된 글쓴이 나름대로 슬기롭게 풀어내어 보여줍니다. 이명박 장로가 처음부터 '나쁜 놈'으로 태어나서가 아니라, 한국 교회 틀거리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얄궂은 매무새에 길들도록 이끄는 나쁜 뿌리'를 단단히 뻗어 놓고 있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지난날에는 뜻있고 값있는 일을 해 오던 믿음직한 분들이 안타깝게도 '하느님 사랑'을 들먹이면서 뜻을 버리거나 값을 내팽개치는 까닭도, 당신들 스스로 '못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 교회 짜임새가 사람마다 제 믿음을 고이 간수하기 어렵도록 뒤틀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 설교자가 '학벌 권하는 사회'의 구조에 편승하여 학벌 없는 동료 목사나 청중들에게 열등감을 조장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일을 하고 있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가짜 학위를 과시하는 설교자의 설교가 진짜 설교인지 의심이 드는 것은 학워 문제가 아니라 설교자 이전의 인간의 진정성과 도덕성에 대한 의문 때문일 것이다 … 부자들의 위장 전입과 불법적 투기 행위가 어디 어제오늘 일인가. 한국적 풍토와 관행상 상류층 인사들이 문서 조작 등을 통해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냥 눈감을 수 있는 한국 사회의 일반화된 사건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인사가 부동산 투기의 당사자라면 문제가 다르다. 특히나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기독교인에게는 더욱 엄격한 윤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면서 동시에 세속사회가 기독교인에게 요청하는 윤리이기 때문이다 .. (118, 203쪽)
옆지기 식구들이 사는 일산에 와서 살펴보아도, 우리 집이 있는 인천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빨간 십자가를 봅니다. 서울 나들이를 할 때에도 빨간 십자가는 눈에 밟히도록 봅니다. 통계가 얼마나 될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한국땅에서 예배당 숫자는 구멍가게 숫자보다 훨씬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방 숫자하고 견주면 아마 열 곱이나 스무 곱, 아니 백 곱쯤 예배당 숫자가 많지 않느냐 싶습니다.
언젠가 헌책방 아저씨가 푸념처럼 이야기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목사든 교인이든 책을 참 안 본다고. 종교책이 들어올 때에는 한 차 가득 들어오는데 팔리는 책은 거의 없다고. 교회에서 때때로 뭉치로 천 권 이천 권을 사들여 한쪽에 도서관처럼 꾸며 놓는다고 하지만, 다들 읽으려고 놓는 책이 아니라 자랑하려고 갖추기만 하는 책일 뿐이라고.
.. 세상은 교회가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을 실천하지 않는 교회 때문에 망한다. 예수 이름만 있고 예수의 가르침이 없는 교회 때문에 망하고 교회도 망하는 것이다 .. (257쪽)우리보고 지키라 하는 '열 가지 다짐' 가운데에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다짐이 있습니다. 이 '우상'이 무엇인지는 알쏭달쏭하지만, 오늘날 한국땅 어디에나 지어져 있는 큼직한 예배당이야말로 우상이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해 보곤 합니다. 어두운 밤에도 빨간 불을 밝혀 놓아 전기를 먹는 십자가, 예배당 건물을 예쁘게 보이도록 밤새 켜 놓는 갖가지 등불이야말로 둘도 없는 우상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곱씹어 보곤 합니다. 늘 잠겨 있는 뒷간 문, 어느 나그네도 다리쉼을 할 수 없게끔 닫아건 예배당 문이며 울타리, 자전거 설 자리와 아이들 뛰놀 흙마당은 없어도 자가용 댈 자리는 넘쳐나는 앞마당, …… 우리는 얼마든지 아름다운 사랑과 따뜻한 믿음을 어떤 종교로든 나눌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할 때면 가슴 한쪽이 무겁고 서늘하고 먹먹합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하고,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합니다. 작은 사랑이 아름다우며 작은 믿음이 아름다운 가운데 작은 교회가 아름답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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