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일째인 28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권양숙 여사가 헌화를 한 뒤 조문객과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6일째인 28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권양숙 여사가 헌화를 한 뒤 조문객과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대한민국은 비탄에 잠겨있다. 우린 왜 노무현의 죽음에 슬퍼하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를 눈앞에 앞두고 이 생뚱맞은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있다. 지금 대다수 국민들이 느끼는 슬픔과 분노의 원인을 차분히 짚어보는 게 한국사회가 처한 상황을 진단하는 데 더 없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실 먼저 분명히 하자. 구체적 목적이 어떠했든,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의 비리수사가 현 정부의 국정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치적 동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여당 일각에서도 인정하는 바다.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하는 세력이 있어서 이걸 변질시켰고 또 소요사태가 일어나거나 이렇게 되는 것은 정말 걱정입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 27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으로 소요사태가 우려된다고 발언해 논란을 불러왔다.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하는 세력이 있어서 이걸 변질시켰고 또 소요사태가 일어나거나 이렇게 되는 것은 정말 걱정입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 27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으로 소요사태가 우려된다고 발언해 논란을 불러왔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현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정치적 사정 정국이 유발한 죽음을 정치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하는 것만큼 정치적인 요구도 없다. 세무조사만 시작해도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비난하던 것이 야당시절의 한나라당과 이들을 지지하던 보수언론 아니었던가.

고통스런 죽음과 탄식 앞에서 '경제에 영향 없길 바란다'고 말하는 재계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한 사회의 '주류'를 자칭하는 집단이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기껏 금전적, 정략적 이해득실이나 따지고 있는 현실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 괴물로 전락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정치도 하고 경제활동도 하는 거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바람이 드러내 주듯, 이제 이 사회에서 사람은 돈과 정치권력의 수단(혹은 방해물)으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다.

이것이 정확히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이유며, 국민들을 슬픔과 분노 속에서 절규하도록 만든 이유다 .

국민들의 눈물 속에 깃든 것 : 좌절, 반성, 배신감

지금 국민들의 뺨을 적시는 눈물 속에는 한 애달픈 죽음에 대한 애도뿐 아니라 좌절과 반성, 그리고 배신감이 녹아 있다. 지금 비탄에 잠긴 사람들 가운데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던 다수의 국민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

국민들의 좌절 속에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뿐 아니라,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권력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언론과 수사기관의 존재목적은 권력을 견제함으로써 사회의 약자를 보호하고, 불의에 맞서 사회정의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권력과 한 몸이 되어 도리어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가 되었다. 검찰은 보수정치권의 필요에 따라 수사를 시작하고 그 내용을 언론에 흘렸으며, 경찰은 노전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국민들을 정치적 이유로 막고 분향소를 철거했다.

비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만이 아니었다. 장자연이라는 한 나약한 여인의 죽음 앞과 뒤에서 경찰과 언론이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보라. 경찰은 고발 조치된 언론사의 사주마저 미적대며 조사하지 않다가, 수사결과 발표 하루 전에야 비밀리에 조사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당사자의 신원을 감추는 데 있는 듯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까지 시시콜콜 모두 기사화했던 보수언론들은 장자연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맞춘 듯 함구로 일관했다. <조선일보>는 사주의 이름을 밝혔다는 이유로 국회의원 두 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법과 언론이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이를 위한 노력에 재갈을 물리고 도리어 혐의자를 보호하는 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이들은 한 약자의 죽음을 은폐하는 데 머물지 않고 죽음으로 몰고 가는 지경에 이른다.

