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한국근현대사 수업 시간에 당신을 추모하는 동영상을 봤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5분 32초 동영상이었지요. 지나간 과거의 사실만이 아니라 지금 생생하게 살아 펄떡이는 것도 역사이기에, 아이들과 함께 당신의 의미를 되새겨보려고 한 수업입니다.
수능을 눈앞에 둔 고3 아이들이어서 동영상 보지 말고 수업하자고 반발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는데, 쓸데없는 생각이었지요. 5분 32초의 동영상을 보는 아이들의 눈동자,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지요. 세파에 찌든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순수하지요. 아이들은 맑고 정직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알지요. 어른들보다 먼저 슬퍼하고, 어른들보다 먼저 분노하는 게 아이들입니다.
영상 보며 아이들이 하나 둘 눈물을 흘렸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휴지 뜯어 눈물 닦는 아이, 울음소리 새나오지 않으려 입 꼭 다물고 훌쩍이는 아이, 터지는 설움 참지 못해 어깨까지 들썩이며 우는 아이, 그런 친구 곁에서 어깨에 손 올려놓고 다독이는 아이….
그런 아이들을 보는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참으려 애써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나서도 눈물과 설움이 가셔지지 않더군요. 겨우 진정해서 아이들에게 얘기했습니다. 바보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를. 어떤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인지를. 입만 열면 국민을 앞세웠던 수많은 정치인들 중에 유독 왜 당신이 도드라져 보이는지를.
제 말을 듣고 난 뒤 아이들은 당신께 보내는 편지를 썼습니다. 흐르는 눈물 꾹꾹 참아가며 또박또박 쓴 편지입니다. 그 편지를 당신께 전해드린다고 아이들에게 약속했습니다. 부디 아이들의 편지를 읽어주세요. 그리고 환하게 웃어보세요. 저 아이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바로 당신이 남긴 씨앗입니다.
<편지 하나>가슴 속에 늘 꺼지지 않는 촛불 하나 켜고 살아가겠습니다. 학생이라서 이 나라 정치에 관심 가질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버리고, 이전에 시민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진정 이 나라가 그 분이 꿈꾸시던 사람 사는 세상이 되기를…
약자에게 권위있고 강자에게 한없이 수그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 분처럼 해맑은 어린아이에게 고개 숙이고 힘 없는 이들에게 고개 숙이고 오히려 국외 정상들 앞에선 한없이 당당하시던 그 모습,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분에 의해 이렇게 많은 이들이 흘렸던 눈물이 모두 바탕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젠 그 분을 대신해 저희가 그 뜻을 기리겠습니다. 너무나도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세상에서 늘 약자의 방패막이가 된 채 화살을 받으시면서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내색하지 않으셔서 몰랐습니다. 마음에 담고 가신 그 화살 모두 이곳에 버리고 편히 쉬세요. 그역할 저희가 하겠습니다.
19살이라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에 너무나도 굳은 의지를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분은 진정한 우리의 대통령이었으며, 영원히 우리의 대통령이십니다.
<편지 둘>늦은 뒤에야 당신의 참 모습을 보게 되었지만, 이제 당신은 우리를 뒤로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가신 곳은 아마 이 세상보다는 따뜻하겠지요. 그곳에서는 좋아하시던 독서도 하실 수 있고, 글도 쓰실 수 있겠지요. 다시 돌아가신 그곳에서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또 제가 지키지 못한 소중한 분이라는 것을 평생 가슴에 안고 다시 반복되지 않게, 긴실한 마음을 외면하는 일은 없도록 제 자신을 그 높이에 맞는 마음의 눈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이 만들어갔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사람사는 세상이 무엇인지, 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를 알기 위해 제 위치에서 노력하겠습니다.
추위에 맞서 부러지지 않도록 제 스스로를 이 사회를 지킬 수 있는 촛불을 켜겠습니다. 당신의 죽음 앞에 다짐하겠습니다.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알지만 행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당신처럼 몸으로 보여주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이 되겠습니다.
<편지 셋> 5월 23일을 잊지 못할 날이다. 우리의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 돌아가신 날이기 때문이다. 토요일 자율학습 시간에 갑자기 들리는 '자살'이란 단어에 우리모두 컴퓨터 앞으로 가서 검색을 했다. 결과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모습만 보여주시던 그 대통령님께서 결국 강자에게 약한 찌든 우리 사회가 싫어 아무 걱정 없는 곳으로 가셨다.
