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초가을, 첫 아이를 가졌을 때였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성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남편과 나는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이제 새시대, 새세상이 올 거라며 남편과 나는 뛸 뜻이 기뻐했다. 그리고 남편은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쳤다.
"여보, 우리 기해가 복덩이인가봐. 앗싸~."
'기해'는 큰아이의 태명이었다. 이제 정말 사람이 사람대접 받으면서 살 수 있는 인간다운 세상이 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출산 후 배에 복대 두르고 투표장으로 향했던 나
대통령 선거일이었던 2002년 12월 19일은 내가 첫 아이를 낳은 지 열흘도 채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생각지 않게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바람에 배에는 복대를 두르고 있었고, 몸은 붓기가 빠지지 않아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한 마디로 '만신창이'였지만 그렇다고 투표를 안할 수 없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옷을 겹겹이 껴입고, 머리엔 목도리를 칭칭 두른 채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투표장으로 향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신성한 국민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거창한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반드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투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케이크를 하나 구입했다. 마침 그날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다. 밤 늦게까지 개표 결과를 보며, 마침내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 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 우리는 얼싸안았다. 결혼기념일과 새로운 새시대의 희망을 자축하며 폭죽을 터뜨리고 케이크를 잘랐다.
그리고 쌔근쌔근 잠자는 갓난아이를 보며 노란풍선과 환호하는 국민들, 노 대통령의 감격에 찬 얼굴을 보며 콧날이 시큰했다. 아직 고개도 가누지 못하는 나의 첫 딸은 2002년 '복덩이'였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우리는 2002년 희망둥이이자 복덩이였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새 시대, 새 희망을 꿈꾸다
그래서일까.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의 시작은 나에게 곧 한 생명의 시작과도 같다. 그것은 곧 희망이었다. 이 시대에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남편 말대로 '참 복도 많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인간답게 정정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곧 올 거야. 우리 아이들은 그런 세상에서,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권 5년이 지났고, 퇴임 후 1년 3개월여가 지났을 뿐인데 지난 23일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 부부는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설'이 곧 현실화가 되면서 남편은 온종일 울먹였다. 참으로 서럽게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라 분하고 억울해서 울먹였다.
두 아이들은 "아빠가 왜 우냐"고 내게 물었다. 하지만 그 눈물을 일곱 살, 네 살짜리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너희를 낳으면서 품었던 그 희망이 이제 사그라지는 것을 볼 때의 참담함, 슬픔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일요일 저녁, 딸아이 둘이 욕실에서 거품목욕을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너 아빠가 왜 우는 줄 알아?"
"응. 이녕박이 죽어서 그래."
"바보. 이녕박이 아니고 이,명,박이야. 그리고 이명박이 죽은 게 아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었대."
"누가 죽였는대?"
"바위에서 떨어졌대. 그런데 언니 생각엔… 누가 뒤에서 민 거 같애. 누가 일부러 떨어뜨린 거 아닐까."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가슴을 쳐야했다. 큰 아이의 말이 맞았다. 그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었다. 도대체 누가 그를 30미터 절벽 벼랑 끝으로 내몰았단 말인가. 하지만 모든 국민은 다 안다.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 그 답이 있다는 것을.
네 살 딸아이 "대통령을 누가 죽였는데?"
25일 아침, 영화의거리 초입에 있는 문화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 다녀왔다. 그곳은 불과 한 달 전만해도 전주국제영화제로 분주했던 곳이었다. 밴드의 공연이 열렸던 무대에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고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 대신 슬픔을 애도하는 조문객이 침울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에 찾았다던 담배 한 개피. 향로에는 담배도 많이 올려있었다. 국화를 올리고 향로에 향을 꽂으며 생각했다. 오늘 죽은 것은 '노무현'이 아니라 한 시대의 꿈과 희망이었다는 것을. 2002년 태어났던 '희망둥이'가 죽었다
앞으로 어디에서 우리 아이들의 희망을 찾아주어야 할까. 무엇을 가르치고 무슨 꿈을 꾸며 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누구를 본받으며 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싸늘히 죽은 아이를 어떻게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그 때 그 힘찬 박동과 웃음소리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 것인가. 이 야만의 광기의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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