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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슈 영문 홈페이지에 나온 푸제온 설명.
 로슈 영문 홈페이지에 나온 푸제온 설명.
ⓒ 로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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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신약 '푸제온' 강제실시가 결국 기각됐다. 당장 푸제온이 필요한 말기 에이즈 환자들은 국내에서 약을 구할 수조차 없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19일 오전 11시 특허청은 "시민단체들의 푸제온 강제실시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특허청은 "일부 에이즈 환자의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푸제온의 공급이 필요하다"면서도 "약가협상 결렬로 인한 공급 중단은 강제실시의 이유가 되지 않고 강제실시의 실익도 없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또한 특허청은 ▲현재 제약회사 무상공급프로그램에 의해 푸제온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고 ▲ 청구인(시민단체)에 의해 푸제온이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공급되기 어려울 뿐더러 ▲푸제온 이외의 에이즈 치료제가 국내 시판 단계에 와있는 점을 고려할 때 기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에이즈감염인연대 '카노스'와 정보공유연대 'IPleft' 등 시민단체는 지난해 12월 특허청에 푸제온 강제실시를 청구했다. '강제실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한시적으로 타인이 특허권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특허청 "생명에 밀접한 관련, 그러나 강제실시 실익 없다"

이번 결정과 관련, 시민사회단체는 "푸제온이야말로 특허권 강제실시가 필요한 경우다, 특허청은 제도의 취지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단체들은 "제약회사의 푸제온 무상공급은 한시적 조치일 뿐이고, 이미 여러 차례 복지부가 '다른 의약품으로는 푸제온을 대체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면서 특허청 기각사유을 반박했다. 또한 의약품 공급능력에 대해서도 "국내 시민단체들이 인도 제약회사들과 대체 치료제생산에 대한 MOU를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23일 시민사회단체들이 특허청에 푸제온 강제실시를 청구하면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3일 시민사회단체들이 특허청에 푸제온 강제실시를 청구하면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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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훈 변호사(공익변호사그룹 공감)는 "특허청은 약가협상 결렬이 강제실시의 이유가 안 된다고 했지만 강제실시는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제도다"면서 "단지 비용 때문에 공급이 안 된다면 그건 약이 아니라 똥이고 독이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정 변호사는 "특허청 스스로 '푸제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정해놓고 '국내에서 치료제가 시판단계'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면서 "특허청이 사유를 억지로 찾아내 기각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무상공급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강제실시가 청구되자 나온 조치인데 이번 기각결정으로 공급이 중단되면 특허청이 책임질 수 있냐"고 따져물었다.

강아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사무국장은 "정부가 다국적 제약회사와 관련 통상마찰의 위험을 강조하다 보니까 특허청이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강제실시를 추진했는데 한국만 못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에이즈 환자들의 마지막 희망... 국내엔 5년째 공급 안돼

푸제온은 기존 치료제에 모두 내성이 생긴 에이즈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의약품이다. 이미 지난 2004년 5월 한국에서 시판 허가를 받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푸제온을 구입할 수 없다. 이 약을 만든 다국적 제약회사 로슈 사가 공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슈 사가 5년 동안이나 약을 팔지 않는 까닭은 간단하다. 한국 정부가 정한 약값이 너무 싸기 때문에 팔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6월 로슈 사는 푸제온에 대해 4만3235원의 보험가 적용을 신청했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2만4996원을 제시했고, 올해 초까지 3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한국 로슈 홈페이지의 제품 홍보페이지. 푸제온은 나와있지 않다.
 한국 로슈 홈페이지의 제품 홍보페이지. 푸제온은 나와있지 않다.
ⓒ 한국 로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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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로슈 사가 최종적으로 제시한 약가는 3만 원.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는 한 달에 약값으로만 180만 원을 내야 한다. 한 달이면 2200만 원이 넘는다. 경제활동이 어려운 에이즈 환자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판매거부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로슈 사는 지난 2월부터 무상공급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은 "푸제온 특허의 문제점을 은폐하고 강제실시를 막기 위한 행동"이라고 이를 비판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푸제온을 공급받은 경우는 2~3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에 따르면, 일부 환자들이 외국 구호단체를 통해서 일부 환자들은 로슈 사의 무상공급 프로그램을 통해서 약품을 공급받았다고 한다. 강아라 사무국장은 "이미 돌아가신 환자들 중에는 푸제온만 있었으면 더 살 수 있을 분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강제실시 결정으로 무상공급까지 얻어냈는데...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오전 "제약회사의 지적재산권보다는 환자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특허청장에 강제실시 필요의견을 표명했지만, 신청 기각을 막지는 못했다.

이날 국가인권위는 "현행 특허법은 제약회사 강제실시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로슈 사의 경제적 손실이 그리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WTO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협정) 이후 많은 나라들이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권을 발동하거나 적극 고려해왔다"면서 "강제실시로 통상문제가 일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로슈 홈페이지에 푸제온의 효능이 설명되어있다.
 로슈 홈페이지에 푸제온의 효능이 설명되어있다.
ⓒ 로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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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국가인권위 자료에 따르면, 브라질 정부는 지난 2001년 8월 에이즈치료제 '넬피나비어'에 대해 강제실시를 결정했다. 특허권을 가진 머크 사와 로슈 사는 열흘 만에 약가 40% 인하와 브라질 국내 생산에 합의했다. 브라질 정부는 이같은 협의를 이끌어낸 뒤 강제실시 결정을 철회했다.

태국은 2006년 11월 에이즈 치료제 '에바비렌즈'와 '로피나비르/리토나버', 심장질환 치료제 '클로피도그렐'에 대한 강제실시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을 제조판매해온 제약회사 애보트 사는 2007년 1월 "태국에서 판매되는 자사 제품을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위협했지만 태국 정부는 강제실시를 철회하지 않았다. 결국 애보트 사는 같은해 4월 태국을 비롯한 40여 개 국에서 치료제 가격을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지난해 1월 '페마라'(유방암치료제), '글리벡'(백혈병치료제), '타세바'(폐암치료제), '탁소텔'(폐암 및 유방암치료제)에 대한 강제실시 발동을 결정했다. 제약사는 태국에서 연간 가구 소득이 5500만 원 이하면 글리벡을 무상공급하기로 입장을 변경했다. 태국 정부는 제약사가 무상공급을 중단하면 강제실시를 지속하기로 했고 나머지 항암제는 인도에서 수입하기로 변경했다.

태국 정부는 또한 2008년 1월 페마라(유방암 치료제), 글리벡(백혈병 치료제), 타세바(폐암  치료제), '탁소텔(폐암 및 유방암 치료제)'에 대해서도 강제실시를 결정했다. 제약사 노바티스는 "태국에서 연간 가구소득이 5500만 원 이하일 경우 글리벡을 무상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태국 정부는 글리벡 무상공급이 중단될 경우 강제실시를 지속하기로 했고, 다른 항암제는 인도에서 수입하기로 했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미국과 캐나다는 탄저병 치료제인 '사이프로'의 수요가 늘었다. 미국 상원의원과 단체들은 강제실시권을 주장했고, 제조사인 바이엘 사는 원래 가격의 절반으로 사이프로를 대량 납품하기로 미국 정부와 협상했다. 캐나다 역시 '사이프로'에 대해 강제실시권을 부여했다가 바이엘 사가 "캐나다 정부가 요청할 경우 48시간 안에 100만 정의 약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하자 이를 취소했다.


#푸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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