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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세코 맞은 편으로 보이는 마닐라 항구. 마을 밖을 나서면 마닐라 시청과도 가까운 이 곳은 도시에 홀로 떠있는 섬 같은 빈민촌 바세코다.
바세코 맞은 편으로 보이는 마닐라 항구. 마을 밖을 나서면 마닐라 시청과도 가까운 이 곳은 도시에 홀로 떠있는 섬 같은 빈민촌 바세코다. ⓒ 고두환

바세코(Baseco), 한국의 몇몇 연예인과 NGO가 봉사활동을 위해 이 곳을 찾았고, MBC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W'는 이 곳의 생계형 장기매매실상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 수도권에서 무허가로 살던 사람들이 해당지역 철거뒤 이주해 살면서 형성된 철거지역이 다름 아닌 바세코다. 마을 바로 옆에는 바다가 그리고 그 옆으로는 마닐라 시청이 위치한 곳, 처음 방문하는 이는 거리 하나를 두고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쌀포대가 얽혀서 지붕을 만들기에 제대로 건물 모양새를 갖춘 집을 찾아보기 힘든 빈민촌, 바세코. 흡사 전쟁 이후 폐허가 된 곳이 이곳인 양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구역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구멍이 숭숭난 옷을 입은 아이들은 뭐가 그리 반가운지, 내가 지나가려하자 되려 손바닥을 마주치고 싶어했다.

바세코는 메트로 마닐라의 몇 안 남은 빈민촌이다. 우리나라의 심장부 서울이 급격한 경제성장 및 개발붐으로 빈민들을 이곳저곳으로 내쫓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메트로 마닐라가 그 일을 되풀이하기에 빈민들은 소리소문 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누구도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 이런 일련의 정책이 어떤 궤를 그릴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여러 역사의 증언들을 보고 우린 예상할 수 있을 뿐이다.

바세코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바세코 주민조직 '카바리캇 - 따갈로그어로 '어깨걸고' 라는 뜻(KABALIKAT)', 한국에서 들어올 예정인 봉사단의 일정을 한국 NGO 아시안 브릿지와 상의하기 위해 그들은 모여있었다. 10명 남짓 모인 인원 중 남성은 2명, 나머지는 여성들이었다. 회의는 자유로웠다. 그들의 행색은 초라하다면 초라했지만, 얼굴에 비교적 여유가 살아있었고 자신들의 의견을 조리있게 말하고 표현했다. 무엇보다 필리핀 심장부에 살아서일까. 그들은 힘 없는 민중치고는 꽤 많은 기관 및 사람들과 연락이 가능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스스로 고민하며 조직하고 있었다.

카부야오(Cabuyao)에 없는 희망, 바세코에서 볼 수 있는 이유는?

카부야오 사우스빌(southville), 한국 공적개발원조(ODA)로 만들어지는 메트로 마닐라 남부통근철도 개선사업 탓에 그 곳에 있던 빈민촌이 철거되고, 그 빈민들이 집단으로 이주된 마을이다. 메트로 마닐라에서 3시간 남짓,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런 변화는 꽤 희망적으로 보일 수 있다. 비교적 깨끗한 집과 도로가 제공되고 매연과 번잡함에서 벗어나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하는게 바로 카부야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세코의 한 가정을 살펴보면 이런 시선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부부가 아이 다섯을 기르고 있는 바세코의 한 가정, 민다나오 섬(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 고향인 부부는 아이 둘은 민다나오에 내버려둔 채, 아이 셋과 함께 바세코에 자리잡고 살고 있다. 이들이 고향을 다녀온 것은 무려 10년이나 됐다.

 민다나오에서 올라와 바세코에 자리잡은 한 가족. 앙상한 어머니와 숭숭 구멍난 티 한 장을 입은 아이지만 이들에겐 일할 수 있는 가장이 있다.
민다나오에서 올라와 바세코에 자리잡은 한 가족. 앙상한 어머니와 숭숭 구멍난 티 한 장을 입은 아이지만 이들에겐 일할 수 있는 가장이 있다. ⓒ 고두환

자제 값이 비싸 쌀포대가 지붕을 대신하고, 방은커녕 조그마한 공간 안에서 식구 다섯이 발을 펴고 제대로 잘 수 있을지 의문인 집, 군데군데 하늘이 보이는 그 곳은 비가 오면 물바다가 된다. 하지만 이들의 남편은 일주일에 적어도 네 번 이상(하루 일당은 우리 돈 2000원에서 3000원 사이)은 일할 수 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 인근에 항구, 그리고 필리핀의 심장부에 위치한 빈민촌이기에 비교적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40% 가까운 실업률을 자랑하는 카부야오, 이마저도 일당에 맞먹는 교통비를 지불하고 메트로 마닐라를 왔다갔다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면 바세코의 상황이 비교적 희망적이라는것은 당신은 느낄 것이다. 전기와 수도는 민영화로 설치를 엄두도 못내는 카부야오, 바세코의 가정 집에는 하늘이 보이는 천장 옆으로 그나마 전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빈민촌도 이주촌도 문제가 아니다. 직업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문제다"

아시안 브릿지의 한 스태프는 그들을 보며 이렇게 읊조렸다.

빈민을 위한 정책 실시될까?

얼마 전, 용산이주 문제로 한국이 시끄러웠다. 그 전에는 난곡이, 또 그 전에는 수많은 곳들이 이주문제로 몸살을 앓은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내 삶의 터전과 직업을 등지고 아무 것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야했던 이들, 우리의 관심밖에 있는 그들이지만 그 때 그 나라의 정책이 나에게 칼부리를 겨누었다면 몸부림을 치다가 이내 당했어야만 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지금의 필리핀이 그렇다. 빈민들을 이주시키고 그만큼의 이주비용을 융자하고 나름대로의 보상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인프라라고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그곳에 가서 어떤 직업으로 어떻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필리핀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는 이유는 못 먹고 산다기보다는, 아이들을 교육시키거나 삶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문제가 많다 하더라도 바세코는 카부야오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다."

아시안 브릿지 한 스태프의 말, 빈민촌이 정리되고 그들이 이주하고 재개발이 되어 도시가 들어선다면 이 정책은 누구를 위해 실시되는 것일까?

현재 메트로 마닐라의 몇 안되는 빈민촌들이 카부야오와 같은 형태의 운명을 맞는다면, 대다수 이들은 직업을 잃거나 하루 수입에 맞먹는 교통비를 지불하며 위험천만한 출퇴근 레이스를 필리핀 정부를 향해 시작할 것이다.

 바세코의 모습, 그냥 봐도 어지러운 모습이지만 여기저기서 공사중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필리피노 친구 중 한 명은 자제 값이 비싼 필리핀에서 공사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사람사는 동네라고 일컬을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바세코의 모습, 그냥 봐도 어지러운 모습이지만 여기저기서 공사중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필리피노 친구 중 한 명은 자제 값이 비싼 필리핀에서 공사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사람사는 동네라고 일컬을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 고두환

어찌보면 어이없는 비교, 하지만 메트로 마닐라의 빈민촌은 주변 이주촌보다 어떤 의미에서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다. 우리 모두 겉만보고 판단할 수 없는 일들이 정책 속에선 수없이 호도되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의 일정은 필리핀 주재 한국 NGO 아시안브릿지의 활동에 동행한 것입니다.



#필리핀 빈민촌#바세코#카부야오#빈민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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