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눈물을 훔치는 데는 남녀의 구분도, 지역적 경계도, 정치적 입장 차이도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9일 오전 11시(한국시각)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가운데, 같은 시각 태평양 건너 LA에 있는 한인들도 합동 분향제를 열고 영상으로 국민장 영결식을 시청하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 남가주 추모 위원회'가 마련한 이번 합동 분향제는 28일 저녁 7시 LA 한인 타운에 마련된 남가주 분향소에서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영결식을 시청하며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멀리서나마 행사에 참여했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내내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이어졌고, 한명숙 전 총리가 소사를 낭독하며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고 울먹일 땐 일부 참석자들은 흐느끼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 낭독 이후, <상록수>를 부를 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합창하며 고인을 기렸다.
이날 행사장에는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노인에서부터 '대통령 할아버지가 날아서 하늘나라로 갔느냐'고 물어보는 어린이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석했다. 정치적 입장 차이도 애도의 마음을 꺾지 못했다.
올해로 일흔 살인 이철규씨는 정치적인 견해는 노무현 대통령과 다르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행사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행사 내내 눈물을 흘린 이연주씨는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 입장을 떠나 좋으신 분이었다"며, "언론의 왜곡된 보도에 놀아난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지역적 경계도 없었다. 이번 합동 분향제에는 재미부산경남향우회(회장 박평식)도 함께 참여했다. 박평식 회장은 "개인적으로 386세대도, 진보주의자도 아니고, 노무현 대통령을 평소에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정치적 신념 따지고 이념적 색깔 따지다가 고인을 욕되게 할 순 없지 않냐"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어 검찰의 수사와 언론의 보도, 현 정권의 태도에도 불만을 토로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고향으로 내려가 아름답게 살려고 하는데, 언론이 별소리를 다 떠들어대고, 검찰은 계속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노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부터 저건 아닌데 하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합동 분향제에 참여한 호남향우회 에드워드 구 회장은 "노무현 대통령도 호남 사람들로부터 김대중 대통령 못잖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고인이 생전에 염원하던 지역주의 타파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참석자들이 남긴 추모의 글들이 행사장 한쪽 벽면을 가득 메웠다. 어떤 2세 한인 청년은 서투른 글씨로 "슬픈 일입니다"고 썼다. "당신은 거꾸로 가는 역사의 바퀴를 온몸으로 막으셨습니다."(Kris), "대한민국에서 뵈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눈물이 나네요."(정용민), "당신이 남기고 가신 뜻 잊지 않고 우리 아이들이 컸을 때 꼭 전해주겠습니다."(양윤정), "그토록 외로우실 때 우리는 담배 한 개비만도 못했습니다."(scott),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은 사랑이란 단어를 쓸 수 있었던 단 한 명의 정치인이었습니다." (박상진), "누가 뭐래도 당신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아버지입니다. 비단인 줄 모르고 걸레 취급했던 죄를 사죄드립니다."(연상회) 등의 추모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번 합동 분향제에는 LA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민족화해협력미서부위원회, 6.15공동선언실천미서부위원회, 미주종교평화협의회, LA노사모(내일을여는사람들), 한인타운노동연대, 한미인권연구소, 재미부산경남향우회, 호남향우회, 한민족평화연구소까지 10개 한인 단체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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