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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제목이 우리나라와 닮았다는 생각. 우리나라도 바야흐로 '애도시대'다.
문득, 제목이 우리나라와 닮았다는 생각. 우리나라도 바야흐로 '애도시대'다. ⓒ 어문학사
이 책은 좀 잔인하다. 노약자나 임산부는 '독서금지'다. 한국영화 '혈의누'를 끝까지 보지 못한 사람도 안 읽는 편이 좋다.

이 책엔 18세기 에도시대에 행해졌던 고문과 형벌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함께 삽화까지 곁들여있다. 따라서 당신의 풍부한 상상력만 조금 곁들인다면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말하니까 퍽 자극적인 책 같다. 물론 처음엔 호러 영화의 귀신출몰 장면을 처음 봤을 때처럼 깜짝깜짝 놀란다. 그러나 책의 진도가 나갈수록 그러한 경기의 강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고문 장면을 상세하게 그려놓은 삽화를 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새 고문의 강도에 '익숙'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 나는 인류사에 다양한 '고문과 형벌'이 존재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로 이 '익숙함' 때문이 아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매일 똑같은 고통과 아픔을 겪다보면 나중에는 그 고통에 만성이 생기게 된다. 심지어는 적응력마저 갖추게 된다. 이 책에도 보면 나중에는 고문을 받다가 황홀해하거나 조는 사람까지 생겨났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 그러다보니 인류사에 그토록 잔인하고 악랄한 고문과 형벌이 존재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노약자, 임산부 '독서금지'(?)

더구나 에도 시대는 사회 규범과 규율이 어느 때에 비해 무척 엄격했던 시기였다. 사회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일 경우, 그 제지와 규범의 강도도 강해진다. 물론 사회는 그 대가로 사회적 안정과 문화의 발달이라는 혜택을 누리게 되지만 말이다.

읽다보면 정말 별의별 고문이 다 있다 싶을 정도로 잔인하고 극악한 고문이 있다. 그리고 참 치사하고 비인간적인 형벌도 있다. 예를 들어, 더운 여름날 감옥에서 잔인한 형벌 중의 하나는 소금기있는 음식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었다. 야채절임에 사용하는 된장을 몸 전체에 바르고 옷을 입혀 온몸에 종기가 생기게 하는 체벌도 있었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셋푸쿠'(할복)도 아무나 못하는, 선택받은 사무라이들만 했던 명예로운 죽음이었다는 사실이 이해될 만하다.

에도시대에 중죄에 해당했던 죄목은 '하극상'과 '살인', '관문 무단출입'에 관한 것이다. 모두 중앙집권체제의 질서에 반하는 죄목들이다. 이 시대 사회통치이념은 유교였으나 오로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정치 이념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독교 탄압'과 관련된 형벌이 특히 잔인살벌하다.

에도시대의 고문과 형벌에 관해 쓴 이 책은 고문의 종류와 형벌의 종류에 관한 사실만을 다루었다. 저자의 감상이라든지 의견은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텍스트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잔인한(?) 책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문이나 형벌 자체에서라기보다는 그러한 제재가 가해지는 규범이나 제재를 통해서 그 당시의 가치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에도시대에 자주 발견되는 죄의 항목 가운데는 유난히 '동반자살'이 두드러진다. (박스기사 참조) '살인'이나 '강도'는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죄목이라면 에도시대에는 동반자살이 유난히 많이 나온다. 동반자살을 하다가 실패하거나 들킨 자는 중죄로 다스렸다. 이는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왜 그 당시 동반자살이 유행했는지를 안다면 그 당시 사회상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 하나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18세기 일본도 '구렸다'

18세기 에도시대 감옥에도 체벌에 대한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나타난다. 감방에 처음 들어오는 죄수가 '쓰루'라는 돈을 지참하지 않으면 괴롭힘을 당하다 쥐도새도 모르게 죽었던 반면, '쓰루'를 지참하는 자는 그나마 괴롭힘을 덜 당했다. 그러니까 쓰루는 일종의 뇌물이다.

