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 봉하마을 현장]취재 : 윤성효 김도균 박상규 기자사진 : 유성호 기자
[최종신 : 30일 새벽 2시 10분]노 전 대통령 유골, 정토원에 임시 안치... 49재 때 '작은 비석' 세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가 되어 영원히 귀향했다. 전날 서울 영결식·노제에 이어 수원에서 화장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30일 새벽 1시 30분경 김해 봉하마을 뒷산 정토원에 도착했다.
아들 노건호씨가 유골함을 들었으며, 사위가 위패를 들었다. 유골함은 정토원 수광전에 임시 안치되었다. 곧바로 불교의식으로 안치제가 진행되었다. 권양숙 여사는 10여 분 뒤 부축을 받으며 법당 안으로 들어섰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도착하기 전 1000여 명의 시민들이 정토원 주변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촛불을 들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정토원에는 촛불로 "편안히 가십시오"라는 글자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또 시민들은 차량이 도착하기 전 '사랑으로'와 '상록수',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안치식과 함께 49재의 초재가 1시간가량 진행되고 있다.
서울에서 열린 영결식에 참석했거나 봉하마을에서 1km가량 떨어져 있는 삼거리 어귀까지 마중 나갔던 조문객들은 곧바로 마을 주차장에 있는 분향소에 들러 큰절을 하는 등 분향하고 있다.
조문객들은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천막식당 등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일부 조문객은 분향소 주변에서 흐느끼며 울기도 했다. 서갑원 의원과 노혜경 시인 등 참여정부 참모진들은 분향소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은 정토원 수광전에서 49재까지 임시 안치된다. 유가족은 봉하마을 안에 장지를 정해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조성한다. 또 49재 때 봉하마을에 '작은 비석'을 세울 예정이다. 봉하마을 회관과 노사모 자원봉사 지원센터 건물 안에는 임시추모시설과 분향소가 소박하게 만들어진다.
[6신 : 30일 새벽 1시 35분] 한 줌 재로 변한 노무현, 다시 봉하마을 귀향 한 줌의 재로 변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귀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함을 태운 운구행렬은 30일 새벽 1시 15분경 김해 봉하마을 주차장에서 1km가량 떨어져 있는 삼거리를 지나갔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을 실은 차량은 조문객들이 도로에 뿌려 놓은 국화꽃잎을 밟고 갔다. 조문객들은 봉하마을 분향소에 있다가 운구행렬을 맞이하기 위해 이곳에 나와 1시간가량 기다렸다.
수천 명의 조문객들은 한 손에는 국화꽃, 다른 손에는 촛불을 들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을 실은 차량이 보이자 조문객들은 일제히 "노무현이다"를 외쳤다. 차량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차량이 지나가기 5분여 전부터 조문객들은 하얀 국화꽃잎을 따서 도로에 뿌렸다. 김소월 시인이 시 <진달래꽃>에서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 읊었던 것처럼 말이다. 한 달 전인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에 출두할 때 시민들은 버스 앞에 붉은색 장미꽃잎을 뿌렸던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은 봉화마을 뒷산에 있는 정토원에 도착했다. 유골함은 불교의식에 따라 정토원 법당에 임시 안치된다.
[5신 : 30일 새벽 0시 5분] 무박 2일 만에 재로 돌아오는 노 전 대통령... 정토원에 0시 30분 도착 예정
29일 밤 9시경 수원 연화장을 출발한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을 태운 운구행렬은 30일 새벽 0시 30분경 봉하마을 뒷산 정토원에 도착할 예정이다. 무박 2일만이다.
