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전해진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게 이뤄지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진보성향의 매체들조차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추진되기 어려웠던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정당하다.
여기서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들을 공정하게 평가해 세인들의 오해를 바로잡는 것이 좋겠다.
노무현이 부동산 정책부문에서 이룬 빛나는 업적들
참여정부 이전의 정부들은 부동산 문제에 대한 철학이라고 할 것이 딱히 없었다. 역대정부들이 사용한 정책이라고 해 봐야 경기침체기에 부동산을 경기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투기가 창궐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 양도세 강화 등의 규제를 통해 부동산 가격상승을 억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전형적인 냉·온탕식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 문제는 한국사회의 고질병이 되었고 부동산 불패신화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뇌리에 신앙처럼 각인됐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노무현만큼 부동산 문제가 한국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분투한 대통령은 없었다. 도대체 왜 노무현은 그토록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매진했을까? 그가 꿈꾸었던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최대의 걸림돌이 한국사회에서는 바로 부동산-더 정확히는 토지-문제였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한국사회 주류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물적 기반이었다. 이들은 부동산의 소유 및 처분을 통해 얻는 불로소득을 가지고 끊임없이 부유해졌을 뿐 아니라 자녀들의 사교육 전쟁에서도 언제나 압도적인 우위에 설 수 있었다.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의 사적인 전유야 말로 한국사회 주류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특권과 반칙'을 가능하게 했던 화수분이었던 것이다.
기실 부동산 문제만큼 복잡하고 해결이 어려운 문제도 많지 않다. 부동산 문제의 해결은 정책 한 두 개를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문제는 거래투명화, 보유세 등의 세제, 개발이익 환수, 미시적 금융대책, 토지임대부 건물분양 등의 공급정책, 주거복지 등의 정책수단들이 조화롭고 적절하게 어우러져야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참여정부가 부동산 문제의 해결 혹은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해 추진했던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 제고, 종부세로 대표되는 부동산 세제 정상화, 개발이익 환수장치의 정비, 서민용 장기임대주택의 공급 확대 추진, LTV 및 DTI로 상징되는 주택담보대출 관리 등의 정책들은 부동산 문제의 맥을 정확히 짚은 정책들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에야 비로소 대한민국은 올바른 철학의 바탕 위에 제대로 된 부동산 정책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저런 정책적, 정치적 실수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부동산 부문에서 이룬 참여정부의 업적은 청사에 길이 빛날 만큼 값지다. 종부세의 도입을 위시해 참여정부가 채택하고 집행한 많은 부동산 정책들이 노 전 대통령의 신념과 추진력이 없었다면 시행되기도 전에 사라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노 전 대통령이 상찬 받아 마땅한 이유이다.
세금폭탄이라는 이름의 주술에 걸리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부동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국민의 정부 시절 풀려난 부동산 투기라는 괴물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결정판이라 할 8·31부동산 대책에도 죽지 않고 대한민국을 배회했다. 버블세븐 위주의 국지적 가격상승은 종부세의 효과가 서서히 가시화되고 주택담보대출 관리를 한층 적극적으로 하면서 꺾였고, 투기심리도 급속도로 진정됐다. 대한민국을 배회하던 투기라는 이름의 괴물을 우리 안에 가두는데 성공한 것이다.
대가는 가혹했다. 조중동 등의 과점신문들은 입만 열면 종부세를 세금폭탄이며 반시장적 정책이라고 매도했고, 종부세 등을 도입해 자신들의 물적 기반을 흔든 노무현에 대한 한국사회 주류의 증오와 저주의 감정은 날로 깊어만 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입장에서 더욱 타격이 컸던 것은 부동산 가격상승을 견디지 못한 중산층과 서민들이 등을 돌렸다는 사실이었다. 중산층과 서민들을 위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불러도 좋은 노무현에게 그런 현실은 아마도 감내하기 힘들 만큼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임기 말인 2007년 들어서야 부동산 시장이 안정을 찾았지만, 그때는 이미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조중동의 평가가 국민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진 후였다.
대한민국은 노무현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역설적이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에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선제적 부동산 정책조합이 주효해 부동산 버블이 더 커지지 않았고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 세계적 부동산 버블 붕괴사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이다. 결국 대한민국은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갚기 힘들 만큼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기틀을 마련한 부동산 정책들이 ABR(Anything But Roh)을 모토로 내건 MB정부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상징이라 할 종부세는 MB정부와 한나라당, 조중동, 헌법재판소의 협업에 의해 말 그대로 형해화됐다. 양도세도, 개발이익환수장치도, 재건축 관련 시장정상화 조치들도, 주택담보대출관리도, 분양가 상한제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피투성이 싸움 끝에 만든 부동산 정책들이 속절없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는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이 얼마나 참혹했을 것인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MB정부는 단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전면적으로 훼손한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의 기틀을 송두리째 파괴한 것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강부자들만을 위한 투기공화국 건설에 집중하고 있는 MB정부 에게 상상하기 힘든 위력을 가진 부동산 버블 붕괴의 폭풍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 물론 MB가 이를 알 리가 없다.
대한민국을 파국으로 몰고 가고 있는 MB정부의 폭주를 저지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꿈꾸었던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할 책임이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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