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전원주택을 장만하여 지내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문패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 사시는 집이 아파트이기만 할 때에는 문패가 없었습니다. 두 분 이름이 나란히 적힌 문패를 바라보면서 두 분이 비로소 마음과 몸을 쉴 보금자리를 마련하셨구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골목집에는 우리 문패를 붙이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주인집하고 윗집 사람도 따로 문패를 달지 않았습니다. 주인집은 마흔 해 넘게 이 집에서 살아오셨다는데, 그동안 문패를 한 번도 안 달으셨을까 궁금하고, 윗집은 여섯 해째 살고 있다면서도 딱히 문패를 달 마음은 없는 듯합니다.
어릴 적 골목길에서 뛰놀며 동무네 집을 찾아갈 때면, 으레 '문패를 보면서' 동무네를 찾곤 했습니다. 저는 국민학교 3학년 때 동네 할배한테서 천자문을 배워 웬만한 어른 이름을 읽어낼 수 있었기에, 한자로 적혀 있든 한글로 적혀 있든, 동무네 집에 나붙은 문패를 읽으며 동무네 아버님 이름을 외곤 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옛동무네에 찾아갈 때에도 코흘리개에서 스물 몇 해가 지난 오늘까지 그 집 문패가 고스란히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며 반가워 살며시 쓰다듬곤 합니다.
문패를 붙이고 있는 집은, 이 문패 역사가 아무리 짧아도 스무 해는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으레 서른 해나 마흔 해쯤은 묵은 문패일 테며, 쉰 해나 예순 해를 묵었음직한 문패도 곧잘 만납니다.
우리 집살림으로서는 '내 집'이란 엄두를 못 내지만, 옆지기는 '우리는 죽는 날까지 따로 내 집을 마련하지 말고 삯집으로 흐뭇하게 지내면서, 우리 나라 곳곳에 있는 좋은 이웃을 만나러 틈틈이 돌아다니면서 살자'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 세 식구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놓은 문패 없이 살아가지 않으랴 싶습니다.
우리 집에는 우리 문패를 붙이지 못하지만, 다른 집을 돌아보면서 온갖 문패를 구경해 보는 가운데, 동네 하나가 어떤 발자취를 남기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왔는가를 곰곰이 되짚습니다. 문패를 붙일 수 있는 집이 있는 동네는 살아 있는 동네요, 문패를 고이 지켜 줄 수 있는 정치행정은 동네 하나를 애틋하게 사랑하고 아끼는 문화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