29일 밤 8시경 분향소 옆에서 시작된 진도씻김굿 공연은 11시 35분경 끝났다. 자정이 가까웠지만 조문객 수천 명이 봉하마을로 몰려들었다. 조문객들은 수십 명씩 한꺼번에 국화꽃을 놓고 묵념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은 자정을 기해 공식 분향을 종료하고, 자유 분향으로 전환했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마을회관 확성기에서는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이 흘러나왔다. 조문객들은 대형 초상화를 앞세우고 노 전 대통령을 마중나갔다. 이들은 마을에서 1km가량 떨어져 있는 마을 어귀까지 국화꽃과 촛불을 들고 거리행진을 벌였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이 임시 안치될 정토원에는 수백 명이 모여 있다. 정토원 계단과 마당에는 촛불이 밝혀져 있다. 정토원 입구에서는 경찰이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4신 : 29일 밤 10시] 노 전 대통령 맞이 3300개 촛불로 밝힌 "편안히 가십시오""노짱님 사랑해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편안히 가십시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귀향해 살던 사저와 목숨을 끊은 봉화산 부엉이바위 앞에 촛불이 밝혀졌다. 시민들은 29일 저녁 유골로 변해 오는 노 전 대통령을 촛불로 맞고 있다.
촛불은 모두 3300여 개다. 3000여 개는 사저와 부엉이바위 앞에, 300여 개는 정토원 마당에 놓였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이 임시 안치될 정토원 앞에는 촛불로 "편안히 가십시오"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이날 새벽 발인제를 시작으로 김해 봉하마을을 떠나 서울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종일 조문객이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오더니, 저녁이 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조문객들은 분향한 뒤 사저와 부엉이바위 앞에 들르기도 한다. 시민들은 3300여 개의 촛불을 글자 모양으로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밤 9시 50분경 100여 명이 한꺼번에 불을 붙였다.
대구에서 왔다는 주혜정(25)씨는 "촛불을 보니 더 그립고 생각이 난다"면서 "친구들과 그냥 오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양초에 불을 붙이던 한 여성은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퇴근한 뒤 바로 왔다고 한 남성은 "슬프다"면서 "지금 이 나라가 더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봉하마을 분향소 옆에는 이날 저녁 8시부터 '진도씻김굿'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판소리 명창 박애리씨는 "심청이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환생하기를 바란다"면서 <심청가>의 한 대목을 부르기도 했다.
[3신 : 29일 밤 8시]장례식 끝났지만 조문은 계속...다시 조문객 몰리는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 이후에도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장례식 날인 오늘 오후에는 퇴근 후 조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8시 이후부터는 한번에 30여 명씩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분향소에는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은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정영두 민주당 김해 갑 위원장이 상주로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명계남 씨도 봉하마을에 남아있다.
저녁 8시쯤 조문을 한 J여고 여학생 4명은 "오늘 학교에서 노 전 대통령 영결식을 생중계로 보았다. 이곳이 역사적 현장이기 때문에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직접 와서 조문했어야 하는데, 계란 맞을까봐 오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인터넷에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여러 가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이 빨리 해소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분향소 오른쪽 가설무대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넋을 위로하는 '진도 씻김굿'이 공연됐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온 씻김굿 예능보유자 박병원씨를 비롯한 23명의 출연자들은 장구와 피리, 해금 등의 연주에 맞춰 구슬픈 목소리로 망자의 한을 달랬다. 소리를 한 송순단씨는 "지난 5월 23일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홀로 외롭게 산화한 노 전 대통령의 넋을 위로하고 극랑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았다"고 밝혔다.
[2신 : 29일 오후 6시 40분] 유골함 맞이 한창인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대형 그림에 국화꽃 장식 중
봉하마을에서는 '한 줌의 재'로 돌아올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맡이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분향소 뒤편 공터에서는 7, 8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200호 (259.1cm × 193.9cm) 크기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림을 국화꽃으로 장식하고 있다.
그림을 그린 임영선(여, 40) 화백은 "서거 소식을 듣고 대작을 그리고 싶었는데, 시간이 촉박해 3일 만에 완성했다"며 "생전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던 노 전 대통령을 생각해서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들을 같이 그려 넣고 싶었는데 시간이 촉박해 그러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임 화백은 "그림은 노무현 대통령의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참고 했다"고 밝혔다.
