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기차를 타고 왔습니다. 내가 왜 이 먼 길을 달려왔는지를 생각하며 살겠습니다"(서울, 이희재).
경남 진영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남긴 방명록에서는 눈물이 뚝뚝 흘렀다. 고인에 대한 추모의 글뿐만 아니라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10년 전으로 후퇴한 민주주의의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겠다는 다짐의 글귀도 눈에 띈다.
봉하마을 내에 방명록이 마련된 장소는 모두 3곳. 옛 봉하마을 농기구 보관소를 개조한 '노사모' 사무실 앞과 그 맞은편 그리고 분향한 뒤 나오는 길 앞이다. 두 곳의 방명록은 이름·주소·비고란으로 되어 있고, 1곳은 하얀색 종이로만 되어 있다.
인적 사항까지 적을 수 있는 방명록은 1권에 2000명이 적을 수 있는 난이 있다. 2곳에서 모두 합쳐 매일 50여 권 이상의 방명록이 쌓이고 있다. 안에 종이가 백지로 된 방명록은 25일 하루만 30여 권이 모였다.
조문객들이 쓴 방명록은 고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고 유족이 머물고 있는 마을회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교대로 근무하면서 안내하거나 방명록을 받고 있다.
방명록은 모두 작성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많이 밀려오기에 그냥 지나는 조문객이 더 많다. 한 자원봉사자는 "방명록을 남기는 사람은 1/5도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군차 올립니다, 편히 가시옵길 빕니다"
조문객들은 짧은 말을 남기고 있다. "명복을 빕니다"거나 "사랑합니다 영원히", "편히 쉬십시오", "고이 잠드소서" 등의 글귀가 많은 편이다.
"좋은 기억으로, 명복을 빕니다", "노짱님, 이제는 편시 쉬세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영원한 님", "죄송합니다 그 뜻 이어 가겠습니다",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우리의 대통령이십니다", 너무도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영원한 대통령이십니다".
26일 봉하마을을 찾아 '장군차(茶')를 올린 가야차문화회 회원들도 기록을 남겼다. 이들은 "장군차 드시고 편히 가십시요"라거나 "장군차 올립니다, 편히 가시옵길 빕니다"고 썼다. 장군차는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한 뒤 봉하마을에 심기 시작하면서 더욱 알려졌다.
조문객들은 방명록에 '민주화'에 대한 갈망도 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후배로 보이는 김태양씨는 "선배님은 최고의 민주주의 개혁을 하셨습니다, 저희는 꼭 기억할 것입니다"고 썼다.
"당신은 가진 것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의 친구였으며 이웃이었습니다", "국민에게 고개 숙일 줄 알던 대통령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켜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당신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좋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이 땅의 민주화가 완전히 정착하는 그날까지 지켜봐 주시길", "그대를 통한 민주주의 부활을 꿈꾸며", "이 가련한 어리석은 백성들은 어찌 할까요".
"우리 가족의 대통령이셨어요. 행복했습니다"
학생들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한 초등학생은 "우리 가족의 대통령이셨어요. 행복했습니다"라는 글을 또박또박 써놓았다.
26일 아침 봉하마을에서 만난 정봉화(대구)씨는 "평소 생각해 왔던 말을 썼다"고 말했다. 정씨는 방명록에 "부끄럽고 죄송합니다"고 썼다. "존경합니다"고 쓴 김외숙씨는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부터 생각했던 말인데 방명록에 꼭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방명록 담당 자원봉사자 김아무개(의정부)씨는 "오늘 아침에 초등학생들이 와서 방명록에 썼는데, 아이들한테 '선생님이 가자고 해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가자고 해서 왔어요'라고 대답하더라"면서 "아이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원봉사자는 "방명록에 써 놓은 글귀를 읽어보면 몸에 전율을 느낄 때가 많고, 어떨 때는 눈물이 나기도 한다"면서 "유가족들이 방명록을 보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