장자연이 자신의 고통을 글로 남기고 목숨을 끊었을 때, 많은 이들이 슬퍼하면서도 '왜 살아서 자신의 처지를 밝히지 못했는지'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왜 살아서 맞서지 못했느냐고 묻기에는 가해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한국사회가 너무나 잔인하고 야만스럽다. 그녀가 살아서 자신이 당한 일을 있는 그대로 밝혔다면 과연 '사필귀정'의 정의가 실현되고, 그녀는 무사히 원하는 일을 하면서 순탄히 살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정의고,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누가 더 큰 힘을 갖고 있는가이다. 가난하게 태어나고, 좋은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기득권층의 기호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그가 누구라도 무시와 조롱, 그리고 핍박을 면할 수 없게 된다.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이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이름 석 자로 부르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검사들이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지금의 '주류' 대통령에게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7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민생민주국민회의, 민노당, 민주당, 진보신당이 주최한 '<장자연 리스트>의 진실과 조선일보 - 안하무인 <조선일보 권력>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7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민생민주국민회의, 민노당, 민주당, 진보신당이 주최한 '<장자연 리스트>의 진실과 조선일보 - 안하무인 <조선일보 권력>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비주류 노무현과 장자연 vs. 대한민국 주류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시절 대단히 인기 없는 지도자였다. 국민들이 보기에 부족하고 아쉬운 면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나, 언론과 보수정치세력이 주장한 만큼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국가보안상 불안'하며, '지도자의 품위를 갖추지 못한' 한심한 대통령은 아니었다. 물론 당시에는 이들의 부정적 평가에 영향을 받았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 이명박 대통령이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정치권이 '유능'하고, '안정'적이며, '품위'있다고 치켜세웠던 대통령을 1년 반 동안 지켜본 국민들은 이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이것이 국민들로 하여금 영정 앞에서 '죄송했다'고 말하게 만드는 이유이며, 현 정부와 언론을 향해서는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다. 현 정부와 보수언론이 여론을 호도함으로써 이성적 판단과 선택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깨닫게 되었다.

1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경제상황은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동시에 고조된 남북대치상황은 현 정권의 무능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망한다고,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언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의 경제위기'를 말한다는 이유로 외신을 공격하고, 모내기를 하고 막걸리를 마시는 '서민적 모습'을 열심히 홍보했으며, '관영방송'이 된 KBS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일 이명박 대통령 부부가 출연할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정부와 달리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같은 별칭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현 정권이 출범한 후 가장 많이 목격한 것으로 이름을 붙인다면 '죽음의 정권' 정도가 될 것 같다. 수많은 학생들이 경쟁에 내몰려 꿈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하고 있으며, 생존권을 요구하던 철거민은 공권력의 무자비한 진압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정부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행사 장소로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 가운데 27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모인 일부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영정과 '근조 민주주의' 관을 앞세우고 거리로 뛰쳐나가려 하자 경찰이 막고 있다.
 정부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행사 장소로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 가운데 27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모인 일부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영정과 '근조 민주주의' 관을 앞세우고 거리로 뛰쳐나가려 하자 경찰이 막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시청앞 광장
 시청앞 광장
ⓒ 서울시청

관련사진보기


학생들은 등록금으로, 사회에 나온 젊은이들은 비정규직과 실직 속에서 절규하며 삶의 의욕을 잃고 있지만, 현 정부와 대통령은 오히려 '노동성 유연화의 적기'라며 이들을 더 큰 절망 속에 몰아넣고 있다. 서민들의 죽음에 대해 정부가 생각해 낸 사실상 유일한 대책은 '자살 사이트 규제'였다.

이것이 한국에서 실낱같은 희망 하나로 살아가는 서민들을 좌절케 하는 이유다. 한국사회를 보며 희망을 갖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절망적인 사회는 나머지 사람들이 살아남아 싸워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최근호에서 매코맥 교수의 말을 인용해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은 저항시위에 다시금 생명력을 불어넣는 공로를 세웠다"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의 실정이 미국에서 첫 흑인 대통령과 정치 및 경제개혁의 동기가 되었듯, 오늘의 슬픔은 내일의 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쉽게 잊지는 말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쉽게 잊는다면, 그 죽음이 가해자의 죄를 덮는 은폐물이 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태그:#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장자연, #추모행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1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