오후 8시에는 국민장의 마지막 추모 행사로 '진도씻김굿'이 분향소 앞에서 공연돨 예정이다. 진도 씻김굿은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풀고 극락왕생 하도록 기원하는 굿을 말한다. 진도 씻김굿 보존회 박병원 회장은 "이번 공연을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 전대통령의 유골함이 임시 안장될 정토원도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유골함이 정토원에 도착하면 죽은 사람의 혼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반혼제'가 거행된다. 반혼제를 올린 유골함은 법당 수광전으로 옮겨진 후, 유족이 부처님 앞에 예를 올리는 '개문제'를 올리고 나서 위패를 모시는 연단에 안치될 예정이다. 유골함이 연단에 안치되면 유족들은 49재의 첫제사인 '초재'를 올리게 된다.
당초 9시경 정토원에 도착할 예정이던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은 서울에서의 일정이 늦어진 관계로 오후 11시를 전후해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1신 : 29일 낮 12시 5분]대통령 떠나 보낸 주민들 "가슴이 텅빈 것 같아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네요. 가슴이 텅빈 것 같아서…."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봉하 마을을 떠난 29일 오전 10시, 천막 식당이 차려졌던 봉하 마을 주차장을 청소하던 안연구(53·경남 거제)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생업을 포기하고 4일 전부터 분향소 자원봉사를 했던 안씨는 그동안 "닥치는대로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주차 정리부터 조문객 접대, 청소에서 각종 장례용품 운반까지 안씨는 하루 2, 3시간 새우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줄곧 분향소 주변을 지켰다.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 떠나는 길, 그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처럼 굵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일주일간 전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조문객들에게 국밥을 대접했던 천막 식당이 철거된 분향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재를 확인시키듯 더욱 휑하게 보였다. 그러나 분향소에는 수가 줄기는 했지만 뒤늦은 조문을 하는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오전 10시 30분 분향소를 찾은 이원재(75), 이상호(48)씨 부자는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 이씨 때문에 발인 전에 오지 못했다며 경주에서 택시를 대절해 왔다고 했다. "아이고, 노 대통령님, 부디 마음 고생 없는 곳으로 가세요"라며 분향소 기둥을 붙잡고 10여 분 동안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던 40대 여성은 차마 발길이 떼이지 않는 듯 노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을 자꾸만 뒤돌아 보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안타깝습니다. 나라의 큰 어른이셨는데…." 발목까지 오는 군화를 풀고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 앞에 큰절을 올린 김해소방서 박정미 예방교육계장 (소방경·여·47)은 "지난 1주일 동안 매일 10명씩의 소방공무원과 30명의 의용소방대원들이 봉하 마을에서 비상근무를 했다"고 밝혔다.
조문객들이 몰려드는 데다가 근무지를 벗어날 수도 없어 박 계장은 뒤늦은 조문을 했다고 말했다. 박 계장은 "그 기간 동안 김해소방서는 모든 훈련과 교육, 봉사활동을 중지하고 봉하 마을 지원에 전력했다"며 "삼우제가 끝나는 31일까지 봉하 마을에서 근무할 것"이라고 했다.
오전 11시 마을 회관 건너편 풀밭에는 주민 6~7명이 그동안 발 디딜틈 없이 붐볐던 주차장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작년 2월 귀향해서 "야, 좋다"를 연발하던 노 전대통령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던 것도, 검찰 수사로 언론의 취재 경쟁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노 전 대통령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도, 이들 주민들이었다. 국민장 기간 동안 봉하 마을 주민들은 너나없이 조문객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정작 자신들의 끼니는 거르기 일쑤였다.
"고인의 약력을 보고하겠습니다." 라디오로 중계되는 국민장 실황을 들으며 주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부재를 이제야 실감하는 듯, 하나 둘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찍어냈다. 주민 김 아무개씨는 "대통령님은 봉하 마을의 희망이고 나라의 큰 별이셨다. 부디 훌훌 털고 좋은 세상으로 가셨으면…"이라며 굵은 눈물을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