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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러 모인 시민들이 종이학을 나무에 붙이고 있다.
28일 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러 모인 시민들이 종이학을 나무에 붙이고 있다. ⓒ 전관석

아직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과 눈을 안 맞추신 누리꾼들 계신가요? 지금 인터넷을 보면서 "조문할 수 있는 마지막날인데 갈까 말까"를 고민하시는 누리꾼들 계십니까? 그렇다면 어서 길을 나서세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을 약 12시간 정도 남긴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지금도 계속해서 추모객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28일 밤 11시 30분 현재 추모의 촛불행렬은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교회 앞을 지나, 경향신문사를 끼고 돌아 신문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2시간 정도는 기다릴 각오를 하고 오셔야겠지요. 하지만 지금 이 곳에서 연출되고 있는 장엄하고 엄숙한 민주주의를 느끼신다면 그깟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청역으로 오세요, 그래야 진짜를 경험할 수 있어요

 

혹시 "경향신문 앞이라면 지하철 서대문역에 내리거나 신문로쪽으로 가야겠군"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안 됩니다. 시청역으로 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추모의 길' '민주주의의 길'을 올곧이 걸으실 수 있답니다.

 

시청역 1번 출구 혹은 12번 출구를 추천합니다.

 

지하철역 안에서부터 추모의 물결입니다. 이곳저곳에 시민들이 직접 제작한 대자보와 작은 쪽지들이 가득 붙어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문구들이 가장 먼저 여러분을 안내할 것입니다. 이 곳에서부터 눈이 벌개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오시면 추모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선 '시민 자원봉사단'들의 목소리가 들리실 겁니다. "추모하기 위해 줄을 서실 분들은 왼쪽 정동길로 올라가 주세요"라고 소리치는 직장인 자원봉사단들의 목소리는 이미 쉬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없다면 1번 출구앞 인도는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28일 밤, 여고생 자원봉사자들이 교복을 입은채 덕수궁 대한문 근처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28일 밤, 여고생 자원봉사자들이 교복을 입은채 덕수궁 대한문 근처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 전관석

 

 시청역 곳곳에 붙여있는 시민 손수 제작 대자보. 고인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시청역 곳곳에 붙여있는 시민 손수 제작 대자보. 고인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 전관석

고등학생들은 목장갑을 끼고 쓰레기를 치우고 있습니다. 여학생들이 많습니다. 녹색 교복, 회색 교복, 남색 교복... 각 학교에서 나온 친구들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쓰레기를 줍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어른들의 격려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른들이 선거 잘못해서 니들이 고생이 많다~~"라는 애교섞인 격려의 목소리를 전한 분도 있었습니다.

 

자원봉사단의 안내에 따라 우선 정동길로 접어드십니다. 그 곳에서 또 다른 고등학생들이 양초를 나누어 줍니다. 시민 자원봉사자들은 검은 리본을 나눠주고 여러 유인물들도 여러분의 손에 쥐어질 것입니다.

 

자 이제 본격적인 추모의 길로 들어서셨습니다. 촛불을 밝히고 계속 정동길로 올라가십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 곳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앉아 고인의 평소 모습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손수건으로 혹은 맨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추모객들이 많습니다. 펑펑 우는 친구의 어깨를 감싸고 위로해 주는 모습, 여기저기서 볼 수 있습니다. 영상이 길지 않습니다. 끝까지 보고 움직이셔도 충분합니다.

 

자원봉사자들로 넘쳐나는 덕수궁길... 이제 그분을 만납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28일 저녁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 모인 용산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시국토론을 듣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28일 저녁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 모인 용산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시국토론을 듣고 있다. ⓒ 남소연

조금만 더 올라가면 곡소리가 서글피 들립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함께 추모하는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대형 현수막이 눈에 띕니다. 바로 옆에서는 시민들의 즉석 연설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노무현은 5월 23일날 죽었지만 이땅 99%는 바로 그날 다시 태어났습니다. 우리 그 날은 잊지 맙시다. 우리가 모두 노무현입니다"라고 울먹이며 소리치는 한 시민의 연설에 사람들은 또 눈물을 찍어냅니다.

 

여기서부터 서울시립박물관까지 길에서는 '종이학 접기 공예'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쓰고 싶은 말은 적어 종이학으로 접습니다. 다들 맨 바닥에 털퍼덕 앉아서 학을 접습니다. 이를 나무에 걸거나 나무 주위에 모아둡니다. 서울 송파에 사는 임현영(39)씨처럼 종이학을 접으면서도 우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종이학 접는 법을 모르신다고요? 대부분 모르시더군요.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는 분들이 많으니 걱정마십시오.

 

이제 정동교회 앞으로 가십니다. 이곳에는 촛불을 길게 이어놨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쉴새없이 물을 날라 나눠주고 있습니다. 본인들도 한잔씩 마셨으면 좋겠는데, 주기에만 바쁩니다. 지난해 6월에 흔히 보던 풍경이지요. 자 이쯤 올라오시면 추모객 수가 많음에 놀라고, 이들이 흐트러짐 없이 질서정연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놀라실 겁니다. 건널목 사이에는 늘 줄이 끊겨 있습니다. 차량 통행에 큰 방해를 주지 않겠다는 배려지요. 이화여고를 따라 올라가셔서 경향신문을 꺾어 도십니다. 그러면 자원봉사자가 "여기가 마지막 줄입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어요. 그 곳에 줄을 서시면 됩니다. 경찰이 배치되어 있지만 위압적이지는 않습니다.

 

힘드실 것 같다고요? 임신 7개월이신 박경영(32)씨도 남편 손을 붙들고 밤 10시 30분쯤 이곳 도착했습니다. 엄마를 모시고 온 고등학생 김현구군은 시청역 1번 출구를 잘 못 찾는 아빠의 핸드폰에 대고 "빨리 오라"고 채근합니다. 강창현(44)씨는 세 아이를 데리고 시청역 1번 출구로 나와 위 코스를 따라 민주주의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대한문 앞 '그분'을 볼때까지는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덕수궁 돌담길까지만 오시면 그때부터는 담벼락에 붙어있는 각종 시민들의 알림물을 읽으면서 차례차례 앞으로 가시면 됩니다. 금세 차례가 돌아옵니다.

 

대한문 앞에 국화를 들고 섭니다. 멀리 영정이 보입니다. 점점 영정이 가까와 옵니다. 아팠던 다리 관절과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눈의 근육만 풀리실 겁니다. 절 두 번 반을 하면서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십시오. 이윽고 국화를 제단에 놓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눈을 마주치면 얘기나눌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주어집니다. 이 과정을 밟으시고 내일을 기약하며 돌아서는 당신, "정말 잘 왔다"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바로 여러분의 이웃 수만명이 덕수궁 앞 대한문에 와 있습니다.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일 보내줘야 하는 한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그 곳에서 조금씩 다시 살아나고 있는 민주주의 씨앗에 물을 주기 위해서 손에 손을 잡고 이 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오늘을 넘기시렵니까?


#고?노무현?전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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