이를 통해 느낀 점은 18세기나 에도시대나 21세기 대한민국이나 '구린' 세계는 반드시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권력이라는 이름과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는 것이다. 권력이 있는 자는 그것을 쥐고 흔들고, 힘없는 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음을 당한다. 그래서 권력,고문 형벌이라는 말에서는 '냄새'가 난다.  

형벌이나 고문이라는 것, 그 자체가 권력이다. 건전한데 쓰인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문제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이 공정해야하거늘 그렇지 못해 피바람을 일으킨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마지막으로 여담 하나. 에도시대에는 없었던 모양이지만 옛날 우리나라에는 생귀신이라는 형벌이 있었다. 사대부들에게만 주어졌던 가장 잔인했던 형벌이다. 죽음을 면하는 대신 이마에 귀신 귀(鬼)자를 붙이고 평생 살아있는 귀신 취급을 했다.

지금같으면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이 주민등록번호도 말소당하고 사망신고도 돼버린 셈이다. 즉, 온 사회가 똘똘 뭉쳐 왕따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잔인하고 치욕스런 형벌, 고문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비단 옛이야기만은 아니다. 21세기, 현재 우리 주위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전직 대통령이었던 한 사람을 소리없이 죽음으로 몰고가는 이 판국에.

"그늘에 가려진 민속문화 발굴해야한다"
[인터뷰] <에도시대의 고문과 형벌>의 저자 임명수 교수
1. 에도시대의 고문과 형벌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나?
내 전공이 일본문학속의 여성상에 관한 것이다. 주로 간통문학에서 나타난 여성상을 연구하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 시대의 형벌이나 고문 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2. 시대적 배경을 에도시대로 정한 이유는?
에도시대는 문화적으로 난숙(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더할 수 없이 충분히 발달하거나 성숙함)한 시대였다. 문화가 난숙하면 자연 성문화도 자유로워진다. 에도시대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유교이념을 지향했으면서도 우리나라의 유교와는 성격이 판이했다.

3. 죄목중 '동반자살'이 유난히 많다. 이에 관해서 보충설명을 하면?
그 당시 상류층에서는 부모가 정해준 상대가 아니면 결혼을 못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상류층자녀가 유곽의 유녀들과 사랑을 이루지못할 때 다른 세상에서나마 사랑을 이루고자하는 마음에서 동반자살을 하곤 했다. 한마디로 당시 트렌드였다.

동반자살 뿐 아니라 당시에는 '매독'에 걸렸다는 것이 창피한 일이 아니라 굉장히 멋있고 폼나는 일로 여겨졌다. 아마도 자유연애에 대한 의식이 그만큼 깨어있지 않았을까. 원래 문화가 난숙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할수록 성문화는 자유로워지고 문란해진다. 에도시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동서고금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도 그렇다. .

4. 에도시대의 형벌이 그렇게 잔인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어떻게하면 더 효과적으로 고통스럽게 형벌을 줄 수있을까 하는 탐구심 비슷한 것에 일본사람이 조금 강한 것 같다.(웃음) 그러나 우리나라도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잔인함에 관해서는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5. 집필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자료수집이 어려웠다. 당초 3, 4년 전에 나올 예정이었다. 그때는 세계의 고문형벌에 대한 내용을 기획했으나 엄두가 나지않아 아시아권으로 좁혔다. 그러자 이번엔 '중국'이 문제였다. 중국은 더 심했다. 양이나 질(?) 면에서 일본과는 비교도 안되었다. (웃음)

6. 이 책은 철저히 사실만을 다루었다. 저자 의견은 전혀 반영하지않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 전공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견해는 개진할 수 없었다. 에도시대의 고문과 형벌을 사례별로 수집해서 소개하겠다는 게 당초 목적이었기 때문에 철저히 사료나 사례중심으로 엮었다.

7. 그래도 소감이 있다면?
우리나라도 그늘에 가려져있는 민속문화를 발굴했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고문'이나 '형벌' '성 문화' 등의 문화를 금기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시대 사회성이나 정서를 엿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활자화되고 체계화된 고문형벌이나 민속문화, 성문화에 대한 정리가 시급하다.

 


에도시대의 고문형벌

임명수 지음, 어문학사(2009)


#에도시대의 고문과 형벌#동반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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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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