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노무현 전 대통령'각하'께 드리는 편지
대통령각하 안녕하세요. 그 곳은 평안하신지요?
'각하'라는 호칭을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실 줄 알지만 그래도 오늘 한번 만큼은 불러보고 싶습니다. 이런 방법으로나마 표현하고 싶은 제 마음을 헤아려 주세요. 당신은 제 마음속의 영원한 대통령이니까요.
제가 당신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2002년 제 16대 대통령 선거일이었습니다. 당일 저녁 11시 정도에 뉴스속보로 제 16대 대통령 당선자로 노무현 확정! 이라는 기사를 보고 공중파 채널을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께서 환호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때에는 그저 '아 저 사람이 다음 대의 대통령인가 보네'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 뒤 공중파에서 서로 경쟁하듯 방영해준 노무현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저 생각은 노무현에 대한 관심으로 변했습니다. 정확히는 그의 성장 과정이 감명이 깊었습니다. 가난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을 진학할 학비가 없어서 부산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례적으로 4수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저 그런 평범한 다른 사람들의 성공이야기가 되겠지만, 그 다음 당신의 행적을 보고 저는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들처럼 변호사가 된 뒤 예정된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지만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약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대변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적어도 그때까지 제가 알던 정치인들은 그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제 우리나라도 뭔가 바뀔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2004년 화창한 3월 봄날에 전해진 청천벽력 같은 뉴스는 제 희망을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소식은 당시에 고등학교 1학년이던 저를 사회로 이끌었습니다. 저는 친한 형과 동생을 데리고 전남도청 앞의 촛불집회에 가서 맨 앞자리에 앉아 촛불을 들었습니다. 저녁시간에 찬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서 촛불의 온기로 꽁꽁 언 손을 녹이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따뜻한 곳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습니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로 사람들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많이 모였던 적이 있었을까요. 저는 국민의 힘으로 탄핵당한 대통령을 제 위치에 돌려놓고 나서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란 게 마음먹은 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매번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대통령 각하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결국 퇴임 후에 조용히 살고 싶다는 개인의 소망마저 이루지 못하고 정치보복의 희생양이 된 모습에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슬퍼서 나오는 한 방울, 안타까움에 나오는 한 방울, 분노에서 나오는 한 방울… 마지막으로 당신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의 한 방울이 제 눈에서 작은 폭포가 되어 흐릅니다.' 소중한 것은 항상 잃어버린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런 말을 늘 하곤 합니다. 그러나 진짜로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말의 진정한 뜻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비록 하시고 싶으신 뜻과 소망을 마음껏 펼쳐보지 못하고 가셨지만 그 몫은 우리들에게 남겨주세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짐을 혼자 짊어지고 가셨던 만큼 이제는 우리가 그 짐을 나눠 들어드리겠습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지난 16대 대통령에 출마하실 때 하셨던 말씀 기억하고 계신지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전두환이 5공화국 때 내놓았던 정의로운 사회가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하셨던 그 말씀과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던 말씀을 제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겠습니다.
언젠가 그곳에서 대통령 각하와 막걸리 한 사발 할 그날을 기다리면서
2009년 5월 27일 이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