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악몽의 엘리베이터> 겉표지
<악몽의 엘리베이터>겉표지 ⓒ 살림
밤 늦게 엘리베이터에 혼자 타면, 종종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무서움의 원인은 여러가지다.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거울을 볼 때, 목적층에 도착해서 문이 열릴 때 그 너머에서 뭐가 나타날지 몰라서 두렵다.

이것 보다 좀더 구체적인 공포도 있다. 운행중인 엘리베이터가 어느 순간 정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정지한 채로 비상벨이나 비상통화장치 모두 작동하지 않아서 그 안에 혼자 갇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아니면 자신을 태우고 한참 상승하던 엘리베이터가 무슨 이유인지 고장나서, 그대로 1층까지 추락하는 상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최고의 두려움은 사람에게서 생기지 않을까. 혼자가 아니라 험상궂게 생긴 낯선 사람과 함께 탔을 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다.

대범한 사람이라면 '기우'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폐쇄된 좁은 장소에 혼자 또는 낯선 사람과 단둘이 남겨진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보면 엘리베이터라는 장소는 완벽한 밀실의 역할을 한다. CCTV가 설치돼 있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엘리베이터에서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고장난 엘리베이터에 갇힌 네 사람

일본 작가 기노시타 한타의 <악몽의 엘리베이터>는 바로 이런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되는 네 명의 이야기다. 주인공 오가와 준은 레스토랑에서 부점장으로 근무하는 28세의 청년이다. 3년 전에 결혼했고 아내는 임신중이다.

오가와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 직원의 송별회에 참석하고, 엉망으로 취한 그 직원을 아파트까지 데려다 준다. 그곳에서 진통이 시작되었으니 빨리 집으로 와달라는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오가와는 다급해진 마음에 허겁지겁 엘리베이터를 잡아 타지만 타자마자 엘리베이터 바닥에 쓰러져서 정신을 잃는다.

오가와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약 30분 후. 바닥에 쓰러진 자신을 세 명의 남녀가 내려다보고 있다. 후줄근한 양복차림에 수염이 더부룩한 중년 남성, 메뚜기를 연상시키는 체형을 가진 젊은이, 마녀처럼 검은 옷으로 온 몸을 뒤덮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여성.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오가와가 엘리베이터에 오르자마자 엘리베이터가 급강하하다 멈추었고, 오가와는 그 충격으로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다. 오가와의 머릿속에는 오직 아내에 대한 생각뿐이다. 자신이 쓰러진지 30분이 지났으면 지금쯤 진통도 심해졌을 것이다. 거실에서 배를 붙잡고 쓰러져있는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원인불명으로 계속 정지상태다. 비상용버튼을 누르고 CCTV에 손을 흔들어 보아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 젖 먹던 힘을 다해서 엘리베이터 문을 열려고 시도하지만 헛수고에 불과하다. 모두 힘을 합쳐서 구해달라고 소리치지만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이다. 글자그대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반쯤 포기상태가 된 네 명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이것 저것 시도한다. 그렇게 시작한 게임 끝말잇기는 어느새 비밀고백하기로 바뀐다. 그 와중에도 오가와는 계속 아내 생각뿐이다. 어떻게 이 상황을 빠져나와 아내에게 달려갈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라는 밀실에서 벌어지는 사건

엘리베이터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낯선 사람과 함께 그 안에 갇히게 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함께 갇히는 사람이 우락부락한 거한일 수도 있고 매력적인 이성일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 그 자리는 폐쇄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악몽이 되기도 하고, 둘 만의 시간을 보장해주는 만남이 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어딘가에 갇히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견디지 못한다. <악몽의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서로 힘을 모아서 구조를 요청하고, 포기한 후에는 서로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점점 난장판으로 변해간다. 어떤 사람은 히스테리 상태에 빠지고 또 다른 사람은 울화통을 터뜨린다. 그리고 결국에는 잔인한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실제로 생면부지의 사람들 서너 명이 좁은 장소에 갇히게 되면 어떨까. 작품속 엘리베이터에서는 아주 늦은 시간에 외부와의 소통이 완벽히 차단된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갇힘 사고다. 독특한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 크고 작은 형태의 갇힘 사고는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발생한다.

큰 탈없이 구출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일 뿐이다. 갇힌 사람은 자신이 10분 후에 구조될지 5시간 후에 구조될지 모른다. 그 시간동안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 전기가 나간다면 설상가상이다. 고립된 느낌과 폐쇄공포증을 시작해서 온갖 생리적인 욕구도 함께 억눌러야 한다.

물론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사람마다 버티는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한계에 다다를 가능성이 많다. 그 한계에 닿으면 자신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그리고 그런 경험이 남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혼자건 여럿이건, 좁은 장소에 갇힌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악몽의 엘리베이터> 기노시타 한타 지음 / 김소영 옮김. 살림 펴냄.



악몽의 엘리베이터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살림(2009)


#악몽의 엘리베이터#기노시타 한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