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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김선주의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책겉그림김선주의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 삼인

나는 교회를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교회란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건물이나 제도는 외형일 뿐 본질과 알맹이는 언제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아름답다는 건 건물이나 제도가 화려한 게 아니라 그 구성원들의 삶이 아름답다는 뜻일 게다.

 

목사인 나는 목회도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목회란 교인들을 양처럼 여기며 치리하는 치리자가 아니라고. 목회란 그저 교우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자체라 생각한다. 즐거워하는 이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는 것이 목회라 생각한다. 

 

설교자인 나는 설교에 대해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교우들에게 먹이는 일이 아니라고.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교우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설교자 역시 하늘 뜻을 교우들과 함께 펼쳐나가야 할 존재인 까닭이다.

 

그런 관점들 때문에 나는 꽤 괜찮은 목사라고 스스로 격려하며 살아 왔다. 적어도 김선주의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을 읽기 전까지는. 하지만 이 책에서 목사를 '영혼을 지배하는 권력자'로, 교회를 '이념의 성전'으로, 설교를 '소비되는 권위'로, 헌금을 '윤리를 망각한 영혼의 환각'이라 칼날을 세우고 있는 탓에, 부끄러운 내 옷깃을 더 여미게 됐다.

 

"한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기독교의 복음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기독교라 불리는 집단의 부조리한 행태가 부끄러운 것이다. 예수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일원인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프롤로그)

 

그는 왜 교회를 '이념의 성전'으로 꼬집는 걸까? 개신교 내 굵직한 단체들이 극우 색깔론만을 적극적으로 찬양하는 까닭에서다. 왜 목사를 '영혼을 지배하는 권력자'로 비꼬는 걸까? 교회 강단을 이용해 교우들을 과격한 심청이들로 만드는 까닭에서다. 설교를 '소비되는 권위'로 평가하고 있는 이유도 설교자의 박사 가운에 압도되어 교인들이 위안을 삼고 있는 이유에서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한국개신교를 자랑하던 김진홍 목사와 서경석 목사가 극우집단의 이념에 편승해 있으니 지나친 평가는 아닐 것이다. 때때로 목사들이 비합리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로 교인들을 '예스맨'으로 만들고 있으니 타당한 평가라 할 수 있다. 설교 역시  적당한 교인으로 살기에 부족함 없는 액세서리 정도로 찍어내고 있으니 빈말은 아닌 듯 하다. 자기 몸집을 불리기 위해 헌금을 재투자하는 교회들이 많다는 측면에서 결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거기에다 '복음'을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니는 크리스천들의 장식품으로, '전도'를 약소국을 침략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정신 계승으로, 그리고 '영성'을 싸구려 유행 상품으로 치부하고 있으니, 그의 지적은 예사롭지 않고 놀랍도록 예리하다.

 

그처럼 한국교회의 7가지 죄악들을 지적하고 있는 그의 비판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마치 썩은 폐부를 도려내는 듯하다. 다른 목사들보다 좀 더 바르고 올곧게 목회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 자신마저도 심장에 화살 한 방을 얻어 맞은 듯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직도 털어내고 비워내야 할 게 많은 까닭일 것이다.

 

죄란 본래 잘못 겨냥한 궁수의 시위를 뜻한다고 했던가.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는 단순히 한국교회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을 해할 목적으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한국교회가 잘못 겨냥하고 있는 7가지 화살을 되찾아, 다시금 바른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도록 촉구하고 있는 궁수 중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김선주 지음, 삼인(2009)


#한국교회의 죄악#교회 이념의 성전#목사 영혼을 지배하는 권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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