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과 서울역사박물관에 정부 공식 분향소가 차려진 지 이틀째. 하지만 덕수궁 앞 시민분향소를 찾는 분향객 수는 줄어들 줄 모른다.
지난 25일 오전부터 26일 오후 1시까지 서울 지역 정부 공식 분향소 두 곳을 찾은 분향객 수는 행정안전부 집계로 각각 1만6051명(서울역), 1만300명(서울역사박물관), 총 2만6351명이다.
덕수궁 시민분향소를 방문한 분향객 수도 만만치 않다. 분향소가 차려진 후 다녀간 조문객이 15만 명이 넘는다. 전날의 경우 밤 11시까지만 따져도 경찰 추산 1만 8000명의 시민이 다녀갔다. 이날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시민분향소 상황실이 자체 추정한 분향객 수도 5천 명을 넘어섰다.
서울역의 유동인구나 서울역사박물관의 편의성 등을 따져보면 덕수궁 시민분향소를 방문한 시민들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기다리고 혼잡함도 견뎌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비웃듯 시민들은 계속 덕수궁을 찾고 있다.
줄 길고 혼잡한 덕수궁 시민분향소가 정부 공식 분향소보다 환대받는 까닭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곳 아니냐, (정부 공식 분향소보다) 훨씬 의미 있다."
양산을 펼쳐든 이강순(55)씨가 "서울역사박물관이나 서울역 말고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가 있나"는 질문에 당연한 걸 묻는다는 얼굴로 답했다. 이씨와 함께 조문 온 황아무개(60)씨는 "사실 지난 주말에 시숙, 남편과 함께 조문을 왔지만 그때 경찰이 너무하더라"고 한 소리 더 덧붙였다.
"일흔 넘긴 우리 시숙이 아파. 그래서 모시고 왔는데 그 늙으신 분이 분향소 가는 길 막고 있는 경찰차를 발로 밀면서 '내가 힘만 있어뿌면 이거 밀어부리겠다'고 하는 거야. 청계천이고 시청광장이고 차로 막아놓고 분향소만 차리면 다인가?"
이명박 정부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는 이도 적지 않았다. 이아무개(34)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정말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했다면 경찰을 통해 이곳을 막거나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또 "진짜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려면 서울역이나 역사박물관이 아닌 이곳에 와 향을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거 첫날부터 분향소 상황실과 함께 논의해 대외협력부분을 챙기고 있는 최헌국 목사(예수살기 서울경기모임)는 이와 관련해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원인을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보고 있다"며 "비록 노 전 대통령이 직접 투신해 목숨을 끊었지만 이 정권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최 목사는 이어 "비록 장례일정 등이 논의 중이었다고 하나 정부가 재빠르게 분향소라든가 애도를 차릴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며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차리고 그곳을 방문한 것을 고인에 대한 진정한 예우라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밥·컵라면·생수 등 쏟아지는 기부... 사흘간 자원봉사자만 600명
덕수궁 앞 분향소는 서거 당일 저녁 종이박스 넉장과 주변 식당에서 빌려온 흰색 천을 이용해 처음 시작됐다. 그러나 서거 나흘째인 오늘(26일), 분향소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이 안치된 분향소 두 동과 상황실 천막 두 동, 노 전 대통령 서거 특집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대형 방송차가 자리 잡았다.
운영도 갈수록 매끄러워지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안내를 받아 분향객들은 지정된 선에 서고 순서에 맞춰 향을 올리고 있다. 1시간 내 약 120명의 분향객이 헌화를 마치고 나온다. 순서를 기다리는 이들은 상황실 팀에서 나눠주는 음료수 등을 마시고 노 전 대통령 서거 특집 다큐멘터리를 감상한다. 또 사흘 간 돌담길 등을 수놓은 시민들의 '추도사'를 휴대전화 카메라 등에 담거나 상황실이 준비한 흰색 천에 자신의 글을 남긴다.
이와 관련해 상황실 상근 봉사자 '하늘까치'는 "운영의 묘랄 게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시민들의 협조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분향소 설치 이후 누적 자원봉사자 수는 약 600명. 이날만 해도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주로 질서유지, 국화 나눠주기, 길 안내, 생수 지원, 대자보 글씨 지원 등 잡다한 일을 보고 있다.
상황실 취재지원을 맡고 있는 언론개혁시민연대 박영선 대외협력국장은 "시간 제한 없이 신청만 하면 원하는 시간에 봉사할 수 있다"며 "주로 오후에 시민들이 자원봉사를 많이 신청한다"고 설명했다.
생수 등 분향소 운영에 필요한 물품도 마찬가지다. 박 국장은 "하루에 생수가 1만 병 이상 나가는데 그 이상으로 쌓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상황실에 들어온 기부 물품만 커피 200박스, 라면 100박스, 양초 100박스 등 상당했다. 지난해 촛불 때 거리로 나왔던 인터넷 카페 '쌍코'는 이날 김밥 1000줄을 기부했다.
"이곳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서로 같은 슬픔을 갖고 국화꽃을 나눈다"
이와 같이 시민들의 힘이 하나씩 모여 진행되는 분향소인 만큼 분향객들은 당장의 기다림과 혼잡함을 신경 쓰지 않았다.
연신 솟는 눈물을 찍어내던 김교란(55)씨는 "기다려도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노유리(20)씨는 "봉하마을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분향소가 여기이지 않나, 그래서 이리 왔다"며 "안산의 민주당 분향소에도 다녀왔지만 여기 덕수궁 앞이 더 추모에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어제(25일)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에 다녀왔다는 이태준(33)씨는 "역사박물관에서는 의전단이 국화꽃을 나눠주는데 너무나 딱딱하고 숨이 막혔다"며 "이곳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서로 같은 슬픔을 갖고 국화꽃과 리본을 나눈다, 그래서 이곳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황아름(22)씨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자신과 가족들이 촛불집회에 함께 참가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다 우리의 무관심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 중 일부는 나약하게 목숨까지 버릴 필요 있었냐고 묻지만, 노 전 대통령은 희생양이었다. 서거 소식을 듣고 나서 <조선일보>부터 끊었다. 가족 전체가 이후 촛불 집회에도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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