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오후 6시, 워싱턴 D.C 근교인 페어팩스에 있는 미주동포전국협회(NAKA) 사무실은 100여 명의 미주동포들로 가득 찼다. 인터넷에 올린 몇 줄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의 밤' 알림글을 보고 워싱턴 D.C, 버지니아, 메릴랜드 지역에 사는 동포들이 알음알음으로 모여들었다.
워싱턴 지역에서 오랫동안 통일운동을 해온 신필영씨는 "유력한 단체에서 주관한 행사도 아니고 대대적인 홍보를 한 행사도 아닌데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노 대통령의 죽음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했다.
원불교 워싱턴교당에서 박상임 교무를 비롯한 세 분의 교무님들께서 추모예불을 드리면서 추모행사는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행사 도중에도 조문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온 부부,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 봉하마을 방문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진을 찍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가족 등 조문객들은 한결 같이 눈물을 머금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내가 아는 노무현워싱턴 수도 장로교회 조명철 목사는 추모사를 통해서 민주주의를 위한 고인의 신념과 역정을 회고하였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워싱턴지역 노무현 후원회장을 역임했던 신필영씨는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고통을 가늠하기는 어려우나, 그 고통을 야기한 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며, 고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한다고 역설했다.
'내가 기억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순서에서는 참가자들이 너나 없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추억하였다.
"고인에게 서명을 받은 인연으로 지지자가 되어 대통령이 되기까지 아이 키울 때와 같은 정성을 들였다.""고인이 대통령 재임할 당시에 워싱턴DC를 방문하여 동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유독 나만 쳐다봤다. 그런데 그날 참석자들은 모두 그렇게 말하더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3일만에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2002년 대선 때 처음 투표권을 행사했다. 노무현은 내가 찍어서 당선된 첫 번째 대통령이다.""전직 대통령을 일반 잡범 다루듯이 모멸을 주어 자살하게 만드는 나라에 대해 절망하였으나, 국민들의 추모열기를 보면서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강자 앞에서 약하지 않았으며, 약자 앞에서 강하지 않았던 위대한 분과 한 시대를 같이 살았다."고인이 대통령 후보시절 즐겨부른 노래인 '상록수'를 합창하면서 참가자들은 고인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는지 참으로 애통해 하였다. 고인이 걸어온 길을 연속사진으로 상영할 때는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방문연구원으로 미국에 머물고 있는 김창수씨는 "고인은 자신과 가족, 그리고 동반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덧씌워지는 불명예와 부당한 조롱에 타협하지 않았고, 이에 마지막으로 항거하기 위해 '부엉이 바위'로 걸어간 셈이다"는 국내언론 보도를 인용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배경을 설명하였다.
계속되는 추모열기2008년 2월 25일, 퇴임 후 고향인 봉하마을에 도착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첫 마디는 "야, 기분 좋다!"였다. 퇴임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고향땅에 돌아가서 투박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생활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노무현 대통령… 그런데 고향땅에 돌아간 지 15개월만에 그렇게 기분 좋아하던 고향에서 그는 세상을 훌훌 떠났다.
현직 검찰 관계자들조차도 고인에 대한 대한 '망신주기식 수사는 비겁한 일'이었다고 말하며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지적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한 참가자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국제적인 공분의 대상이고 미국의 위상을 실추시킨 사람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부시를 예우하고 있다"며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내몬 한국의 정치현실을 개탄했다. '정치적 타살'이라는 주장에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추모 행사의 마지막은 역시 촛불이었다. 저녁 8시 실내에서 진행된 촛불 의식은 모든 이들의 마음으로부터 새로운 다짐을 하는 시간이었다. 사회자가 "오늘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듭니다"란 고해성사(?) 속에 진행된 촛불 의식은 마지막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함께 합창 하면서 추모식을 마무리하였다.
"오늘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듭니다. 바보 노무현이 남기고 간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무언의 메시지는 신명나는 세상,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 국민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을 꼭 이루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이제 슬픔을 넘어 새로운 희망의 세상을 향해 힘을 모읍시다."추모행사를 마치고 뒷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일정을 의논하였다. 참석자들은 한국의 장례식 일정에 맞춰 미국 동부시간으로 5월 28일 오후 8시 30분에 버지니아 한인타운 에난데일 소방서 앞 작은 광장에서 "촛불 추모의 밤"을 다시 개최하기로 하였다.
5월 24일부터 운영하고 있는 분향소도 25일부터 28일(목)까지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계속 유지하기로 하였다.
분향소는 미주동포전국협회(NAKA) 사무실(3883 Plaza dr. Fairfax, VA. 22030), 연락처는 571-243-5054 (눈빛맑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