우리는 근현대사를 배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비록 교과서에는 실지지 않겠지만 후세에는 꼭 사실 그대로 대통령님께서 유언장에 남기셨듯이 '역사가 모든 것을 밝혀줄 것이다'라고 믿고 싶다. 어쩌면 또다시 강자에 의해 왜곡될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모습들이 이제 보니 새롭게 느껴진다. 손녀와 과자를 먹으며 여유를 즐기시는 모습, 한복 입고 부인과 나란히 찍은 모습 등등.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하나. 하면서도 또 후회하게 되고. 어제 분향소에 가서 꽃을 올리고, 절을 하고, 방명록을 쓰는데 울컥 근조리본을 다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우리 마음 속에 여전히 남아계신 노무현님을 추모하며 -
<편지 넷>바보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 안녕하세요. 전 올해 대수능을 앞두고 있는 고3 학생입니다.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던 어린 시절, 노무현님께서 당선되시기 전에, 선거 포스터를 보면서 친구들과 했던 얘기가 떠오릅니다. 난 이아저씨가 당선됐으면 좋겠어. 나도 나도, 이 아저씨가 좋아. 어린시절 어린아이들 이야기 속 아저씨는 바로 노무현님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 집권하셨을 때도, 최근 비리사건으로 뉴스에 이슈가 되셨을 때도 관심이 없었고,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공부만 하면 되지, 하는 학생으로서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였겠지요. 비리사건으로 이슈가 되었을 때 저희 어머니께서 지나가는 말로, "노무현은 진짜 돈이 없어서, 자식들 공부 시키려고 그랬을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도 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렸지요.
며칠 전 아침 엄마는 일 나가시고 오빠랑 둘이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데, 먼저 먹고 일어나 TV를 보던 오빠가 "노무현 서거? 노무현 죽었어?" 라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전 설마 하는 마음으로 먹던 밥을 내려두고 TV 앞으로 가서 제 눈으로 직접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지요. 한 나라 대통령이셨던 분인데. 속상하면서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바로 어머니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잠시 후 엄마의 답장이 왔습니다. "응, 들었어. 슬퍼, 하늘도 슬퍼서 비가 내리네." 그날은 비가 내렸습니다. 제가 단잠을 자고 있었던 그 시간, 노무현 대통령님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계셨나요? 자신의 전 재산이 30만원이라고 하면서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언론에 아부하고 본인의 이익만 챙기려고 했다면 노무현 대통령님은 아직 살아 계셨겠죠? 바보 대통령님, 왜 그렇게 약하셨나요. 보고 싶어요.
<편지 다섯>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릅니다. 왜 있을 때는 잘하지 못하고 없을 때가 되어서야 뒤늦게 이렇게 후회하고 있을까요. 관심도 없이 신경도 안 쓰고 살았던 지난 날들이 너무나 죄송하고 후회스럽습니다.
힘없는 약자들과 함께였기에 더 힘들었을 당신, 강자들의 포악함 속에서도 늘 약자를 생각했던 당신, 대통령이라는 거부감 드는 지위를 벗어나서 국민과 함께 하기를 노력했던 당신,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너무나 죄송합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안타까워하면서 눈물 몇 방울 흘리는 게 전부이지만 진심을 다해 그곳에서는 편안하고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강자들만 살아남은 지금 이 세상은 너무나 힘이 들고 괴롭고 무섭습니다.
뒤늦게서야 이렇게 하지만… 우리들의 이 마음을 아셨으면, 그곳까지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편지 여섯> 처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TV를 보다가 갑자기 나온 뉴스 속보에 정말 멍하니 TV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믿겨지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믿을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인터넷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급속히 퍼졌고, 나도 그걸 보면서 눈물이 났다. 이렇게 가실 분이 아닌데…. 근데 한편으로는 더 힘든 사람도 많은데, 하루 세끼 밥도 못 먹고,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꼭 죽음을 선택해야 했는지에 대해 화도 났고, 네티즌들에 대해 화도 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할 때 그렇게 욕하고, 탄핵에, 그랬다가 서거하시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가식적으로 애도의 말을 하고, 가면을 쓰고 울고있 는 게.
물론 이번 일로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만 솔직히 나는 화가 난다. 죽음에 대해 자살이다 타살이다 왈가왈부하는 그 자체가, 우리나라가 이번 일을 헛되게 보내지 않았으면 한다. 정치인들도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애도하고,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가 정말 되었으면 좋겠다.
<편지 일곱> 사실 저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정책을 잘 몰랐습니다. 그땐 너무 어려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구란 것 정도만 겨우 알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서거하신 뒤 저는 많은 것을 찾아보고 또 찾아봤습니다.
당신은 진정 서민에게 진정으로 허리 굽힐 줄 아는 분이셨고, 진정 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 겨우 19살 학생이면서 뭘 알겠냐고 하시겠지만 지금 정치가 서민을 위한 것인지 기득권층을 위한 건지는 분간할 줄 압니다. 서민이 점점 어려워지고 기득권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우리 사회가 너무 밉습니다.
어제 분향소에 갔는데, 대통령님의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제 가슴에 고이 모시고 왔습니다.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당신 덕분에 제가 꼭 성공해서 당신처럼 이 나라를 이끌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말입니다.
지켜봐주세요. 당신이 다져놓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틀을 저희가 다시 바로세우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당신의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오늘이 영결식이죠? 부디 편안히 가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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